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IV
"시트콤이 뭔지 알아?"
"어... 웃긴 거요."
"웃긴 거? 어떻게 웃긴 거?"
"그냥 웃긴 영상 같은 거요."
“유튜브? 예능프로?”
“아니요.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면 드라마나 영화라고 보면 될까?"
"네, 그런 거요"
2010년대생과의 대화다. 이 아이는 시트콤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트콤을 모르다니... 음, 그러고 보니 시트콤이 뭐지?
누군가 나에게 시트콤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일상을 소재로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20~30분 분량의 연속극’ 정도로 얘기할 것 같다. 그런데 찾아보니 시트콤(sitcom)은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드라마보다는 코미디의 한 장르였던 것. 그런 면에서 지금의 SNL코리아는 (구분상 시트콤 장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에 가장 가까운 콘텐츠라고 볼 수 있겠다.
시트콤은 전통적으로 관객들이 있는 세트장에서 촬영을 했다. 고로 웃긴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웃음소리도 영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그 소리 자체를 적절한 타이밍의 효과로 사용하는 웃음 트랙(Laugh Track) 방식으로 이어졌고, 현대 예능에서 활용하는 여러 사운드 장치의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다. 시트콤을 보기 시작했을 때쯤, 마치 방청객이 있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트콤은 내가 청소년이던 90년대 중반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후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나의 삶에 있어서는 꽤 선명한 기억을 남아있는데, 이미 그것을 모르는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글을 쓰기 위해 재밌게 봤던 시트콤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문득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요약된 텍스트를 보는 것만으로 그 당시의 감정 세포가 깨어나면서 추억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상적이었던 시트콤 7편을 골라서 요약해 보았다. 약간 블로그 같은 느낌의 내용이지만... 그것을 읽는 누군가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1996.10.21. ~ 1999.05.21. 525부작 MBC
같은 하숙집에 사는 대학생들의 일상 이야기
청춘과 사랑을 담은 최초의 시트콤
월~금 저녁 7시 5분 방송
최고 시청률 36%
#출연진이곧추억 #송승헌 #홍경인 #우희진 #이의정 #이제니 #잘생긴신동엽
1998.03.02. ~ 2000.12.01. 682부작 SBS
순풍산부인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시트콤 열풍의 문을 연 작품. 수많은 레전드 에피소드를 보유
월~금 밤 9시 25분 방송
최고 시청률 30%
#오지명의시작과끝 #아-용녀어어 #아-장인어르은 #미달&의찬캐미 #송혜교의등장
2000.02.14. ~ 2001.04.09. 57부작 MBC
남자 셋 여자 셋(20대)의 30대 버전이자 후속작
대한민국 최초의 성인 시트콤
월요일 밤 10시 55분 방송
최고 시청률 37%
#윤다훈_무명청산 #작업의재탄생 #국어사전에도_등록! #의사_정웅인 #순수_박상면
2000.12.18. ~ 2002.02.22. 293부작 SBS
가족의 일상을 다룬, 20세기의 마지막 시트콤이자 21세기의 첫 시트콤
몇몇 에피소드는 현세에서 '시트콤계의 레전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시트콤'이라는 평을 남김
월~금 밤 9시 15분 방송
최고 시청률 28.9%
#노주현의재발견 #신구의전성기 #feat.니들이게맛을알아 #전설의NG엔딩
2000.07.31. ~ 2002.05.17. 422부작 MBC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 대학생들의 청춘 이야기
한국의 프렌즈로 불렸을 정도의 인기작
월~금 저녁 7시 방송
최고 시청률 39.7%
#출연진이곧추억2 #구리구리_양동근 #박경림 #리즈_조인성 #정다빈 #장나라 #이민우 #타조알 #이재은 #왕건의 재탄생
2006.11.06. ~ 2007.07.13. 167부작 MBC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의 일상을 다룬 시트콤
시트콤이 웃음뿐만 아니라 인생의 희로애락과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
하이킥 3부작(거침없이, 지붕뚫고, 짧은 다리의 역습)중 작품성 기준 최고의 명작
월~금 저녁 8시 20분 방송
최고 시청률 20.4%
추억 태그: #야동순재 #호박고구마 #오케이 #정준하의가능성 #서민정의발견 #캐릭터와찰떡_최민용
2009.09.07. ~ 2010.03.19. 126부작 MBC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하이킥 3부작 중 최고
역사에 남을 충격적 엔딩으로 시청자들을 '어...?'하게 만든 대단한 작품
월~금 저녁 7시 45분 방송
최고 시청률 24.9%
#카페베네_역대급_마케팅효과 #심지어_BGM이_광고음악으로_들림 #빵꾸똥꾸 #신세경의등장
+ 포함하지 못한 <안녕, 프란체스카>, <똑바로 살아라>에게 심심한 사과를...
시트콤의 인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 점차 사그라들었다. 제작비 등의 환경적 요인이 주된 이유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소재의 고갈이 더 큰 듯하다. 대부분의 시트콤들이 매일 하나의 에피소드를 다루었고 그 안에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일상 소재나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이었으니, 대중의 눈이 그것에 꽤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 이상의 신선한 소재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점차 웃음에 대한 빈자리는 더 가볍고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지붕 뚫고 하이킥>의 충격적 결말이 시트콤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 작품 이후로 시트콤들의 인기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나타낼만한 데이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시 대중들은 꽤 많은 시트콤을 오랜 시간 소비한 후였고, 결말의 임팩트가 그 무의식적 피로도에 큰 쉼표를 남긴 것 같기도.
그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트콤이 없는 세상에 산다. 하지만 비슷한 컨셉의 예능과 영상들에 지쳐갈 때쯤, 당시의 그것은 짤과 같은 콘텐츠로 재가공되어 나타나곤 한다. ‘오랜만에 특정 에피소드를 찾아봤다’는 누군가의 소식에 담겨 오기도 한다. 그러면 마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를 마주친 듯 반가운 기분이 든다. 티브이 속 시트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삶의 일부분으로 남아 그렇게 인사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