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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찾으러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청이 어려운 이유

by 왕고래


정 팀장은 또박또박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 글자씩 점자를 찍듯 입을 상하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정확한 발음이 나오도록 애쓴다. 중간중간 부점을 넣어 자신의 메시지가 적절한 강조와 함께 전달되도록 한다. 그는 교양 있는 톤으로 말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렇게 들리기도 했다.


이따금 호흡이 부족한지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는 숨을 다시 마시지 않고 소리가 나오지 않더라도 문장의 끝까지 도달한다. 입은 말할 때처럼 상하좌우로 똑같이 움직이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그 지점에서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순 있겠으나 저의 짧지 않은 경험으로 봤을 때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다른 회사에서도 알 방법…(뒤는 듣지 못한다. 입은 움직이고 있다.)"


이럴 때 나는 문맥상의 의미를 유추하곤 했는데, 그러기에 너무 이른 지점에서 호흡이 끝나도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소리가 어떤 시점에 끊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이 마침표에 도달하기 무섭게 숨을 재빨리 들이마신 후 그 지점부터 다시 말했다. 호흡이 좀 남아서 그런지 그 앞의 내용도 다시 추가되곤 했다.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이 분야에서 오래 있었던 제 경험에 따르면 다른 회사에서도 이 전략을 알아챌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정 팀장의 말은 다른 사람의 호흡을 끊으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10분 뒤엔 지금의 생각이 남아있지 않을 사람처럼, 뭔가 떠오르는 즉시 입을 열었다. 이어서 긴 호흡이 여러 번 다할 때까지 문장을 뱉어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제대로 듣지 않기 시작했다. 회의에서나. 일상 대화에서나.



귀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마흔을 넘어가면서 주변의 동년배 또는 연장자들 중 정 팀장 같은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듣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 팀장 같은 사람은 마치 입을 열게 만드는 수많은 단어가 사전에 약속되어 있는 것처럼, 상대의 말속에서 아주 사소한 것만 걸려도 입에 시동을 건다. 그러다가 심판의 출발 사인을 기다리지 못하는 '말'처럼 상대의 호흡을 끊으며 튀어 나가 버리고 만다. 적절한 지점에서 멈추지 못한다.


과연 이들이 경청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중요성을 묻는다면, 당연히 중요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꽤 잘 듣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걸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할까.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 변화란 말 그대로 '나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많아진 나이는 여러 환경의 변화를 내포하는데, 그중 하나는 사회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려진 점이 있다. 특히 회사생활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거의 어떤 시점엔 내 말을 끊어줄 사람이 지금보다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동기나 친구, 혹은 다른 어른이었고, 이들의 충분히 드러난 반응 덕에 내가 눈치를 밥 말아먹고 다른 사람의 귓등에 가서 부딪칠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내 동기들은 다른 부서의 장이 되거나 사회를 떠난다. 자연스레 주변은 나보다 어린 사람으로 채워진다. 과거에는 얻을 수 있었던 일종의 안전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내가 뱉는 말의 가치와 무관하게 인내심을 갖고 들어줄 사람이 더 많아졌다. 예전과 같은 반응을 기준으로 말을 하다가는 적절한 타이밍에 멈추지 못하고 맥락에 맞지 않는 말들을 이어 붙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멈추지 못하고 말을 하는 데는 점차 줄어든 주변의 관심도 한몫을 한다.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은데, 이는 나이가 많은 대상일수록 더 그렇다. 고로 주변으로부터 질문을 꽤 받던 사람이더라도 나이를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는 갈증을 견디지 못한다. 묻지 않으니 비슷한 단어만 나와도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젊은 시절엔 그런 방법이 통했을 수 있다. 심지어 일종의 자신감이나 매력이 됐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은 젊을 때의 긍정적인 상황과 정확히 반대의 문제를 만든다. 궁금하지 않은 신변잡기를 말 사이사이마다 끼워팔기 하듯 뱉어버리는 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듣기 힘든 것과 별개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그것을 듣고 있는 후배들을 보는 곤욕이 더 크다.


어느 날 정 팀장이 말했다. 자신은 그게 누구든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 술에 기대서 진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음 날 다시 찾아가서 면전에 대고 따진다는 것이다. 맨 정신에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냐며 몰아붙인다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 질문은 그저 주량이 어떻게 되냐는 것이었다.





실은 나 역시 정팀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말이지 경청은 힘들다.


마치 겸손이 힘든 것과 같다. 100번 겸손하다가도 어떤 상황에 놓이면 뽐을 내버리고야 마는 것처럼, 정신을 차려보면 귀는 떼서 지구 밖으로 던진 채 말을 쏟아내고 있다.


나름의 눈치를 챙기며 말을 잘 아끼다가도 어쩐 일인지 한 번 봉인이 풀리면 (그간 참았던 것까지 더하여) 뿜어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나마도 대화 중간에 알아채면 다행이다. 집에서 자기 전에 생각날 수도 있다. 아, 아까 그 상황은 좀 더 들었어야 했구나.


대화에서 중요한 게 듣기라는 점은 뻔한 얘기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뻔한 것이 더 어려워진다는 건 뻔하지 않다. 알아채려면 더 큰 노력과 관찰이 필요하다.


특히 후배들과의 대화가 더 그렇다. 그들은 나를 배려하느라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감사하게도 온몸으로 지금의 상황을 표현해주고 있다. 가령 그들의 반응 간격이 길어질 때, 천천히 고개만 끄덕일 때, 별 내용이 아닌데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 깊은 콧김을 뿜을 때, 표정이 가라앉을 때, 반응이 점차 줄어들 때다.


그때가 바로, 귀를 다시 찾으러 갈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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