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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역사를 바꾼 이들

소심인의 초능력 II

by 왕고래


소심인 중 HSP(매우 민감한 사람)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얼핏 생각하면 그들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소심인은 평소 조용하기 때문에 자극에 덜 반응하고 담담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활동적이고 여러 자극을 추구하는 대범인이 더 자극에 예민하고 쉽게 흥분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소심인이 자극에 훨씬 더 예민하다. 이는 유전적으로 소심인이 대범인에 비해 ‘감각 역치’가 낮기 때문이다. 감각 역치는 ‘각성을 일으키는 자극의 최소치’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역치가 낮을수록 사소한 자극에도 더 쉽게 각성된다. 따라서 소심인은 대범인에 비해 평상시 좀 더 높은 각성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환경이나 자극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더 쉽게, 더 크게 흥분한다.


그럼에도 추구하는 환경이 서로 반대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적절한 수준의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감각 역치가 높아 쉽게 각성되지 않는 대범인은 자극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좀 더 다양하고 강력한 환경을 선호하게 되고, 감각 역치가 낮아 쉽게 각성되는 소심인은 자극이 낮은 환경을 추구하게 된다.


대범인이 사교적이고 파티를 좋아하며 활발한 취미 활동을 추구하는 반면, 왜 소심인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제한적인 상황과 관계를 선호하는지 잘 설명한다.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 대범인은 “와! 대단해! 놀라워! 대박!”이라고 외치거나 타인과 교류하며 스스로의 자극 수준을 더 끌어올리고자 하지만, 고요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소심인의 내면이 더 격하게 끓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두 기질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소심인의 자극 민감성은 ‘저자극 환경을 견디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는 대범인이 노력으로 얻기 어려운 능력이기도 하다. 자극이 ‘낮은’ 상황을 견뎌내는 것은 자극이 높은 상황을 견뎌내는 것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감각 박탈 실험>은 저자극 환경에 강한 소심인의 능력을 잘 설명한다. 피실험자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자극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앞에는 네 개의 버튼이 놓여 있는데 원하면 언제든 누를 수 있고, 버튼은 각기 다른 종류의 소리를 들려준다. 실험 결과, 대범인은 소심인에 비해 월등히 많이 버튼을 눌렀으며 소리의 종류도 더 자주 바꾸었다.


즉, 소심인은 고독에 강한 종족이다.

조용한 환경 속에서, 더 자주, 더 오래, 스스로를 다듬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점차 비범한 능력으로 발현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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