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조합원들과 함께 이탈리아 에코뮤지엄 현장을 학습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번 돈을 모아서 여행경비를 마련했기 때문에 코로나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2019년엔 영국 핀드혼과 코인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답사를 다녀왔고, 2018년엔 일본 스즈카 애즈원 커뮤니티를 방문했었다. 협동조합 설립하고 매년 자비를 들여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건 김성균 박사님, 오수길 박사님 덕분이었다. 책에서나 보던 세계공동체를 현지에서 만나고,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너무나 황홀했다. 그 길에 동행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했다. 우리의 앞날은 찬란하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는 참 많은 걸 앗아갔고, 뒷걸음질치게 했다. 보름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독을 푼답시고 쉬었는데, 이후로도 쭈욱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밖에 없었다. 보름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석 달로 늘어났다. 계약을 앞두고 있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어떤 프로젝트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매월 110만 원씩 운영비를 지출해야만 했던 우리 공간에도 사람 발길이 뚝 끊어졌다.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별로 격상되면서 3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그 넓은 공간을 휑하니 비워둔 채로 몇 개월을 버텼다.
망연자실하게 3분기를 맞이할 즈음, 마을에서 다시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공동체 교육을 할 수가 없어서요. 교육 영상을 제작해줄 수 있나요?”, “코로나 때문에 주민총회를 유튜브로 생중계해야 할 것 같아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해야 하는데, 줌 사용법을 강의해주실 수 있나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친 듯이 새로운 일을 마주했다.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섬에서 만난 70~80대 어르신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혼자 외로웠는데 스마트폰으로 동네 사람들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문화예술계도 그나마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세상이 사람들에게 숨구멍이 되어줬던 셈이다. 미디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다시 살길이 열렸다. 현장이 곧 실습 대상지였기 때문에 온갖 시행착오를 현장에서 다 겪었다. 사람들 눈에는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것으로 보였다는데, 나는 매번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코로나 시대, 마을은 어떻게 적응해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미디어에 소외되었던 주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비대면 시대, 미디어로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