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Apr 29. 2024

시대유감

1996


얼마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팬데믹, 언택트, 거리두기 그리고 확찐자 등의 용어들을 가져온 코로나 시대 말이다. 당시엔 '마스크를 벗는 세상이 오면 어떨까'라고 막연하게 상상했었는데, 막상 마스크 없는 세상이 되니 '어떻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만약 먼 미래의 아이들에게 코로나 시대에 대해 얘기하면 뭐라고 할까. 온 세상 사람들이 외부에서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살았다는 것, 음식점에서 대화를 할 수 없고 심지어 밤 9시 이후로는 밥조차 먹을 수 없었던 상황들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작은 밀키트 캡슐을 큰 음식으로 바꾸면서) "음식을 왜 굳이 밖에서 먹어요?"

(그 옆에서 빛이 나는 고글을 쓴 채) "그러게? 안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중 누군가는 "와, 그러니까 그땐 밖에 나가야만 할 수 있는 게 있었다는 거잖아요?"라면서 이해의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지인의 코로나 양성 소식을 들을 때의 기분이라든가, 마스크를 한 채 버스를 탈 때의 답답함 같은 것을 공감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 잠시만요. 모르는 사람들이랑 왜 같은 차를 타요?"



혹여 그들이 성인이 되어 보다 진화한 감각과 깊은 사유를 갖게 된다고 해도 결국 코로나 당시의 상황을 절반 밖에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서만 들리던 바이러스가 우리 동네로 찾아오고, 주변에서 실제로 죽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의 공포를. 매일 발생하는 십만여 명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를 단순한 그래프 추이로 보고 있을 때의 황망함을. 하루아침에 인적이 사라진 고요한 거리를. 회사 사람들과 모니터를 통해 처음 대화할 때의 어색함을. 하나 둘 문을 닫던 가게들을. 결국 내가 그 병을 피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두려움을 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던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존재해야만 제대로 겪게 되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서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경험이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청소년으로부터 성인이 되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특히 문화 콘텐츠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가히 문화 콘텐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그 시대와 관련된 많은 키워드가 떠오르지만, 오늘은 '시대'라는 단어에 집중해보려 한다. 90년대엔 그 시대에 남다른 유감을 품고 있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유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곤 했다. 어떻게? 자신의 음악으로.




시대유감(時代遺憾)


2024년 1월, 한 뮤직비디오가 잠시 이슈를 탔다.

<시대유감 2024 ver.>이라는 제목이었다. "왜 기다려 왔잖아"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처음 듣는 이에겐 신선함을, 오랜만에 들었던 이에겐 반가움을, 어제 들었던 이에겐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그 곡을 만든 이는 서태지다.



그로부터 16년 전인 2008년 9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3만 5천여 명의 관객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톨가 카쉬프 Tolga Kashif라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리드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있다.


TMI: 톨가 카쉬프는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등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02년에 '퀸 심포니(우리가 아는 그 퀸)'을 지휘한 바가 있다.


그의 연주가 10여 분간 지속되고, 그 멜로디는 점차 익숙한 선율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진짜 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도입부, 그리고 열광적인 함성과 함께 무대 뒤편의 거대한 스크린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 서 있던 남자는 노래의 첫 소절을 뱉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를 데려간다고." 이 곡의 이름은 <Take 1>이다. 이 공연의 이름은 <서태지 심포니>. 공연을 한 사람은 서태지다.



그로부터 또 16년 전인 1992년 3월,

뭘 잘 모르는 이들 틈에서 뭘 좀 안다며 나타난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만 알고 있을 수는 없다며 온 세상을 향해 '난 알아요'라고 외쳤다. 그의 노래는 파격적이었고 흥겨웠으며 구슬펐다. 처음 보는 맛에 당황했던 대중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도입부의 춤을 따라 추거나 후렴부의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엔 그의 복장을 따라 헐렁한 멜빵바지를 입거나 벙거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난 알아요>라는 곡은, 이후 대중음악을 얘기할 때 그 전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곡을 발표하며 데뷔했던 신인 그룹의 이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그 곡의 작곡자는 서태지다.



어떤 존재나 그렇듯 서태지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아이들’과 함께였을 때만 열광했던 사람, 아이들이 없어진 후부터 인정하는 사람, 그의 모든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 등, 선호가 나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차이를 떠나서 그가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 계에 아주 진하고 긴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젊은 층에게 서태지를 설명한다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음악성이야 각자 들어보고 판단하면 되겠지만, 서태지에겐 지금의 그들은 알 수 없는,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은 하는 대중음악가


그는 대다수의 관심을 받는 대중음악가였다. 

그럼에도 여러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노래에 담곤 했다. 때때로 그것은 학생의 고충을 대변하기도, 교육시스템이나 분단의 비극을 꼬집기도, 가출청소년에게 얼른 귀가하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비록 서태지(형)는 72년생이지만, 음악을 통해 이토록이나 우리 시대의 애환을 외쳐준 덕에 80년생에게도 그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당시 무엇보다 그를 잘 나타내던 단어 중 하나는 ‘저항’이었는데, 그런 캐릭터를 갖도록 한 결정적인 곡이 바로, <시대유감>이다.


이 곡은 말 그대로 시대時代에 대한 유감遺憾을 표하고 있다. 어떤 시대에 대한 유감인가 하면, 멀쩡해 보이던 다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성수대교, 1994), 대형 백화점이 그대로 주저앉는(상품백화점, 1995),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만든 시대에 대한 유감이다. 그런 상황을 만든 기성세대의 무책임함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TMI: 실제로 성수대교 붕괴는 건설사의 부실공사, 감리 공무원의 부패, 정부의 미흡한 안전검사가 그 원인이었다. 상품백화점도 비슷하다. 부실한 하부구조 설계, 그리고 이를 무시한 80여 톤의 냉각탑 설치가 문제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대유감’이 저항의 상징이 된 데는 단순히 곡이 가진 메시지 때문만이 아니다. 이곡은 서태지와 아이들 4집 <Come Back Home>에 수록된 곡이었는데, 가사 일부가 너무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사전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노래에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이다. 가사를 적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따라 부르고 있었다...) 위원회는 심의 통과를 위한 조건으로 이 가사의 부분적인 수정 및 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서태지는 모든 가사를 삭제한 후 연주곡만을 앨범에 실었다.


이슈의 중심에 있던 곡이 가사도 없이 앨범에 실렸으니 기다렸던 대중은 호기심이 더 커졌고, 세상은 더 열심히 그 곡에 집중했다. 당시 PC통신(이전 글에서 말했던 파란 세상)의 토론 게시판에는 서태지의 시대유감과 관련된 글이 2천여 건이나 올라왔었다고 한다.


지금 기준에서는 이 수치가 많게 느껴지진 않을 수 있으나, 당시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했고, 이 파장은 정치권까지 퍼져서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관련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결국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시대의 유감을 그려내는 것


개개인이 서로 다르듯 그들이 지각하는 시대의 범위도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국제 정세를 포함한 모든 상황을 그에 담을 것이고, 누군가는 매일 마주치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이들은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시대에 대해 일정 수준의 유감을 품고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풀어내곤 한다.


어느 날 세상에 나타난 서태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유감을 품었고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그는 좀 유별났다. 마치 모든 유감을 털어내야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존재인 듯, 십수 년에 걸쳐 그것을 전심으로 전했다. 음악으로 말이다.


놀랍게도 그의 유감을 담은 음악들은 오히려 다른 이들의 유감을 덜어주었다. 그의 외침만이 갖는 영향력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제 서태지를 무대에서 만나긴 어렵지만, 여전히 그는 어딘가에서, 그려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유감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