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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인은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by 왕고래


“자네는 잘 만들어진 함선 같아.”


연말 회식.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이사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운을 떼었다. 혹시 오늘 잘못한 것은 없는지, 함선이 라니 열길 물속을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비행기처럼 화려하거나 고속열차처럼 속도감이 느껴지진 않는데 말이야. 항상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해. 누구와 일하든,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결국 계획한 곳에 도달하는 거. 그거 대단한 능력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이곳에서 밥값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냉소적인 이사님이 칭찬을 할 정도로 나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실 그것은 소심인에겐 그리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


성인이 된 소심인의 대부분은 책임과 역할, 관계, 업무를 무리 없이 처리한다. 다만 스스로 드러내거나 홍보하지 않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결점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 나는 전 직장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왕 대리는 자신감을 더 키워야 돼. 왜 그렇게 고민이 많아?”


상사는 ‘일단 겪어보고 부딪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며, 그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경험이 회사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낯선 상황에 놓이는 게 늘 당황스러웠다. 불확실성에 대해 걱정하면 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느냐며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받았다. 그리고 또 듣는다. 대범해지라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고난과 혼란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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