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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삶의 시작은 스타팅 피스톨이 없어

실패와 새로운 시작, 그 사이 어딘가에서

by 수이

모두가 삶에서 여러 번의 스타트라인에 선다. 마치 운동선수처럼.

하지만 운동선수의 ‘시작’과 달리 삶의 시작을 알아차리는 것은 훨씬 어렵게 마련인데, 둘의 가장 큰 다른 차이점이라면 스타팅 피스톨, 즉 일종의 출발 총성 신호가 없다는 것이다.


명확한 출발 신호 대신, 우리는 대부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 시작했던 것이구나’라고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삶의 시작은 정확한 시기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미 시작했는지, 아니면 시작 중인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 시작도 안 한 건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작도 그랬다. 되돌아보면… 나는 4년 전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를 통해 사람들이 전환점을 맞이하기를 바랐다. ‘삶은 생각보다 짧고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우니, 당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세계관에 몰입해서 일주일 내내 유서만 쓸 수 있는 무지막지한 챗봇 게임 만들기를 ‘시작’했었다.


처음엔 죽음을 단 한 명에게라도 나의 방식으로 전하고 싶다는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그 생각은 조금씩 자라나서 나를 덮쳤고 나중에는 아주 작고 불확실한 시작들이 모여서, 시작을 안 하고는 못 버틸 만큼 나를 떠밀었다. 그 정도로 어떤 시작은 시작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작은 파도들이 모이고 모여 큰 파도를 만들고 나를 휩쓰는 것처럼. 그 파도가 언제부터 나를 휩쓸기 시작했는지 말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가장 첫 글에서 ‘시작’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지난 시작을 떠올리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솔직하게는 괴상한 챗봇 게임을 만들고 창업까지 했던 대략 4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정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실패가 생각보다 별 거 아닌 듯이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로 인해 고꾸라져서 그대로 평생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역시나 이번에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스스로 실패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두려운 궁금증을 품어본다. 나의 실패는 생각보다는 별 거고, 그렇다고 해서 고꾸라져 쓰러져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새로운 시작은 언제쯤 하는 것일까?


'시작한지도 몰랐던 지난 시작'을 뒤로하고 나서야 나는 시작에 대한 소중함을 안다. 딱히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시작하는 순간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할 수 없는 때도 있는 것이다.


오지 않는 시작을 기다리면서 시작을 향해 편지를 쓰는 것 같다.

언젠가 또 나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올 시작을 고대하면서.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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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