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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아깝다

by 왕고래


"나이가 아깝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이다. 이미 먹어버린 나이가 제값을 못하니 아깝다는 것.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며 현실 세계에서도 왕왕 들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나이를 어디로 드셨냐, 나이가 많아서 좋겠다 등이 있다.


이 말이 들리는 장면에는 둘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격한 갈등 상황이다.


대체로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고집을 부리거나 나이 부심을 펼칠 것이고, 어린 사람은 알고 있던 자신의 권리를 외치거나 상대의 나이 부심으로 인해 발작 버튼이 눌릴 것이다. 싸움이 길어지다 보면 한 번쯤 그런 종류의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 진짜,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거야.


다른 장면도 있다. 후배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권위만 내세우는 김 부장을 보면서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김 부장은 나잇값을 못 한다고.


예전에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면, 나는 나이가 어린 사람의 상황에 더 몰입했을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뻔뻔하며 내 권리를 은근슬쩍 침해하려는, 그저 그렇게 늙어버린 성인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직접 말은 못 했지만)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을 흉본 적이 분명 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같은 상황을 봤을 때는 왜인지 예전에 흉봤던 그 어른에게 눈이 갔다. 그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젊은이였던 시절에 했던 그대로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내가 이 변화를 알아챘을 때쯤엔 이미 다른 세계로 넘어온 뒤였다. 내 의도와 주변의 반응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곳.


이곳에서의 나는 독립적인 개인보다 누군가의 보호자이자 책임자, 선배이자 연장자다. 예전엔 통했던 농담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다. (예전에는 분명 통했었는데...) 뚝심과 열정은 나를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매력이었던 면모는 결점으로 그 모습을 바꿨고, 애착을 담아 입던 옷들은 주책을 넘어 집착이 돼버린다. 같은 행동에도 다른 잣대가 추가되었고, 혹여 수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언제든 내가 먹은 나이의 경로를 의심받는다.


준비한 적이 없으니 모든 상황이 불현듯 낯설 뿐이다. 사실 나는 딱히 변한 게 없다. 무해하게 웃으며 뛰어놀던 유년 시절과, 상상력이 풍부했던 청소년기,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었던 청년기로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변하는 건 주변이다. 주변의 연령대가 조금씩 내려갔다. 후배들이 늘어난다. 심지어 누군가는 내게 조언을 구하고, 누군가는 내 판단을 기다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한다.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지.


심지어 과거에 흉봤던 이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나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참 성의 없이 나이를 먹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먹어버린 나이는 꽤 아까운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아깝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명운을 달리 한 이에게 말이다. 여기서의 ‘아깝다’는 아직 먹지 않은 나이를 의미한다.


남아있는 나이도 아까운 건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건 현재의 그것을 잘 먹고 있는지일 것이다. 아까우니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


그러려면 위해 좀 더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익숙해지는 장면을 달리 대하며, 작아서 못 봤던 것들의 의미를 알아채며. 거창한 결심보다는 작은 시도를 더한다. 서둘러 먹어버린 시간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이것은 반복되는 일이다.


그래, 이 정도면 아깝지 않았다, 생각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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