<인터뷰가 즐겁다:임사장이 간다!> 프롤로그 중 일부
2004년 가을, 첫 직장을 잡지사로 다녔다. 스물네 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성공했고 잡지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아주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그게 어디든 길 떠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고, 그걸 아주 맛깔나게 잘 정리하는 재주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3년 동안 사진부 활동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운 기술을 잘 써먹을 수 있었다.
2006년 열아홉 살에 만나 무려 7년을 연애한 남친이랑 결혼했다. 남편이 인천 부평에 있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남편 출퇴근하기 좋은 경기도 부천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로컬이 트렌드인 지금은 시대를 역행하는 말이라지만, 서울로 출퇴근해보고 싶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갔다. 부산에서 막 올라와 촌티 줄줄 나는 그 한 번의 서울 나들이를 끝으로 다신 지하철을 타지 않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지역신문사에 면접을 보고 기자로 일하게 됐다. 그때 신문사에서 함께 일했던 희진이, 희정이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세 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남편과 아이들까지 10명으로 늘었다.
2014년 ‘지역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상념에 빠졌다. 아무것도 모를 땐 월급 주는 사장님 눈치만 보면 됐었는데, 철들면서 세상에 눈뜨기 시작하니까 자꾸 들이받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매너리즘에 빠져 널브러져 있던 나를 당시 경인일보 전상천 기자가 경기도 수원시 행궁동으로 데려갔다. 경기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성활동가를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하루 동안 생태교통마을사무소 사무국장으로 일하셨던 고경아 선생님, 대안공간 ‘눈’을 운영하셨던 이윤숙 선생님, 골목잡지 ‘사이다’ 발행인 최서영 선생님을 만났다. 행궁동에서 ‘마을’이란 게 어떤 건지, 지역에서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그분들의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맛을 봤다. 무엇보다 골목잡지 <사이다>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내 인생 노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9년 서른아홉이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지역사회 성장을 위한 마을공동체미디어 활동에 관한 연구>였다. 지역 언론사 기자로 일하면서 마주했던 불편한 진실과 거대 자본화된 주류미디어 앞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지역언론의 한계를 써 내려갔다. 월급쟁이 기자를 그만두고 2013년 협동조합으로 지역신문을 창간하는 데 힘을 보탰던 경험, 2014년부터 3년간 보조금을 지원받고 마을잡지를 만들었던 경험, 2016년 지역 핫이슈로 팟캐스트 방송을 제작했던 경험을 정리했다. 지역신문, 협동조합 신문, 마을잡지, 팟캐스트, 영상을 기반으로 한 마을방송국에 이르기까지 내 관심사는 온통 지역과 마을, 사람과 공동체였다.
지역에서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방송국’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근 2~3년 사이 신문, 잡지 같은 인쇄매체 교육 요청은 확 줄어들었고,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는 요청은 두세 배로 늘었다. 유휴공간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은데 인테리어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는지, 필요한 장비는 어떤 것이 있는지 컨설팅해달라는 전화도 자주 받는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지역 이슈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자기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도시재생사업,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 문화, 인적자원을 발굴해 기록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영상미디어가 가진 힘을 빌려 어딘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구독자 수, 조회수 많이 올려서 돈도 벌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너도나도 멋들어진 스튜디오와 장비를 갖추고 ‘우리 동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가 해왔던 활동을 ‘마을미디어 활동’이라고 말해왔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마을미디어라기보다 ‘지역과 마을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혹은 선망하는 미디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마음이 언제나 ‘마을’을 향해 있고 ‘공동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눈이 가니까. 하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다 설명하기엔 ‘지역과 마을과 공동체를 지향하는 혹은 선망하는 미디어’가 너무 긴 관계로 계속 ‘마을미디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오랫동안 마을미디어를 연구하고 활동해온 사람들이 정의한 내용에 내 활동이 딱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하는 넋두리다. 동시에 ‘진정한(?) 마을미디어란 무엇인가?’ 고찰하게 된다.
전국을 누비면서 “마을미디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떠들고 다녔다. 2018년 협동조합 법인명을 ‘누구나미디어’라고 지었던 이유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을미디어를 하고 싶다면, 적어도 지역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을 두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동네일을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답을 구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이웃과 연결되고,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된 이들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응원할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사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내가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