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 소통, 그림 그리기

by Opellie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9개월 기간의 인사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실 무모한 프로젝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외부 인사 솔루션을 도입하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기초부터 만들어야 했고, 1개 회사가 아닌 복수의 회사가 사용하는 단일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인사 마스터 표준화부터 보안 이슈, 외부 규제기관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실 가장 어렵고 동시에 중요했던 이슈는 소통이었다.


실무자의 언어를 개발자의 언어로 그 형식, 의미가 왜곡되거나 누락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전달되도록 하는 것. 만일 이것이 어긋나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


개발자-실무자, 그리고 가치 지향적(?) 퍼실리테이터로서 나 이렇게 셋이 미팅을 한다


"이 부분에서 업무 절차를 설명해 주세요"


개발자의 말에 현업 실무자는


"A-B-C로 만들어 주세요"


라고 대답을 했고, 개발자는


"A-B-C인 거죠. 알겠습니다'


라고 답을 했다.


다음 날 문제가 발생했다. 개발자는 자신이 이해한 A-B-C를 간단하게 화면으로 구성하여 실무자에게 보여주었고, 실무자는 이렇게 답을 했다


"이건 어제 제가 말한 게 아닌데요?"


퍼실리테이터인 내가 보기에 개발자가 제시한 화면에는 어제 실무자가 이야기한 A-B-C가 담겨 있었지만 실무자는 자신이 이야기한 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당시 나는 개발자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었다. 미팅에 나도 참석해 있었고 내가 이해한 A-B-C는 개발자가 구현한 화면과 닮아 있었다.


"어제 A-B-C라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다


"음.. 잠시만요. 제가 좀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지금 미팅은 일단 마무리하시죠"


나에게 있어 실무자와 개발자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실무자와 개발자 모두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 우리가 만난 이슈는 소통의 이슈였다. 똑같이 A-B-C라고 표현했지만 실무자와 개발자가 이해하는 A-B-C는 달랐다. 비유하자면 실무자는 A-B-C를 생각하며 '에이-비-씨'라고 말했고, 개발자는 a-b-c로 이해하며 '에이-비-씨' 맞죠?라고 말한 셈이다.


그날 저녁 사무실에서 PC를 켜고 파워포인트의 빈 화면을 열었다. 아주 어릴 적 컴퓨터 학원에 다닐 때 익숙했던 순서도 기호들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실무자이니까 실무자 입장에서 이해를 개발자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다음 날 실무자분을 만나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생각하시는 업무 프로세스를 이와 비슷하게 그려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놓고 개발자와 미팅을 진행했다. 소통에서 오류는 확연히 줄었고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인사 각 영역을 담당하는 모든 실무 담당자분들에게 개발자 미팅에서 소통 방식을 공유했다.


소통에서 무언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만나곤 한다. 그 상황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런데 소통을 잘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이다. 인사는 기업 내 리더/구성원분들과 수많은 대화를 한다. 때로는 말이 안 통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겠지만 그 순간 사람을 탓하는 생각 이전에 지금 소통을 하려고 하는 목적을 먼저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 다음엔 그 목적 달성에 적합한 방법들을 찾아보면 된다. 기업 내에서 그 목적의 자리에는 일의 성과가 있다. 위 사례에서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소통이 그 방향성을 잃고 잘잘못을 정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소통이 그 방향성을 유지하고 더 나은 방법론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소통을 만날 수 있다.


인사제도를 이야기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이론과 현장 경험을 오가며 인사제도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모난돌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인사와 관련하여 Opellie가 직접 작성한 글, 자료 등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keyword
이전 12화12. 문과팀장, 이과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