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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에세이를 쓰면 에세이를 닮아갈 수 있을까?

에세이는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이다.

by 수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감싸 안고 싶다면 에세이를 쓰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에세이의 본질이 그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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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언제부터인가 나는 에세이라는 장르를 참 좋아했었다. 결국 글이란 한 사람의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언어로 길을 내는 과정이고, 그 방법은 다양하다. 거대한 세계를 쌓고 그 안에서 빙빙 돌아가는 가장 기다란 길을 만드는 소설도 있고, 단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서 무한한 길을 만드는 시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중에서 왠지 모르게 에세이가 가장 좋았다. 에세이는 그리 길다린 길도 아니고, 무한한 길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균형을 잡는 글 같았다.


에세이는 질료의 정수, 질료의 핵심을 표현해 내고자 하고 그것을 위해 세련됨과 온전함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를 다루지 않기를, 불완전하다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기를 고집한다. 불완전함, 대담함, 호기심, 불안정한 흔들림이라는 글 쓰는 본성을 더 잘 반영해 주니까.
<에세이즘> - 브라이언딜러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창업으로 이어진 약 4년의 여정 정리하면서 당연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당연하지 않아 지는 경험을 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꾸던 꿈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애증의 감정으로 지지고 볶던 공동창업자 친구들과, 매일 일어나서 당연하게 하던 일과들…


도전, 실패, 그리고 다시 시작.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현실들을 미처 인식하기 전에, 나에게 다가온 것은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이었다. 우선 나를 장악하던 것들이 갑자기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첫 번째였다. 그 말은 나를 짓누르던 모든 중압감도 사라졌다는 뜻이었으므로, 동시에 두 번째로 밀려오던 건 굉장한 해방감이었다. 이렇게 소용돌이치는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왜인지 모르게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써야 해.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언젠가의 새벽 2시, 노트북을 열고 위의 문장을 무작정 타이핑했다.


불안정한 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줄 무언가, 불완전함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줄 무언가, 그것은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에세이를 쓰고 또 에세이의 본질을 알아보면서, 실패에서 또 다른 시작으로 가는 과정의 어딘가에 있는 나 자신이 에세이의 본질을 묘하게 닮아있다고 느꼈다.


수많은 감정과 생각 사이에서 여전히 꿈과 이상을 추구하려고 애쓰지만, 그를 향하는 여정에 있는 호기심, 대담함, 불안정한 흔들림, 그리고 종국의 실패까지 모두 가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말이다. 사실 여전히 실패한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가 있지만, 계속 에세이를 써나가면서 결국은 그 안의 모든 시도와 감정이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그것을 끊임없이 말해주는 행위였다.


에세이를 쓰면서 점점, 길을 잃은 것 자체가 길을 만들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길을 잃었다가, 그곳을 길로 만들었다가, 그렇게 이어지는 여정을 가다 보면 나만의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흐름을 잡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놓아주기도 해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모든 기쁨과 아픔이 흘러가도록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잡고 있기와 놓아주기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결코 자신으로 있지 않으면서 항상 자신으로 있기 그것이 문제다.”)
<에세이즘> - 브라이언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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