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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Dec 20. 2023

알람이 울리지 않은 아침

D-72

기상 알람이 울립니다. 


    이 문장을 읽기만 해도 피곤한 건 저뿐일까요. 기상+알람, 일어나야 할 시간, 아침입니다. 출근을 해야 합니다. 암막커튼으로 작은 빛도 들어오지 않게 막아둔 흑색의 침실, 그 안에 울려 퍼지는 알람소리, 어두운데 아침이라네요. 모순 그 자체입니다. 신체적으로 충분히 자고 깨는 자연스러움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인위적이고 강압적이 게만 느껴집니다. 


    좋아했던 음악을 알람소리로 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 조금 기분 좋게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요. 으음... 제 경우에는 아니더라고요. 유쾌하긴커녕 그 좋아했던 음악까지 싫어져버립니다. 그렇게 제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진 음악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남의 알람 소리는 제 알람 소리보다 더 듣기가 싫습니다. 남편도 덩달아 알지도 못했지만, 알게 되었는데 그게 기상 알람이라 싫어하게 된 노래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동아리, 동호회 엠티를 가면 왜 꼭 '빠~빠빠빠~빠빠라빠바 빠빠빠!' 군대 기상 알람을 해 놓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는 걸까요? 저는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지만, 그냥 그 소리가 그렇게 싫더라고요. 음악은 깨발랄한데 군대 안이라는 현실이 너무 큰 갭차이로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약 올리는 거 같습니다. 


    '안 일어나? 안 일어나? 여기 군대라고 오~ 헤헤 일어나아~'


알람은 언제부터 필요했을까?


    학창 시절에는 엄마의 '일어나~'소리가 알람이었죠. 바로 일어나는 적이 없어서 엄마의 알람은 5분마다 계속됩니다. 1분이었을까요? 사실, 자는 입장에서 반복했다는 것만 기억이 납니다. 


    '일어나라고! 지각이라고~' 

    '학원봉고차 와있어! 너 기다린다고~' 


    학원에서 학교까지 태워주던 봉고차가 있었는데, 늘 제가 늦어서 엄마가 나가서 죄송하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었습니다. 예... 못났었네요. 챙겨주니 고마운 지 모르고 '5분만~'을 계속 외치다가 일어나서도 찌푸린 얼굴로 원망스럽게 엄마를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일어나면 저 씻을 물부터 교복까지 다 준비되어 있어서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됐죠. TV드라마 보면 안 일어난다고 이불 들추기도 등짝이나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던데, 엄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식이 그러면 한 번만 깨우고 '지각'하게 놔둘까 하는데, 또 모르지요. 엄마가 돼 보면 다를지도요. 엄마가 되지 않아 엄마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의 엄마와 저를 생각하니 괜히 목에 저릿한 묵직함이 차오릅니다.


    대학교를 지방으로 다니면서 혼자 살게 되었고, 알람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알람은 더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언제 잠들던, 내 몸상태가 어떻든지, 일어나야만 합니다. 엄마에게 보내던 원망의 눈초리를 핸드폰에게 보내봅니다. '참 정확한 시간에 우렁차게도 울려대는구나', '매일 쓰는 기능인데 닳지도 않는 건가, 기술력 대단해, 칭찬해~' 비꼬기도 해 봅니다만, 알람 없이는 직장생활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알람 없이 눈 뜨던 때가 언제일까요? 아주 어린 시절이었겠죠. 그때는 전혀 몰랐겠죠. 엄마의 알람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때가 온다는 걸요. 생존과 책임감, 약속, 의무 등 '어른'의 조건 속에서 엄마 대신 '알람'이 나와 함께하게 될 줄 몰랐겠죠. 


알람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눈을 떴습니다. 개운한 느낌과 동시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평일 아침에 개운하다니요. 알람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너무 개운하더라' 


    현대인에게 제시간에 출근하는 건 어쩌면 생존이 달린 문제라 그런 건지, 생각보다 몸이 더 먼저 움직입니다. 머리 감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치입니다. 양손으로 두피를 쓸어봅니다. 


    '으윽... 어제 감고 잤는데...'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손을 씻고, 머리를 질끈 묶습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다우니 섬유탈취제를 칙-칙- 뿌려봅니다. 세수-기초화장을 마치고, 파우치에 메이크업세트를 집어넣고 챙깁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씁니다. 눈도 내리고 영하 8도인 날씨는 마스크가 필수이죠. 코로나 때 그렇게 답답해했던 마스크인데 이런 상황이 되면 고맙기만 합니다. 마스크를 쓰는 문화가 그 이후로 많이 생겨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일도 없고요. 브래지어 대신 누브라를 하고 히트텍을 입습니다. 그 위에 기모 맨투맨과 청바지를 챙겨 입습니다. 두툼한 기모 양말도 발목 위까지 끌어올려줍니다. 그리고 롱패딩을 입고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섭니다.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내려있습니다. 길이 미끌미끌, 아주 재밌습니다. 코어에 최대한 힘을 주면서 빠르게 걷습니다. 이제 지하철을 타고 몸을 맡깁니다. 어느새 도착한 회사에서 시계를 보니 '세이프!' 턱걸이로 도착했습니다. 충분히 개운하게 자고 제시간에 잘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스크는 계속 써야 하고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화장실, 회의실 거울을 통해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아이고야.......' 


    시간이 잠시 나서, 아니 시간을 내서 쿠션으로 울긋불긋한 피부를 토도도독 두드립니다. 이제 좀 사람답게 느껴집니다. 아이브로우를 꺼내 들고 쓰윽~쓰윽~ 빈 곳을 채워봅니다. 아무리 쓰윽쓰윽 해도 채워지지 않는 눈썹... 다 썼습니다. 앞머리도 없는데... '아니야, 앞머리 있었으면 떡져서 보기 흉했을 거야' 눈썹을 정리할 때가 다가와서 그런지 그.. 그렇게 비어보이진 않았습니다. 순전히 제 합리화입니다. 오자마자 급하게 일을 시작하는 데 뭔가 혼을 집에 두고 온 거 같았습니다. 머리를 안 감아서 그런 걸까요?


    저절로 눈이 떠질 때의 개운함은 잠시였지만,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저의 모습을 보니 그 개운함도 부끄러움으로 덮였습니다. 아직은 알람을 도움을 받아 살아갈 때이구나, 싶습니다. 일이 아무리 싫고, 곧 그만둔다고 해도 하루의 시작을 내가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기상 알람'이니까요. 그나저나 왜 안 울린 걸까요? '아이폰 알람이 안 울려요'를 쳐보니 꽤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인가 봅니다. 알람 야무지게 잘 설정해 놓고, 정돈된 하루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작가의 끄적임]
왜 이 주제에 대해서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어디다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저를 돌보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특히나 PMS로 인해 그날 전에는 극도로 예민해지고 우울해지는 저에게 글을 꾸준히 쓰는 동안 많이 나아짐을 느낍니다. '널 다시는 내팽개쳐놓지 않겠어'라는 의지를 계속 제 내면아이에게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쉽게 읽히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생함이 담긴 글을 좋아합니다. 한가지 감정이 아닌 다양한 감정을 담백하게 그려낸 장면과 글을 좋아합니다. 아직 저는 그런글을, 또 누군가를 감동시킬만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전히 저를 위한 작업 중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알면서도 아무래도 공개적이다 보니 관심을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브런치북을 내거나 수상을 받은 사람들이 부럽다는 마음도 인정해 봅니다. 저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한 문장, 한 에피소드라도 공감을 한다면 그건 덤인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닌 거지요. '라이킷'은 덤이자 응원인 거지요. 조급함에 지쳐 쓰러지지를 않기를 바라봅니다. 내 안에 모든 것들을 꺼내보고 또 다른 저를 창조하는 과정 중입니다. 모두의 창조과정을 응원하는 마음도 더하면서 끄적임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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