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세븐이 최고.
캔을 따지 못할 만큼 짧게 깎여진 손톱이 좋다. 아플 정도로 깊이 깎여진 손톱은 알 수 없는 쾌감을 준다.
손톱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키보드를 두드릴 때이다. 나는 소리가 작고 가벼운, 얇고 편평한 팬터그래프pantograph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손톱이 조금만 자라도 키보드를 타격할 때에, 피부보다 손톱이 먼저 닿아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 이때가 바로 손톱을 깎아야 할 때이다. 손톱은 꾸준히 자라날텐데, 그 불편함은 어느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다.
그렇게 그 순간이 찾아오면 우선 샤워를 한다. 손톱이 수분을 한껏 머금어야 깨지는 일 없이 부드럽게 깎여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손톱을 깎는 행위 자체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손재주가 그리 좋지 못한 나는 오밀조밀하게 손을 다루지 못한다. 쪼그려 앉아, 이 섬세한 작업을 하는 과정은 심리적으로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손톱을 깎을 때에도 뚝뚝 끊어내는 방식으로 대충, 새로 자란 만큼을 깎아낸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그 깊이가 깊어져, 손톱이 손가락 끝을 다 덮지 못하고, 이제는 손가락 끝보다 더 안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처음 손톱을 깊게 깎았을 때의 그 아픔과 불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깎아주던 손톱을 내가 깎기 시작했을 때, 적당한 깊이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었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왜 엄마는 얼마나 깎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