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 자율적으로 일 하도록 통제하기?

by Opellie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우리 구성원들이 넷플릭스처럼 움직인다면 좋을 텐데"


입사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에 대표이사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표님은 우리 기업을 넷플릭스와 같은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의 근처에는 '규칙 없음'이라는 제목의 책이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책은 알고 있지만 다 읽어보진 않았다는 나에게 책을 보라는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 레퍼토리였다.


"나는 우리 회사를 넷플릭스처럼 만들고 싶은데,

그런데 우리 구성원들이 넷플릭스 구성원이 아니라서 그럴 수가 없어"


사실 입사 면접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표현이었지만 두 상황으로부터 나에게 전달된 이해는 많이 달랐다. 면접 당시의 넷플릭스는 나에게 '자율'이라는 단어로 전달되었었다. 이는 평소 기업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으로 인사제도를 이야기해 왔던 내가 가진 방향성과 연결되었고, 이는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아울러 그 판단과 행동이 기업의 방향성과 부합하는 상태로 연결되는 가이드와 코칭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사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었다.


반면 지금의 넷플릭스는 나에게 '통제'라는 단어로 전달되고 있었다. 넷플릭스를 만들고 싶지만 구성원들의 역량/자질이 부족하니 인사가 제도로 통제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대표님은 그 통제의 대표적인 도구로 OKR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간, 주간, 월간, 분기 미팅을 제도로 정해서 구성원들이 의무적으로 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나는 OKR을 management by objectives and self-control의 본질적 표현이라 말한다.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스스로 일과 그 일의 수행 과정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라고 말이다.


"양식을 한번 만들어와 주시겠어요?"


대표님은 나에게 OKR sheet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대표님과 내가 가진 생각이 비록 그 표현은 같아 보였지만 그 표현에 대한 이해가 다름을 알고 있었고, 내 생각을 전달하려면 보다 확실하고 권위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구글이 제공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구글이 제공하는 양식을 가져와 대표님께 전달드렸다. 대표님은 예상대로 너무 심플하다며 맘에 들어하지 않으신다.


"구글이 제공하는 리워크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에서 구글이 사용하는 양식을 제공하고 있거든요. 이게 그 양식입니다"


구글이라는 이름에 대표님의 나를 향한 태도는 다소 누그러진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양식을 받아 든 대표님은 결국 양식을 대폭 수정하셨다. 컨설팅 출신답게 그가 만든 양식은 수많은 칸과 해야 할 것을 강제하는 무언가, 그리고 그들이 진짜 가치 있다고 믿게 도와줄 포장, 즉 있어빌러티로 가득했다.


양식은 구성원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여유를 제공하지 않고, 그들이 동일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기업에서 OKR 시행을 선포했던 그날 어느 개발자와의 퇴근길 대화를 기억한다.


"처음 OKR이야기를 들었을 땐 단순하고 쉽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명회를 들으면서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처음 OKR을 만났을 땐,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내가 틀리면 어떻게 하지?를 고민하고 있는 거 같아요"


통제 관점에서 인사제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답이 된다. 통제 관점에서 인사제도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감추고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착각한다. 통제 관점에서 인사제도는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대표님은 자율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규칙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도구로 통제를 사용했다. 구성원을 믿지 못했고, 구성원이 자율적이지 못하니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통제하는 조직은 자율적인 조직이 될 수 없다.


인사제도를 이야기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이론과 현장 경험을 오가며 인사제도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keyword
이전 14화14. 팀장만 바뀌었는데 저성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