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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28. 2016

진상, 어디에나 있더라

#25. 오늘따라 양쪽 볼이 무겁다.


“휴가기간에 웬일이야?”


내 당연한 질문을 예상했는지 봉순은 별 대답 없이 주방을 향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며 마로에게 특이사항이 없었는지 물었다. 마로가 좌우로 고개를 젓는다. 없었다는 뜻 이리라.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 짧고 의미심장한 손가락 끝을 나에게로 향했다. 봉순의 시선이 그 손 끝을 타고 날아와 부딪친다. 멍하니 그녀의 옆모습을 훑고 있던 내 시선은 천장과 바닥 그리고 선반의 커피 잔들을 혼란스럽게 오가며 허둥댔다. 처음일 것이다. 그녀에 대한 한차례 열병이 시작된 이후 눈을 마주친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봉팔이? 봉팔이가 왜?”


봉순의 질문에 마로는 다시금 미간을 찌푸리며 나의 상태를 설명하려 애쓴다. 너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애였니, 정색하며 묻고 싶다. 하지만 이미 나의 시선은 사춘기 방황처럼 오갈 곳을 잃고 있었고 얼굴은 알 수 없는 형태로 일그러졌다. 그 표정은 뭐랄까, 환희에 몸서리치는 영화 속 주인공의 것이었다. 감동 막바지인 오페라 지휘자의 표정이기도 했고 눈물 쏟아내는 비련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이상의 불분명한 일그러짐이었을 것이다.― 두 귀와 뒷목은 히터를 들이댄 듯 후끈거렸다. 양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두 엄지손가락은 서로의 손톱을 쉴 새 없이 탐닉한다. 참, 진상이다. 그녀의 시선이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난 그것이 무엇이던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대답을 떠올렸지만, 다행히 그녀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안부인사 정도랄까, '휴가 후유증인가?'라고 스스로 대답하며 커피를 마실 뿐이다. 마로가 ―오지랖 심하게 넓은 그 소녀가― 추가적인 소견을 전달하려 하였지만, 엎어진 사료 통으로 날아드는 홍자 덕에 일단락되었다. 물론 내가 엎었다.


“일은 안 해.”


그녀가 구석진 테이블로 가서 앉더니 말했다.


“그러니 없는 셈 쳐.”


손님 틈에 섞여 봉다방의 일상을 관찰하다 보면 역할놀이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봉순은 뿌리를 내린 나무 괴물처럼 자세를 좀 더 견고하게 잡더니 갖고 온 책을 꺼냈다. 마치 우리와 말을 섞는 것이 자신의 색다른 시각에 방해가 되는 것 마냥,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녀는 매의 눈이다. 봉다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캐치한다.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 들썩이려는 손님의 어깨, 새롭게 들어서는 누군가의 핸드백과 충돌을 앞둔 다른 손님의 커피 잔, 작게 말아서 버리고 간 쓰레기, 과도한 애정행각 등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난 봉순의 명령과 함께 딱총의 돌멩이처럼 날아가서, 주문을 받거나 커피 잔을 안쪽으로 옮기거나 나무 테이블 틈새를 정리했다.


문제는 그 예리한 매의 눈이 오늘만큼은 아군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중 속에 파고들어선 날카롭게 희번덕거리며 이곳을 염탐하고 있다. 게다가 그 눈빛을 받는 나의 긴장감도 이전과 다르다. 많이.


오늘은 말수 적고 신비스러운 소녀와 궁합을 맞추어야 한다. 손님이 오갈 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마로를 보았다. 매의 눈은 아니어도, 고양이 눈의 뭔가가 정보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한번 깜빡이기 위해선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것 같은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 눈에는 일종의 타협 같은 것이 있었다. 난 매의 눈 같은 건 없어. 각별한 서비스 정신도 없어. 하지만 주문을 받아주면 최고의 작품을  선사하지, 라는 식이다.


아직 얼굴이 익지 않은 몇몇 손님이 다녀갔다. 단골 몇몇도 다녀갔다. 나는 주문을 받았고 마로는 주문된 것들을 현실세계로 갖고 왔다. 손님들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봉순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다. 사실 내 곁눈은 항시 그 주위를 맴돌았다. 이따금 그녀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내 시선을 알 리 없다. 마치 그녀가 그곳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봉팔은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의 정수리에도 눈이 숨어있다면, 내가 뿜어대는 시선 대부분이 그곳을 더듬는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로도 주문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봉순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주방장 느낌이 드네.”


“좀 그런가?”


봉순이 비스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녀의 얘기에 살을 보탠다.  


“뭐랄까, 봉다방의 식구 같은 느낌이 덜 하다거나 그런 거야?”

“비슷해.”


대화는 그렇게 주고받았지만 그 속뜻을 알 것 같았다. 사실, 마로는 손님이 들어와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일에만 집중하는 시크함!’ 이라며 몇 번의 우회적 표현을 한 적 있지만 물론 잘 전달되지 않았고, 사실상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 때문인지 봉순이나 나나 딱히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매의 필터링에는 걸려들었다.(오늘은 아군이 아니니까...) 어쩌면 매 스스로도 자신이 걸러낸 것이 뭔지 모를 수 있다.  


봉순과 내가 우연히 자리를 비우고 마로가 혼자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카페로 들어선 손님은 미동도 없이 자신을 몽환적으로 바라보는 종업원과 마주하겠지. 침묵을 견디다 못해 메뉴라던가 뭔가 얘기를 하면 스르르 다가와 메뉴판만 놓고 제자리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몽환적인 응시는 계속된다. 웃기지만, 결코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면이 마로의 매력이기도 하다. 무작정  알려주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익혀나가면 된다. 그 안에서 마로만의 대응방식이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며, 우리는 약간의 포지션 변동을 하였다. 기본적인 서빙 및 응대를 마로가 한다.


머지않아 손님들이 들어왔다. 난 사실 그들이 입구로 도달하기도 전부터 각각의 신원을 알 수 있었다. 40대 전후의 5명, 그중 남자는 오로지 한 명.


<부럽남과 사주만세>


봉다방 초반, ‘부럽남’ 이라는 단골 네임으로 늘 두 명의 여성과 함께 오던 그는,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그 영

역을 확장했다. 그렇게 최초 두 명이었던 여성회원의 수가 두 배인 네 명으로 불어나며 단골 네임은 ‘부럽남과 사주만세’로 변모하게 되었다. 게다가 앞으로 회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상당해 보인다.


그들은 항상 같은 날인 월요일, 같은 시간인 오후 3시에 나타났다. 코코아 한 잔과 레몬 티 세 잔,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도 늘 같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그렇다. 의자에 앉기 무섭게 교재로 짐작되는 서류들을 꺼내놓고는 하는데, 교재의 페이지가 바뀔 뿐 오가는 내용엔 큰 차이가 없다. 많은 양의 교재 때문인지 그들은 옆 테이블을 당겨서 사실상 여덟 명 분의 자리를 사용한다. 테이블이 몇 없고 소수의 손님이 잦은 봉다방의 특성상, 그들이 차지한 두 개의 자리는 상당히 큰 손실이다. 한 번은 커플 손님의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들이 차지한 테이블을 내어줄 수 있겠냐고 묻자, 교재를 이미 꺼내 두었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커플도 앞에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움키고 봉다방을 떠났다.


그들의 메인 주제는 ‘사주’였다. 그리고 부럽남은 모임의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진행도 항상 같다. 부럽남의 긴 설명이 끝나면 여성회원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녀들은 자신 또는 주위 사람들의 경우를 예로 들며 그 날의 수업 분량을 이해하려 노력하였고 부럽남은 권위가 느껴지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그녀들의 이해를 도왔다. 가벼운 내용이 오갈 때조차 그들은 상당히 진지하고 집중적인 태도로 임하고는 하였다.  


심리학도로써 그들의 대화에 동요되지 않으려 했다. 학문의 성격이 꽤나 상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다는 것 마저 부인한다면 거짓말이다. 언젠가 '코털을 뽑으면 비강의 기가 다 빠져나가 몸이 허해진다'는 부럽남의 말을 엿들은 뒤로는, 코털을 기르고 있다. 무엇보다 부럽남의 여성편력은 가히 그 대화를 궁금하게 만들 만하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이들의 특이사항은 사주에 대한 이야기도 여성들의 구구절절한 일상도, 또는 부럽남의 굵직한 보이스에 숨어있는 매력도 아니었다. 그들은 의외로 굉장히 까다롭다. 특히 본격 아줌마인 50대와 맛에 민감한 30대의 중간 선상에 있는 이 여성회원들은 까다로움을 표현해내는 최적의 조건에 있다. 그 덕에 봉순과 나는 커피를 다시 만들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불만을 토로하며 다시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커피가 미지근하다며 다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미지근한 커피의 찻잔은 이미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커피는 덜 뜨거운 섭씨 85도에서 가장 좋은 맛을 낸다. 하지만 봉순과 나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종업원의 태도에도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봉순의 애매한 태도에 심사위원 같은 냉소적인 말투로 지적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숨겨놓은 칼날이 너무 잘 보여서 사실상 못 본 척하기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하하하 헛웃음을 날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때문에 그녀와 나는 월요일 그 시간이 되면 평소보다 조금 더 긴장 상태를 취하고는 한다.  


“어서 오세요. 봉다방입니다!”


마로가 침묵할 것을 예견하고 서둘러 환영 인사를 했다. ‘부럽남과 사주만세’는 앞다퉈 서로의 의자를 빼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각자의 가방에서 부산스레 서류와 펜을 꺼낸다. 난 평소와 주문이 같은지 확인했고, 잠시 후 마로가 완성된 메뉴를 그들에게 갖고 갔다. 봉순과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곁눈질했다. 마로가 그들 앞에 각각 잔을 놓은 뒤 돌아온다.


“마로야, 맛있게 드시라고 하면 손님들이 더 좋아해.”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마로가 말 끝나기 무섭게 그들에게 다가가더니 ‘맛있게 드세요’라는 낱말을 내려놓고 왔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라는 말도 더할 걸 그랬다.


그런데 마로의 말투가 약간 이상하다. 억양이 없는 것만 같다. 말수가 적고 조용해서 그렇지 정작 그녀의 말투에는 아이 같은 억양이 숨어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말투 속에는 그게 없다. 여성회원 중 한 명이 그 뭔가 이상한 타이밍과 일반적이지 않은 말투, 돌아서는 몸짓 등을 한 번 훑더니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좀 더 눈여겨보다가 다시 대화에 참여한다.


“학생, 여기 쿠키가 다 떨어졌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다른 테이블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마로에게 사주만세 중 한 명이 말했다. 아까 마로를 훑어봤던 그녀이다. 지금 보니 그 눈의 상당히 네모나다. 광대를 비롯하여 얼굴 골격이 크다. 코도 크다. 입만 작다. 사주나 관상은 잘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 마주치던 쉽지 않은 상대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로는 주방에서 쿠키가 들어있는 종지를 집어 그 테이블에 갖다 놓고는 빈 것을 갖고 돌아왔다.


“에이, 그냥 쿠키만 여기다 덜어주면 되지. 왜 접시를 두 개나 써~ 아깝게.”


네모 눈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미간을 접으며 얘기한다. 심사위원 모드 발동이다. '위원 2'가 거든다.


“요즘 젊은 사람들 그렇죠. 자원 귀한 줄 아나 뭐.”


갑자기 ‘자원’이란 말이 이렇게 낯선 단어였나 싶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자신의 귀한 자원을 테이블 위로 꺼내놓았다. 귤과 쌀과자였다. 그 요란한 봉지 마찰음에는 나의 주의를 끌려는 의도가 있다. 눈이 마주치자 '먹어도 되잖아?'라는 듯 들어 올린 눈썹과 늘어진 인중을 보내왔다. 난 긍정의 의사를 보냈다. 그들을 노려보던 봉순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외면한다.


"이거 안 썼으니까 갖고 가요."


네모 눈의 그녀가 종지의 쿠키를 자신들의 간식 더미에 포함시키고는 말했다. 마로는 말없이 다가가 종지를 갖고 와서는 자신의 일을 했다.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이 의외였는지,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 뒤 대화를 재개하였다. 부럽남은 그녀들의 리듬에 따라 굉장히 유연하게 대화를 멈추거나 이어갔다. 마치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재생 또는 정지되는 카세트 같다. 그리고 그 카세트 소리와 청자들의 요란한 추임새는 좁다란 봉다방을 쩌렁 울리기에 충분했다.


다른 손님이 들어왔고 사주만세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마로가 응대하기 위해 다가가자, 부럽남 카세트는 다시 정지되었다. 네모 눈 그녀가 또 말을 건다.


"학생, 여기 커피는 리필 안 된다고 했나?"


만날 하는 질문이다. 아마도 마로에겐 처음 하는 게다. 그런데 네모 눈의 입모양을 보니 마치 앞니로 멸치라도 씹는 것처럼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뭔가 약이 올랐거나 탐탁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네. 하하하 아무래도, 저희가 양보다는 질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요."


대신 대답했다. 마로가 지금 이 미묘한 긴장감에 연연치 않고 건조하고 짧게 대답할 것을 직감했다. 대답 소리의 방향이 예상과 달라서인지, 네모 눈이 꽤나 크게 뜨이며 이쪽을 한 번 향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옆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게다가 지금 봉다방에 있는 누구라도 이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 터였다.


"아니 저 학생은 입이 없나?"

"어머 자기야. 요즘 공부 열심히 안 해? 관상 딱 보면 나오잖아. 저 눈썹 라인 하며…."

"맞네. 맞아. 어쩐지-"


음악의 고저에 따라 들리는 말소리가 끊기기는 하였지만 그 몇몇 단어들이나 혀를 차는 소리 등은 그 대상을 도발하기에 충분했다. 옆자리의 손님이 몇 번 힐끔거리더니 그들과 먼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옮겨봤자 코 앞이지만 그나마의 소중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상황의 정점에 있는 마로는, 역시나 별로 개의치 않으며 새로  주문받은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멸치 씹던 입이 또 열린다.


"아니, 저번에도 얘기했었는데, 커피가 좀 미지근해~"

"아. 네 그건…."

"마시던 커피 주는 거 아냐~?"


사주만세가 입을 모아 웃는다. 부럽남도 웃는다. 봉다방의 주방은 바의 높이가 매우 낮아서 사실상 내부가 다 보인다. 굳이 의심하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모든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따라 웃는다. 오늘따라 양쪽 볼이 무겁다.


“그러지 말고 여기 두 잔만 리필 좀 해줘요.”


항상 오는 요구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같다.


"저희가 커피 가격이 잔당 원가랑 거의 근접해서요."

"에이~ 삼대 거짓말 중에 하나가 장사 안 남는다는 말이잖아~"


그들의 대답도 항상 같다.

봉다방의 커피 가격은 일반 커피전문점에 비해 턱없이 저렴한 가격이다. 그녀의 집에 차렸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적었고 그 외의 부가적인 비용은 마법사 봉순이 거의 다 해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직원 인건비가 거의 책정이 안 되어있다. 내 월급, 완두콩 색 봉투의 귀여움에 가려진 그 액수…. 커피 한 잔에는 그만큼이나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네들이 의도하는 게 무엇이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진상은 어디에나 있다. 오늘 아침의 내 모습도 그랬다. 난 대답 대신 웃으며 쿠키를 좀 더 내어갔다.


"학생 생각은 어때?"


내 뒤를 이어 다른 손님의 메뉴를 내어가는 마로를 멸치 입이 집요하게 쫓는다. 마로는 동요 없이 손님의 테이블에 주문된 메뉴를 놓은 뒤,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하고는 사주만세를 지나 주방으로 돌아왔다.


"학생."


멸치 입이 펜을 내려놓는다.


"학생 내 말 안 들려?"


식은땀이 난다. 봉순도 놀랐는지 곁눈질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놀란 얼굴 귀엽네.) 하지만 정작 멸치 입이 그토록이나 애타게 부르는 ‘학생’은 평소와 다름없이 주방을 정리할 뿐이다.


“저기 마로야 저쪽에 손님께서 부르….”

“아니,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그녀는 나의 중재를 막으려는 듯, 더 강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녀와 함께 온 일행들도 하나 된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로가 나를 한 번 본 뒤 아무도 없는 싱크대 쪽을 돌아본다. 봉다방의 이곳저곳을 훑는다. 봉순과도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다시 집기들을 정리한다. 멸치 입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며 목 주위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학생 아닌데.”


멸치 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학생’을 외칠 때쯤, 마로는 입을 열었다. 감정 같은 것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잘못된 무언가를 수정하려는 듯한 의지가 보였다. 그녀는 약간의 간격을 둔 뒤 이이서 말했다.


“여기 직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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