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왕년 없는 사람 있나요.
왕년과 라떼, 모두 지나간 한 때를 불러오는 말이다. 하지만 맥락과 뉘앙스nuance가 조금 다른 것 같다.
라떼는 말이다, 라떼보다 왕년이었다. 삶이 버거운 어른들은, 술에 취하면 이내 왕년으로 시작했다. 돈푼깨나 만지고, 힘깨나 쓰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왕년이 더욱 그리운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어른들에게 왕년은 다른 누군가를 으악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위로와 연민으로 오늘 하루를 또 버텨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왕년이 나는 지겹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앞서 세상을 일궈냈던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왕년의 왕년이 가고, 라떼가 왔다. 하지만 다르다. 왕년이 어른들의 것이었다면, 라떼는 꼰대들의 것이다. 꼰대들의 라떼에는, 왕년에 담긴 존중과 존경이 없다. 위로도 없다. 왕년은 청자가 없이도 완성될 수 있지만, 라떼는 혼자 서지 못한다. 나만큼의 불행이 너에게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너의 불행보다는 나의 불행이 더 컸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발 묶인 노예들의 쇠사슬 자랑 같은 것이다. 비교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라떼보다 왕년이고 싶다. 나의 왕년이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불쾌함이 없기를 바란다.
언젠가 왕년이 될, 나의 오늘이 좋다. 그냥,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