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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유행가.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by 아스파라거스

스타트업 바닥에도 유행trend이 있다. 주목받는 산업, 기술, 제품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유행은 아무래도 돈의 흐름과 같이하기 마련이다. 스타트업 자본의 주축인 기업의 자본, 정부의 자본, 그리고 투자 자본.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스타트업들이 몰린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인재와 기술은 언제나 더 큰 시장으로 모이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 자본의 세 주체들은 비슷한 시선을 갖는다. 이 또한 자연스럽다.


쏠림과 기울어짐을 막기 위해, 지역, 성별, 업력 등 조금 더 균등한 배분을 위해 나름 애를 쓰기도 하지만, 자본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좇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이익의 기대가 큰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서 발생하는 양과 질의 대비는 분명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유행은 그것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혹은 못하는 부류를 만들어 낸다. 그 어느 부류에 대해서도 선입견이나 편견은 없다. 다만, 본질을 버리고 지원금 헌터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유행에 반응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내가 속한 패키징packaging 분야는 제조업 중에서도 굉장히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제조업 분야에 속한다. 청동기 시대 토기들을 패키징으로 본다면, 대충 잡아도 1만 년이 넘은 산업이다. 동시에 참 변화가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소재나 형태 모든 면에서 그렇다. 지난 1만 년 간 가장 획기적인 변화라면 플라스틱의 등장뿐인 것 같다. 혁신적 파괴innovative disruption 같은 개념이 없다. AI, SaaS, Fintech와 같은 분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Open AI와 같은 거대한 스타트업이 생겨 나기에 적합한 산업은 아님이 분명하다.


민무늬 토기


그럼에도 내가 패키징 스타트업을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이제껏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한 위대한 혁신을 해내겠다는 자신감 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나름의 분석을 통한 기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1️⃣ 나는 스타트업의 성공 기준에 그리 박한 편이 아니다. 내가 취한 불확실성uncertainty & risk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보상은 5,000원은 넘는다. 그렇다면 개발, 생산, 영업, 유통에 익숙할수록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크기가 커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늘 해오던 일이 패키징이다.


2️⃣ 덩어리가 크면 틈niche도 크기 마련이다. 산업이 오래되면 자연스레 덩어리의 숫자는 줄고 그 크기는 커진다. 패키징 시장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 주요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기회비용에 따라 돈이 되는 주력 분야에 집중(다행히 혁신novelty 보다는 원가절감에)하게 되고, 그러면 비교우위가 발생하게 된다. 내가 줍줍 할 수 있는 분야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5년 그것들을 보아왔다.


3️⃣ 어느 산업에나 불연속chasm이라는 기회가 발생한다. 내게는 새로운 규제의 등장이 그 불연속점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이 시장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유니콘unicorn은 모르겠지만 데카콘decacorn 규모의 스타트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규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같이 뒹굴고 있다. 아쉬운 점은, 규제 따위 개나 줘버린 미국 때문인지, 자본이 크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단층chasm의 종류
내가 말하는 캐즘이란, 저 유명한 Geoffrey A. Moore의 Crossing the Chasm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지질학에서 말하는 단층에 더 가깝다. 새로운 기술이나 유통 방식 또는 규제의 등장은 불연속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 이것이 불연속점이라 선언을 하면 경우에 따라 시장을 두고서 쟁탈전이 벌어진다. 이동통신 시장을 생각하면 쉽다. 2G에서 5G로 오는 내내 그랬다. SKT 이것은 단순한 이름naming의 변화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구관이 명관임을 알린다. 반대로 LGT나 KT는 이것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기술이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외친다.




유행은 기회를 위한 기회일 뿐이다. 유행 자체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일 수는 없다. 경쟁도 심화되고 빈익빈부익부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유행에 속하지 않는 것이, 유행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유행을 타지 않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저 스타트업 자체가 유행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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