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치팩이 간절히 먹고 싶을 땐 이렇게 불쌍한 척. 간절한 눈빛으로 긴 머리를 바라본다.
이게 통하면 마음 약한 긴 머리는 어김없이 내게 참치팩을 꺼내 준다.
자, 나를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보시라.
긴 머리털 인간이 종종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관찰하거나
내 정수리를 섬세하게 쓰다듬을 때가 종종 있다.
오늘도 부드럽게 내 코끝부터 시작해 목덜미까지 쓸어 넘기며 한마디 한다.
"호동아, 넌 왜 덧신 한쪽을 반쯤 걸쳤니? 발가락 불편하지 않아?
그리고 말이야, 흰 셔츠를 입었으면 나비넥타이 정도는 매 줘야 하는 거 아니니?"
나는 내가 덧신을 신었는지, 셔츠를 입었는지도 모르고 평생 살아왔는데,
그 말을 듣고서 내 앞다리를 내려다보니, 왼쪽발에 하얀 덧신이 3분의 1이 벗겨져 있다.
목이 짧아 셔츠는 안 보인다. 목을 좀 늘려 꼬아 보면 보이려나? 거울을 좀 가져오든지...,
'근데 뭐 어쩌라고, 넥타이를 매 주던지, 아~그건 됐고 참치팩 하나 주시지.'
긴 머리는 참치 달라는 내 간절한 눈빛을 보고도 또 못 본체 한다.
내 뒷덜미를 몇 번 더 쓰다듬고는 휑하니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니, 아니, 이게 뭔 짓이야! 이건 아니지, 만졌으면 줄건 줘야지.'
'에잇, 이거나 먹어라~~~ 메롱~~~'
태생이 양아치인지라 가끔 예전 버릇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나온다.
'이것도 한방 먹어라~~'
메롱에다 냥펀치까지 날려봤지만,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집안으로 들어간 긴 머리는 곧바로 들이대기 물건을 손에 들고 내게로 다가온다. 그 물건을 두 손으로 잡고는 내게 마구마구 들이 대기 시작한다.
처음 그 물건속에서 나를 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긴머리가그물건으로 마술을 부려 우리 길냥이들을 축소해 그속에 가두는 줄 알았다.
그날 긴 머리가 그 물건안에 있는 나와 닮은 놈을 보여 주던 그 순간, 난 그때 정말 온몸이 털이 쭈삣 거리는 걸 애써 가라앉히고 태연한 척하며 그것들을 들여다봤다. 그때 긴 머리가 말했다.
"호동아 이게 너야~~~봐봐~~ 이게 너라고~~"
'아니, 이게 나라고..., 이런 모습을 왜 거기다 담아둬? 지워~지우라고!'
지워라고 외치고 또 외쳐댔지만, 인간인 긴 머리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가끔 긴 머리는 그 물건을 손에 들고 뭐라 중얼중얼거리기도 하고, 앞, 뒤뜰에 있는 꽃들에게도 들이대는 걸 보고 그게 인간들이 무척 소중히 여기는 소통도구라는 알게 됐다. 지금은 그것을 내게 들이대는 순간 내 모습이 하나 둘 그 물건 속에 모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내 영역을 벗어나 하루에 한두 번씩 산책을 할 때 나와 자주 마주치는 인간이 하나 있다. 그는 길을 걸을 때나 벤치에 앉아있거나, 가끔 얼굴이 쭈굴쭈굴하고 긴 목줄을 채운 강아지를 끌고 다닐 때도 시종일관 저 물건만 보고 다닌다. 끌고 가던 쭈글이가 길거리에 뚱을 싸도, 다른 인간들은 검은 봉지에 그걸 주워 담는데, 그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가끔 저 물건을 보고 미친놈처럼 헤죽거리며웃기도 하고, 양아치인 내가 듣기에도 거북한 욕도잘하는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인간이다.
하루는 나도 나름 고민이 많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걷다 그 빡빡이랑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빡빡이를 봤고 빡빡이는 들이대기 물건에 빠져 당연히 날 못 봤다. 난 유연하게 코끼리 앞다리 만한 그의 다리를 피했지만 내 고운 털이 그만 그 코끼리 다리를 살짝 스쳤던 거 같다. 그 순간 그놈은 세상의 모든 욕들을 해대며 지랄 발광을 했다. 놀란 난 잽싸게 건넛집 울타리 사이로 들어가 그놈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놈은 코끼리 다리로 헛발질을 하며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험한 욕을 한참동안 하고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난 그런 그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빡빡이 이놈~~~ 네가 앞을 보고 걸었어야지, 누구 탓을 하는거냐옹!
그 들이대기만 보고 걸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다 빵빵이랑 부딪쳐도 그렇게 욕만 할거냐옹!"
어이도 없고 황당하기도 했다. 비단 저놈만 그러는 건 아닌 일이지만...,
인간들은 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욕이나 폭력이 먼저 앞서는지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난 그놈 냄새가 바람결에 스쳐 오기만 해도 왔던 길을 되돌아 뒷산 길고양이들만 다닐 수 있는 작은 오솔길로 향한다.
그런 놈은 안 보고, 멀리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마음이 편하다,
'그건 그렇고 긴 머리 인간, '
'아, 참치팩은 정말 안줄거냐옹? 그렇게 날 만지고, 들이대면서 참치를 안 준다고? '
↘︎ 생각하는 사람 코스프레 중인 '생각하는 척하는 호동이'
'긴 머리, 누가 사진 찍으랬어~? 참치라도 주고 찍어야지..., '
'정말 안 주겠다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마지막 수 들어간다 냐옹~'
'난 줄 때까지 여기 이렇게 누워있을 거다.
긴 머리!! 너 오늘 가드닝 못한다.
날 밟고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게나~'
"야! 양아지, 저리 비키지 못해? 이게 뭔 짓이야? 너 아침밥 먹은 지 몇 분이나 됐다고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