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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료 Feb 19. 2016

04. 가난은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까?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


   

시작.


지난 설에는 처음으로 설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보내기로 하고 가족들이 다 같이 베트남-캄보디아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며칠간은 여느 여행과 다를 바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이 원 달라를 외치며 쫓아오면 흔히 들었던 구걸하는 아이들인가 싶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물론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냥 잠깐 “불쌍하다.”로 끝나는 감정이며, 그 동정이 내가 주머니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원 달라’를 꺼내 주진 않았다.     

여행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시간적 순서로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가 느꼈던 큰 감정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내 가족여행의 시작은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이다.    

    

  


그 날 오전.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버펄로 투어를 하러 갔다. 버펄로 투어는 선택관광이었다. 원래는 선택 투어를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버펄로 투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다만, 선택관광에 대한 수요조사를 할 때, 버펄로라는 생소한 동물을 탈 수 있다는 투어에 대해 호기심으로 그 상품을 선택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매번 사람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투덜거리는 가이드와 투어를 선택한 다른 사람들과 버펄로를 타러 갔다.     

버펄로를 탈 수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버펄로를 타고 시골 풍경을 보고 난 이후에, 시골 가옥을 구경할 수 있다는 말에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동물원 울타리가 아닌 바로 앞에서 버펄로를 본다는 것도 신기했다. 처음 몇 분은 버펄로를 탄다는 것에 신기했다. 구경하라고 심어놓은 것 같은 벼, 옥수수 등을 설명해주며 버펄로를 이끄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이것 때문에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잠이나 잘걸 하고 후회했다.           

버팔로 투어 간판
투어 경로가 입구에 도식화 되어 있다.



사람들이 탈 버팔로

언니예뻐요.


내가 아는 한국의 시골 풍경과는 사뭇 다른 논과 밭 같은 곳을 지나 마을 쪽을 돌 때, 처음 본 집에서 초등학교  4~6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기계적으로 언니,  예뻐요~라는 말을 했다.

정말 그 아이가 한국어를 잘 해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아이는 네가 더 예뻐~라고 응수하는 아주머니들의 말에 자신은 안 예쁘다며 “언니, 예뻐요.”를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했다. 여동생은 신기하다며, 한국사람이 많이 오나 봐라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버펄로 투어를 하는 사람의 상술에 화가 났으며, 자신의 가난을 파는 끔찍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정말 한국어를 잘해서 아는 단어가 그것 뿐인데 한국 사람이 지나가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투어를 하는 사람들 심심하지 말라며, 잠시 길가에 담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구간에서 그렇게 서서 립서비스를 해주는 상품과 같았다.     

잠시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앞 일행의 버펄로가 멈추면, 어김없이 애기들이 나타나 팔찌를 팔았다. 원 달라라고 말하는  어린아이들의 손에는 팔찌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었다. 내가 탄 버펄로는 멈추지 않아 지나가며 버펄로가 멈추기를 바라는 아이들을 보기만 했지만, 일행이었던 다른 아주머니들은 팔찌 하나에 일 달러인 줄 알고 돈을 건네주면 5~9개의 구슬 팔찌를 팔목에 걸어주었다며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이야기했다.     

투어의 마지막은 망고와 두리안을 먹고 바나나를 넣고 찐 떡을 먹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 나머지 일행과 다 같이 카누 투어를 떠났다.          

투어 장소에 사는 고양이와 개. 캄보디아는 들개가 많았다. 

왼쪽 위는 둘이 같은 포즈로 그루밍을 하고 있는 것이 귀여워 찍었다.

오른쪽 위는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옆으로 오는 것이 귀여워서 찍었다.

왼쪽 아래는 대기하고 있는 수레로 옛날에는 사용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용하지 않다 투어를 위해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했다.

왼쪽 아래는 농장에 가는 길에 찍은  버펄로들이다.





수상가옥.


수상가옥으로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배를 타고 흙탕물에 가까운 강을 지나갔는데, 가는 도중 다른 배가 지나가면 물이 튀기도 했다. 차멀미, 열차 멀미해도 뱃멀미를 하지 않는 나는 졸다가 물병을 떨구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분쯤 갔을까, 드디어 쪽배를 탈 수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카누를 탔다.    

 

노를 젓는 아이는 관광객인 나에게 짧게 설명할 정도의 한국어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정도의 한국어로도 물의 깊이가 90cm밖에 되지 않는다거나, 베트남 사람들만 가는 볼링장이라던가 가게라는 설명 등을 해주었다.

수상가옥은 외관만으로 베트남인지 캄보디아 사람의 수상가옥인지 구별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의 수상가옥이 있는 쪽을 돌았다.


팔뚝만 한 작은 악어를 기르고, 물고기를 양식하고, 학교를 간다. 엄마는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내장을 다시 호수에 버린다. 어린아이들은 발가벗고 헤엄을 쳤으며, 몇몇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배에 앉아 ‘원 달라’를 힘없이 말한다. 육지의 가난함이 그대로 물로 들어온 것 외에는 특별난 것도 없는 투어였다.      


내가 탄 카누를 운전했던 소년은 19살이었다. 나와 여동생에게 마음이라며 캄보디아 화폐로 접은 하트를 건네주었다. 뙤약볕에서 십여 분간 노를 저었을 그 아이는 이제 투어가 끝이라는 말을 두 번했고,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하고 일 달러를 팁으로  건네주었다.     

가이드는 여기에서 카누를 젓는 아이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닌다고 말했다.       

   

카누 드라이버가 준 하트. 살짝 들추어 보면 900이라고 적혀있다. 2014년에 나온 화폐인 거 같다. 캄보디아의 화폐를 검색해보니 제일 낮은 단위의 화폐인 듯하다. 캄보디아 화폐를 검색해보면, 숫자가 2개씩 적혀있다. 9처럼 생긴 건 숫자가 아닌가? 캄보디아어를 모르니 알 수가 없다. 색이나 모양을 봤을 때는 100 리엘로 추정된다. 

베트남 사람들의 수상가옥으로 슈퍼이다.
톤레삽 호수는 정말 크다. 호수이지만 수평선이 보인다.



상품.


버펄로 투어를 하면서 어느 순간 가난이 상품이 될 수 있는 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판자촌을 그리고 가난을 상품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해 비판이 가능한 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상품을 파는 사람을 비난하며, 가난을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내 오만일 것이다. 

가지고 있고 팔 수 있는 것이 가난밖에 없다면 가난을 상품으로 내놓는 것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지금까지 내놓은 최선의 선택은 주변 캄보디아로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것을 잔뜩 가져가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가서 아이들이 원하는 일 달러 외에도 잠시 단 것을 먹으며 기분 좋은 미소 한번 지을 수 있게.


혼자 그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도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아저씨 아주머니의 말에 한국에서 가져온 먹을 것을 ‘던져’ 주면 좋아한다고 있으면 주고 오라는 말을 했다.  






뭐랄까 그냥 내가... 사실 글을 쓰면서 나만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가 하고 다른 사람들의 버펄로 후기를 봤는데, 나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 여행으로 마무리했다. 

 

지난주엔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발행하지 못해서 이번 주는 2개를  업로드합니다.       

다른 매거진에  업로드해도 번호는 1부터 꾸준히! 매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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