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빨간색 꽃, 노란색 향기
“마로야.”
한적함이 고개를 드는 마감 시간, 마로를 부른다.
“꽃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들어?"
"좋은 냄새."
마로가 잠시 시간 간격을 두더니 대답했다. 사실 그녀로서는 거의 즉흥적인 반응이나 다름없다. 그 코가 실룩 이는 것 같다.
"아, 좋은 냄새…. 그렇구나. 그럼 좋은 냄새는 무슨 색이야?
"노랑."
"노란색은 어떤 느낌인데?"
"꽃잎. 좋은 냄새."
또 코를 씰룩거린다. 난 질문을 이어간다.
"그러면 혹시 빨간색은 어떤 느낌이야?"
"매워요."
"그렇구나. 그런데 네가 그린 꽃은 빨간색이네?"
벽화를 가리키자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그림을 본다. 나무벽 한 틈에 노란색 꽃과 빨간색 꽃이 피어있다.
그리고 기습.
"그럼 저 꽃에선 매운 냄새가 나?"
마로가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한다. 그녀가 평소보다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은 크게 떴지만 초점은 오히려 희미하다. 그 안에서 의아함이 피어났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오후에 있었던 일 때문이야.”
마로가 고개를 옆으로 서서히 기울인다. 매운 냄새와 꽃 그리고 오후라는 단어가 뒤죽박죽 버무려지고 있나 보다.
“매운 고추장이었던 빨간색도, 꽃잎이 되면서 마치 노란색인 것 같은 좋은 냄새가 나잖아?"
난 봉순도 이 멋진 대사를 듣고 있는지 확인한 후, 음악 소리에 묻히지 앉게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사장님과 나 그리고 마로의 색깔이 서로 다르지만, 이곳에서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 가져야 하는 모습들이 있는 것 같아."
오후의 한차례 폭풍이 지난 후, 봉순은 내가 마로에게 무언가 얘기해주었으면 했다. 내가 그녀를 잘 이해시켜주길 바랐다. 그 덕에 반나절 내내 그럴듯한 말을 생각했다. 마로의 반응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도 준비했다. 물론 그녀를 잘 이해시키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봉순이 부탁했고 같이 들을 것이라는 사실에 힘이 바짝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아니, 그게 더 크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화장실 거울로 가서 ‘진지한 얼굴’ 가면을 구입했다. (꽤나 비쌌다) 그리고 마로를 향해 그 위대한 연설문을 낭독한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마로의 시선을 피해 ‘나 멋있지’ 정도의 제스처를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이 정도면 됐냐’하는 심술궂은 표정을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내 연설문을 들은 봉순의 입가라던가 표정을 훔쳤다. 오늘따라 지독히도 무표정이다.
오늘 오후, 마로의 표정도 비슷했다.
“여기 직원이에요.”
감정 충만한 스포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나 나올법한 말, 마로가 왜 그런 낯 뜨거운 대사를 뱉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례를 범하고 있는 무지한 객들에게 ‘바리스타’라는 고유 영역을 대표하여 전문가적 소견을 밝힌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따금씩 진상 손님으로부터 고통받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울분을 대변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높아지는 서비스 정신에 비해 정체되는 고객의 의식 수준을 고발한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마로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뿐인’ 것이 그녀이다. —봉순 앞의 내 표정을 설명할 때 외에— 그녀의 오지랖이 필요 이상으로 넓어지는 일은 없다.
아마도 무언가가 마로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그것은 반복되는 사주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부럽남의 능글맞은 말투일 수도 있고 40대 여성의 멸치를 씹는 입모양일 수도 있다. 또는 애초에 아무것도 건드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평소처럼 질문에 답을 한 걸지도.
고하자면,
생전 즐기지 않던 빨간색까지 들먹이며 마로를 이해시키려 했지만 사실 그럴 자격은 없다. 나 역시 그 상황을 즐겼기 때문이다. 마로의 반응은 정말이지 통쾌했다. 특히 그녀의 당연한 대답에 멈칫하는 사주만세의 표정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어린 친구가 버릇이 없네.”
마로의 대답 때문인지 무관심한 듯 점잔을 떨던 일행들도 감정 동요를 일으키며 거들었다.
“요즘 애들이 저래요. 개인주의 사회야 완전.”
“직원이면 직원답게 행동해야지. 지금이 어떤 시댄데.”
“학생, 지금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인 줄은 알아?”
그들은 한국 사회의 문화 통념과 분단 비극을 인용하였다. 식민지 역사도 끌어들이며 마로의 반응에 회초리를 댔다. 인터넷 폐해, 청소년 비행, 사대주의, 그럴듯한 그리고 나올 수 있는 잣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쏟아져 나와서는 그들의 무기가 되었다.
마로는 처음과 그대로였다. 마치 그 대화의 중심이 자신이란 걸 모르는 듯, 자몽을 얇게 썰어서 유리병에 담그고 있었다. 그 손의 속도와 표정에 평소와 다른 어떤 것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거나 대답이 불필요한 말에 대해서는 고개를 들고 눈만 깜빡였고, 아는 내용에 대해서는 이따금씩 당연한 말을 한마디씩 뱉었다. 식민지 아니에요, 인터넷 안 해요, 딱 그만큼이었다. 딱 마로만큼만 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반응할 때마다 사주만세의 멈칫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
“어른이 말씀하시면 그냥 그러려니 할 것이지 버릇없게!”
왜 그렇게 화가 나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을 정도였다. 종업원과 고객의 관계에서 언제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 이사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만큼 그들은 다급해 보였다. 사주 교재와 함께 쌓은 지적인 분위기가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얌체행동을 살갑게 감싸주지 않는 어린 종업원에게 나이와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그 잣대와 인용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그리고 메슬로우의 욕구 이론 4단계를 언급할 때쯤, 나에게 묘한 눈빛을 보냈다. 말려주었으면 하는 눈빛, 중재할 틈 주지 않던 초반과 상반되는 참으로 이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난 말리는 듯 엉성한 포즈를 취하였을 뿐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고소하였기 때문, 욕구 이론 다음에는 어떤 자료가 활용될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직원이 저러는데 말리지 않고 뭐해요?”
결국 부럽남의 공개적인 SOS를 끝으로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나는 하하하 헛웃음을 내던지며 사과를 드렸다. 지금껏 소환하였던 헛웃음 중 가장 사무적인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맞춤형 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차가움을 숨긴 채 돌아섰다.
부럽남과 사주만세는 보란 듯 두 시간가량을 학업에 열중한 뒤 사라졌다. 봉다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어딘가 분주해 보였던 기억이 난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공손함을 가장하였지만 내 말투에는 깨소금 같은 도취가 숨어있었으리라.
거기까지다. 빨간색은 빨간색.
감정적으로 대처한 마로나 그것을 묵과하며 비밀스러운 쾌재를 외치고 있던 봉팔이나 똑같다. 고객에게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던 손님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꽃이 되지 못했다. 좋은 서비스에 실패했다.
마로에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전했다. 통쾌했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커피 제조에만 집중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너의 뛰어남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서비스 정신 역시 커피의 맛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기분이 상한다면 상한 맛으로 느껴질 테니까.”
“맞아. 매운 냄새가 났어도 꽃이 좋았을까?"
좀 전까지 아무 말 없던 봉순이 거든다. 너 듣고 있었구나.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온화한 미소가 머물러야 할 타이밍인데 자꾸 어금니 드러나는 함박 미소가 나오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어금니 감추며 말을 더한다.
“마로는 역할 놀이 아직 안 해봤지?”
쿡쿡,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것은 소리라기보다는 기척일 것이다. 봉순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다. 쳐다보자 마시던 커피를 흘린 듯한 표정으로 입을 가린다. 너 지금 귀여워,라고 말하고 싶다. 필요 이상의 시선이 머물자 봉순이 어깨를 으쓱이며 ‘왜?’라는 입모양을 한다. 나는 황급하게 채널을 마로에게로 돌렸다.
“어, 그래. 알겠지?"
마로와 눈이 마주치자 의미도 모를 말을 뱉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가 갑자기 헤벌레 멍충이가 된 것이 의아한 지, 특유의 레이더를 켜고는 표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무슨 얘기 중이었지, 아.
"아! 그래. 역할놀이. 내가 손님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