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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y 21. 2018

싱가폴에서 이직하기

첫 이직했다

싱가폴에 온 지 벌써 9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그리고 첫 회사에 다닌 지 6개월 만에 나는 이직했다. 첫 회사는 싱가폴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핀테크 스타트업이었는데, 일이 너무 많았다. 한국에서도 여러 스타트업을 다녔고 마감 일정이 빡빡한 프리랜서 생활도 했었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이 일이 많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2주 단위로 계획하는 스프린트(sprint, 애자일이라는 개발 방법론에 따라 짧은 주기로 개발 일정을 잡는 것)에 이미 업무가 많이 배정되어 있는데 거기에 기간 변경 없이 수시로 업무가 더 들어오고, 갑자기 신규 기능 출시 일정이 잡히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서 매니저와 여러 차례 개인 면담을 가졌다. 원래는 3개월 동안의 수습 기간 동안 회사와 직원이 서로 합이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있는데, Scala, CQRS, DDD, Kafka, Cassandra, Microservices, Kubernetes, Continuous Integration, 금융 지식 등 너무나도 배워보고 싶었던 기술들이 가득한 회사였기 때문에 더 다니기로 했었다. 그런데 여러 차례 면담 후 이런 바쁜 일정이 1~2달 정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2~3년 정도 이런 호흡으로 달려갈 예정이라는 이야기에 퇴사를 결심했다. 우리 부부가 싱가폴 행을 결정했던 것은 우리 부부가 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감사하게도 매니저도 회사도 내 결정을 이해해주었고, 서로의 앞길에 행운을 빌어주며 이별할 수 있었다.    


이직 준비 과정


보통 싱가폴에서 이직은 취업과 마찬가지로 지인 추천, 헤드헌터, 직접 지원 등의 방법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지원하려는 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추천을 해주거나, 혹은 건너서라도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연락해서 커피라도 한 잔 하는 것이다. 싱가폴 내에서 이직을 한다는 것은 이미 싱가폴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면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그 회사 사람들을 만나보면 좋다. 회사 내에서는 다양한 내부 추천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회사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꼭 만나보는 것이 좋다. 싱가폴에서 일을 하고 있고 링크드인 프로필을 잘 관리하고 있다면,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자주 온다. 이런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관심 있는 분야를 잘 설명해주고, 관련 회사들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만약 이직하려는 회사에 지인이 없고 그 회사와 일하는 헤드헌터를 모른다면 직접 회사 채용 사이트를 보고 있다가 관심 있는 포지션에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회사를 다니는 중에 면접을 어떻게 보러 다닐 수 있을까? 참고로 지금까지 면접을 봤던 싱가폴 회사들 중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과 시간 이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무조건 일과 시간 중에 면접을 봐야 한다는 말인데, 특히 개발자 같은 경우에는 최소 3번 정도 면접이 진행되기 때문에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부담일 수 있다. 그래서 싱가폴에는 병가(Medical Leave)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다. 싱가폴에서는 병가를 쓰고 면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 병가 사용 횟수가 잦으면 말은 하지 않지만 혹시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병가는 회사에 따라서 병원에서 진단서를 가져가야 되거나 혹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면접 보는 회사의 거리가 가깝고 1시간 이내로 진행될 거 같다며, 점심시간에 면접을 잡고 다녀오는 경우도 있는 거 같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라면 재택근무 중에 면접을 볼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애매하다면 연차를 쓰면 된다.


한국에서는 충성심을 강요하는 기업 문화 덕분에 이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거 같다. 이직한다고 하면 상사가 화를 낸다거나 퇴사일까지 괴롭힌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싱가폴은 아주 친기업적인 자본주의의 나라다.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은 2주에서 2달 정도 전에 사전 고지하면 바로 짐을 싸고 나가야 한다. 은행 같은 보안에 예민한 회사의 경우에는 당일에 해고를 통보하고 짐을 싸서 나가게 한 다음 계약서에 적힌 사전 고지일(notice period)만큼의 임금을 계산해서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분위기가 이렇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에게 충성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니 충성심을 강요할 수가 없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는 분위기다.  


퇴사를 말하고 더 가까워진 사람들


퇴사하기로 결정을 하고 회사 내에 가깝게 지내던 몇몇 사람들에게는 미리 퇴사 사실을 알렸다. 보통은 다음 회사와 계약을 마치고 회사에도 이직 사실을 알린 다음에 사전 고지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긴 하는데, 회사에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이직 사실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따로 식사 약속을 잡아서 한 명씩 퇴사 의사를 밝혔더니, 갑자기 너도 나도 회사 생활하면서 힘든 이야기를 같이 나누거나, 혹은 아는 회사에 소개해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회사라는 공간은 어느 나라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다 터놓고 생활하기는 어려운 공간인데, 조직을 떠나는 사람이 생기자 그 사람한테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따로 한 사람 한 사람과 밥을 먹으며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껏 많은 회사를 다녀봤지만, 이직을 하면 회사를 떠나게 되지만 사람은 남았다. 그리고 전 회사에서도 다른 곳에 있더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몇몇은 얻은 것 같다.  


왜 새 회사를 정했나? 그리고 이직 후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보던 중에 새로 다니게 된 회사의 임원이 지인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회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기업용 Wifi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개발자를 찾고 있는 포지션은 그간 너무나 관심을 갖고 기회를 찾던 데이터 엔지니어였다. 그동안 코세라나 유다시티 같은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이 분야에 지식을 쌓아왔는데, 산업과 포지션을 넘어선다는 건 제법 노력과 운이 필요한 일이라 기다리고 있다가, 좋은 기회로 면접을 보게 되었고 최종 합격했다.  


하게 된 일은 전 세계의 클라이언트가 사용하는 하루에 수십만 건씩 쌓이는 Wifi 사용 데이터를 모아서, 실시간으로 가공하고,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만들어서, 클라이언트에게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데이터 관련 업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엑셀이나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 같은 비교적 정적인 업무 환경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많은 데이터 관련 업무는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바로 가공해서 비즈니스에 바로 접목할 수 있는 것이 아주 필수적인 형태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가 중간에 손실되지 않도록 안정성 높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데이터 관련 업무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런 업무를 아주 전 세계 단위의 큰 규모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퇴사를 하고 새 회사에 출근하기 전까지 약 열흘 정도 휴가를 다녀왔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회사에서 쓰는 기술도 좀 들여다봤다. Scala, Python, Hadoop, Spark, MQTT, Druid, Docker, Kubernetes, Machine Learning, Deep Learning, React.js, D3.js 등 기존에 알던 것도 있지만 배워야 하는 것이 참 많다. 당연히 다 공부하고 입사하기는 힘들고 입사하고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정도만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그동안 못 읽던 책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새 회사에 출근하면서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누리던 슬리퍼와 반바지 출근은 잃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여유롭다. 일하다가 수시로 일어나서 게임을 하고 있질 않나, 10시에 회사에 출근해서 6시 반이면 다들 집에 간다. 싱가폴의 엔지니어들에게는 흔치 않은 한 회사에 5~7년씩 다닌 개발자들과 일하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일이다. 그리고 회사에 있는 개발자들이 10~20년 경력의 시니어들이라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새로운 시작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설레다. 한 2달 정도는 다녀봐야 회사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제법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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