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Jun 25. 2018

이런 사람들에게 싱가폴이 좋다

극히 주관적인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 싱가폴에 관련된 글을 연재하면서 싱가폴에서 현재 거주하고 계신 분들이 좋은 댓글을 많이 남겨주고 계십니다. 다양한 사람의 눈으로 본 입체적인 싱가폴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은 거 같은데요. 간혹 "내가 살아본 싱가폴은 안그랬는데?"라는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한국에 살면서도 너무나도 서로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서 '한국에서의 삶은 어떻다'고 단정 짓는 것이 힘든데, 짧게는 1년 길게는 10~20년을 살았다고 한들 어떻게 한 나라의 삶을 모두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싱가폴의 삶을 나눠주시되 그 삶이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잘못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글 역시 1년 정도의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싱가폴에서의 삶의 한 조각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싱가폴에 관한 글을 벌써 20개 가까이 쓰고 있다. 싱가폴 생활에서부터 시작해서 싱가폴 취업까지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연락을 주시는 연령대도 대학생부터 30대 후반에 경력 전환을 꿈꾸시는 분까지 정말 다양하다. 질문과 받다 보면 삶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 있고, 외국 생활을 꿈꾸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싱가폴에서 생활이 1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한 나라를 경험했다고 말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싱가폴에서 행복해 보이는지는 말해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짧은 경험이라도 해외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조언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회사에서 경력을 계속해서 쌓아 나가고 싶은 여성


우선 싱가폴은 아시아에서 가장 여성이 일하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최근에 결혼을 앞둔 싱가폴인 여성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결혼 생활과 결혼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여성이 얼마나 출산 후 경력을 지속하기가 힘든지, 그리고 임금 격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직장 동료는 싱가폴에서는 집에서 상주하는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기도 쉽고, 업계에 따라 다르지만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통계는 조금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기도 하고, 한 명의 대답이 싱가폴 전체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싱가폴 현지 여성이 느끼기에 큰 차별이 없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가정이 소중한 사람


싱가폴은 사시사철이 덥다 보니 콘도라는 주거 형태에는 수영장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 나가보면 아빠들은 애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있고, 엄마들도 함께 나와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회사에 늦둥이를 본 남자 직장 동료가 한 명 있는데, 회사와 이야기를 해서 출퇴근 시간을 3시간씩 앞당겨서 일하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저녁에도 데리러 간다. 한국에서는 아이 때문에 일찍 퇴근한다고 하면 회사 다닐 생각이 있는 거냐고 난리가 나겠지만, 이곳에는 이런 모습이 흉이 되지 않는다.



자녀 키우기


싱가폴 정부는 적극적으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가사 도우미가 싱가폴로 이주하도록 지원하고, 직접 관리하고 있다. 집에 상주하는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보통 월 70만 원이면 한 달 동안 상주하면서 가사 일을 돕고 아이를 대신 돌봐준다.  


싱가폴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크게 만족하는 부분이 이 지점인데, 부부 외에 누군가 함께 키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편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자랑하는 싱가폴이기도 하다. 다만 싱가폴도 학구열이 심해서 교육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고 한다. 한국의 학업 스트레스가 싫어서 자녀를 다른 나라에서 키우기를 고려하고 있는 부모라면 자녀의 중고등학교를 싱가폴에서 보내게 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영주권이나 시민권 소지자가 아니면 국공립 학교를 보낼 수 없어서 국제학교를 보내야 해서 비용도 만만찮다고 한다.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


싱가폴은 업무와 삶에 선택지를 갖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한다. 싱가폴에도 정말 야근이 많고 업무 강도가 많은 산업 분야가 있다. 금융 산업이나 오일 트레이딩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업무 강도도 높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다만 그만큼 보수는 좋은 편이다.


한편 업무보다는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칼퇴근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신적인 여유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한다면 충분히 개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할 수 있다.



문화 다양성을 즐기는 사람


싱가폴은 정말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다. 길에서 회사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시아계 외에도 한국과 일본, 유럽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무슬림인 말레이시아계 친구는 라마단 기간에 해가 떠있을 때 음식을 먹지 못한다며 저녁에 해가 지고 만나자고 한다. 할랄(halal) 레스토랑에 가야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인도 친구 하나는 새로 이사 간 집 화장실에 호스형 비데가 없다며 사람을 불러서 변기 옆에 호스를 단다. 본토에서 온 중국인 친구들은 갑자기 월세와 연봉을 물어보기도 한다.


정말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이 통하던 한국과 달리 제법 스트레스받는 일일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반대로 기분 나쁜 일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커리어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 같은데, 싱가폴에서 커리어를 전환한 사람을 정말 많이 봤다. 개발자들 중에서는 일하던 분야와 전혀 다른 산업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싱가폴에 오기 전에는 외국은 워낙 실력이 중요한 곳이라 자신의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다른 분야로의 이동이 잦지 않을 거 같았는데, 싱가폴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로 쉽게 옮겨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싱가폴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첫 싱가폴 회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두 번째 회사는 역시 경험해보지 않았던 데이터 엔지니어링 분야로 업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도전에는 오히려 열려 있는 느낌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싱가폴은 동남아의 여행 허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창이(changi) 공항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여러 공항 중에 가장 스트레스가 낮은 환경을 제공한다.  


워낙 호주,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여러 동남아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이 저렴하기 때문에 가볍게 주말을 이용해서도 떠날 수 있다.


 


으쌰 으쌰 좋아하는 사람


한편 한국식의 회식 문화 등을 좋아한다면 싱가폴은 좋은 선택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싱가폴은 개인주의가 심한 나라다. 회사에 신규 입사자나 퇴사자가 있어도 저녁을 같이 먹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점심을 같이 먹는 정도다. 회사에서도 혼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회사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느냐는 본인 하기에 달려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감정적인 교류를 하는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차갑다고 느끼기 쉽다. 한국 회사 생활도 그렇게 정겹지는 않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한국 회사 생활이 고등학교라면 싱가폴 회사 생활은 대학교 같은 느낌이다.  


술값도 비싸기 때문에 하루 취하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가 중요한 사람


싱가폴 정부에 비판적인 싱가폴 사람들은 싱가폴을 ‘행복한 북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싱가폴은 소득 수준이 높은 굉장히 발전한 나라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는 굉장히 제한이 된 나라다. 당연히 언론의 자유도 크지 않다.


만약 무슨 이야기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라면 크게 답답함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안정적 연애나 결혼을 꿈꾸는 사람


이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싱가폴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굉장히 행복한 부부의 삶을 누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한편 싱가폴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을 상대적으로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싱가폴로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1~2년 정도 이후에는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싱가폴에 살다 보면 정말 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는데, 연인이나 배우자 없이 싱가폴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인연을 만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니 연애나 결혼이 삶에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분들은 참고하면 좋겠다.



최저 임금이 없는 나라에서 알바


싱가폴 생활 관련해서 글을 쓰다 보니 많은 분들이 남겨주시는 댓글 중에 하나가 싱가폴에서 고생을 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다는 글이었다. 싱가폴은 최저임금이 없는 나라다. 당신이 계약서에 얼마에 사인을 하든 그걸 불합리하다고 판단할 법적인 기준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 에이전시가 비싼 알선료를 받고 한국에 갓 졸업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싱가폴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근로 환경을 정말 열악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싱가폴은 특히 주거비가 매우 비싼 나라다. 그 외에 생활비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직업을 구하지 않고 해외에서 와서 일을 한다는 것은 안 좋은 경험이 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해외 생활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을 가지고 해외에 취업을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안정된 직장을 구해서 싱가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학벌이 없는 세상을 찾는 사람


싱가폴은 엄청난 학벌의 나라다. 4개의 주요 국공립 대학교가 있는데 여기에 간 사람과 못 간 사람의 인생이 제법 높은 수준으로 갈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나라다 보니 심지어 외국인이 일을 하러 올 때, 해당 국가의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차등을 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예 연봉이 높으면 상관이 없는 거 같은데, 비자 발급에 애매한 기준인 경우에는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회다 보니 싱가폴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친구들을 만나면 굉장히 경쟁심이 강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경쟁에서 이긴다."라는 성향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같이 일할 때는 피곤함을 주기도 한다.



인권 감수성이 매우 높은 사람


겉보기에 싱가폴은 매우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나라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차별과 구분이 내재화되어있다. 온라인으로 마트에 가입을 할 때도 어디에 사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집을 보러 다닐 때 인도인에게는 집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집주인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새 집에 이사를 갔는데 옆 집 사람이 월세인지 자기 집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정도도 다른 문화나 인종에 대한 접촉이 전혀 없는 한국에 비해서야 훨씬 다름에 대해 수용도가 높은 편이겠지만, 이런 부분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싱가폴 생활이 제법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전 16화 싱가폴의 휴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