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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un 11. 2018

싱가폴의 휴가

그 당연한 권리

이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주에는 입사 30일 기념으로 매니저와 1:1 미팅을 가졌다. 미팅 시간이 돼서 매니저와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회의실로 이동했다. 매니저는 인도계 여성 분인데, 10세 전후의 두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싱가폴에 3개의 오피스가 있는데, 지금 오피스의 책임자인 director 바로 아래에서 수십 명의 개발자를 직접 관리하는 자리다.


회의실로 들어가면서 한 달 동안 함께 일하게 됐다면서 너무나 밝게 웃으며 박수를 즐겁게 치고, 나도 덩달아 즐겁게 박수를 쳤다. 한 달 동안 같이 일해보니 어땠냐고 묻는다. 힘든 건 없는지, 회사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중에 개선되었으면 하는 건 없는 지도 물어본다. 한국이었다면 이게 정말 궁금한 건지 형식적인 건지 간을 봐야 하겠지만, 이 회사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은 걸 물어보지 않는다. 회사 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사업 팀에서 일을 하게 된 터라, 새로운 기술도 많이 접하고 해볼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진심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점 두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입사하자마자 신사업 팀에 들어오게 돼서 기존 제품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낮다는 점과 다른 팀에서 하는 서비스 운영 관련 업무에도 관심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랬더니 우선 서비스에 대한 부분은 1:1 미팅 끝나고 바로 설명해주겠다고 하고, 다른 팀 업무에 관심이 더 많다면 바로 옮겨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입사한 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팀을 옮겨주겠다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회사는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앞으로 생각하는 경력에 더 중요한 걸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고 한다. 말로만 직원을 위하는 게 아니라, 정말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 부담이 없고, 부인님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혹시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하냐고 물어봤는데. 전혀 문제가 없단다. 지금 출퇴근 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반까지인데, 요즘 최근 한 주 동안 계속 9시에 출근했다고 하자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일찍 집에 가도 상관없다며, 사실 우리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저녁에 일이 있으면 4시에 퇴근해도 상관없고, 재택근무를 해도 된단다. 어느 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다른 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그런 것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유급 휴가 (Paid Leave) 


이런 업무 자유도가 허용되는 곳이다 보니 싱가폴은 대체적으로 유급 휴가를 사용하는데 굉장히 관대하다. 사실 법적으로 약속된 내 휴가를 쓰는데 '관대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싱가폴은 대체로 14~20일 정도의 연차를 주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많은 회사에서는 왜 휴가 쓰는지 이유를 묻지 않는다. 지난번 회사에서 시스템에서 휴가 신청할 때 이유를 적는 공간이 있길래 ‘가족 여행’이라고 적었다가 이유를 쓰는 사람이 어딨냐고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보게, 한국에서는 왜 휴가 쓰는지, 어디 가는지, 가서 뭐 하는지도 물어본다고... 휴가 승인 거부하는 일도 흔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휴가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통보’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주로 회사 시스템에 휴가를 등록하고 “나 이때부터 이때까지 휴가 쓸게”라고 말하면 끝이다. 


무급 휴가의 경우 유급 휴가를 다 사용하고 나면 쓰게 되는데, HR에서 “너 남은 유급 휴가가 없어”라고 물어보긴 하지만 사용에 크게 문제는 없었던 거 같다. 회사에서 휴가를 미리 다 당겨 쓴 상태에서 휴가 주기(보통 한 해)를 다 못 채우고 나면, 보통 추가로 사용한 유급 휴가가 무급 휴가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병가 (Medical Leave) 


병가는 아플 때 쓸 수 있는 휴가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14일 이상 제공되는 거 같다. 아침에 몸이 안 좋으면 회사 메신저에 “나 오늘 아파서 회사 못 가”라고 한 마디만 남기면 된다. 회사에 따라서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1~2일 정도의 병가는 따로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그냥 병원에 가면 진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가능성이 많다. “그럼 이 제도를 악용해서 놀러 가면 어떻게 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이다. 회사에는 직원들이 아플 때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고, 그걸 쓰는 건 직원의 몫이다. 그 누구도 동료의 아픔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주어진 제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최근에 갑자기 아파서 수술을 한 친구가 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편지를 함께 써서 보내주기도 했다. 아프면 쉬어라, 증명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 제도를 이용해서 싱가폴의 많은 직장인들이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러 다닌다. 그리고 이건 절대로 이곳에서 흉이 아니다.  


결혼, 출산 휴가 


그 외에도 결혼 휴가, 출산 휴가 등 다양한 제도가 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출산 휴가가 남편과 부인이 다른 날짜가 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여성이 일하기 좋다는 싱가폴에도, 아직도 어느 정도 육아는 여성 몫인가 보다.  


재택근무 (WFH, working from home)


그 외에 재택근무도 자유로운 경우가 많다. 병가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메신저에 재택근무한다고 말하면 된다. 도심에서 어디든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나라 싱가폴에서도 재택근무를 한다. "회사에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거야 (I will be working from home)"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 어떤 설명도 더 필요가 없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휴가나 재택근무가 왜 한국에 있을 때는 그리도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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