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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Jan 05. 2024

너무 늦은 거 아닐까.

D-56

도전보다는 최선을 선택하던 날 


    감성 마케팅으로 흥하고 있는 아이폰, 그 아이폰의 기능 중에 가끔 추억의 사진, 추천 사진이 모아져서 뜹니다. 테마는 '여름'이 되기도 '데이트'가 되기도 또는 그동안의 '나'가 되기도 합니다. 불과 몇 년 전 사진인데 왜 이렇게 오래전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전과 후의 마음가짐의 차이일까요? 아님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에 애틋해져서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그제 추천된 테마는 그동안의 '나'였습니다. 모아진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면서 최근에 올수록 단발머리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헤어 스타일에 크게 관심이 없던 터라, 특별한 불편함 없으면 기르고, 불편해지면 자르고를 반복합니다. 미용실도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지요. 그렇게 단발머리를 주기적으로 하게 되는 저였습니다. 최근에도 머리가 너무 길어 미용실을 예약한 상태였습니다. 원래 자르던 대로 칼단발로 자르려고 했었지요.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예전 내 모습을 보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외모에 자신감이 있던 건 아니지만 무난하다고 여겼었는데,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집니다. 갑자기 칼단발머리를 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나이 들수록 얼굴이 커지고 코가 커지는 게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니 진실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살도 결혼한 뒤에 슬금슬금 한 5kg 정도 더 찌긴 했습니다). 예전에는 동그랗고 매끄러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광대나 턱이 선명해진 얼굴형이 되어 남성스러운 느낌이 더 많이 든달까요? 남편은 괜찮다고, 똑같다고 그냥 자르라고 했지만, 저는 생각보다 자기 객관화가 잘 돼있습니다. 데이터 분석한 결과 지금은 칼단발은 무리였습니다. 머리 스타일에 있어서는 도전보다는 최선을 선택할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단발머리를 잠시 뒤로 미뤘습니다.'에이 그냥 과감히 자를까'라는 생각은 '객기'라는 걸 빠르게 알아차리고 얼굴형을 보완할 수 있는 중단발 레이어드컷을 했습니다. 


    오,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단발머리에 대한 두려움이 제 인생머리를 찾게 해 준 듯합니다. 하지만, 뭔지 모를 씁쓸함이 지금 제 마음에도 남아있습니다.



나이를 잊고 살기에는 


    '나이' 생각을 하는 제가 사실 좀 두렵습니다. 저는 '낙천적=세상과 인생을 즐겁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했었습니다. 성격검사를 해도 늘 '낙천적'이라는 말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저의 낙천성은 저를 가난하게 했지만, 그래도 자신감 있고 밝고 유쾌하게 그리고, 꿈꾸며 살아갈 수 있게 했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며 살기를 여러 날, 요즘은 낙천성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을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라는 신념이 아주 강했습니다. '뭘 하든 의지만 있다면 늦지 않았어', '난, 우리는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어'가 저의 주 신념이었습니다. '나이'를 세지도 않았습니다. 의미가 없으니까요. 어느 순간인가 '나이'를 세게 됩니다. 아마도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업을 받게 되면서였던 거 같습니다. 


    나이를 잊기에는 우리는 필멸자로서의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서 살고 있고, 그래서 늘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후회 없이 살았던 예전의 제가 자꾸 시간과 나이를 되새길 때마다 후회가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지금 한 순간순간이 더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살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제 능력 창의 스탯은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만 쌓여있는 걸 바라보면서 시무룩해집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일찍이 자신의 분야를 찾아 몰입해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괜히 슬프기까지 합니다. 주기적으로 이런 의문들이 한 번씩 올라와 저를 어딘가로 끌고 내려갑니다. 



과연 정말 늦었을까?


    끌려내려 가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정말 늦었을까?'  

    마음이 대답합니다. 


    "이 멍청한 놈아, 모든 건 최적의 시기는 존재하지만, 늦는 건 없어! 그건 누구 기준이야?"

    대답을 끝내고 나서 화가 더 치밀어 오르는 지 바로 이어서 소리칩니다.

    "생물학적 상태만이 너를 말해주는 전부야?" 

    "때에 따라 도전할 때도, 최선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어."

    "그깟 머리 최선을 선택했다고 그렇게 모든 걸 다 싸잡아서 다 무기력 속에 집어넣을 거야?"


    이렇게 이미 저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지요. 늦는 건 없습니다. 나의 시간에는 이제 시작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잘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 나를 알아차려주길 바란다는 걸 욕심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한 번이라도 미친 듯이 몰입한 적 있는가,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적이 있는가, 마음이 크다고 해서 되고 싶단 욕망이 크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일찍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지 않고, 제대로 시작도 안 해놓고 겁부터 먹는 제 자신을 오늘은 아주 호되게 혼내야겠습니다.


    외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이, 가능성까지 흘러가네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소화능력, 회복능력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크게 의식하지 않는 척 넘어가지만 사실은 조금 아주 조금, 좌절 한 스푼, 불안 한 스푼이 마음 한 켠에 쌓입니다. 이 티클이 모일 무렵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저를 돌아봅니다. 태산이 되기 전에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변해가는 육체를 위해 최선을 선택하며 적응해 나가고, 제정신이 살아있는 한 도전하는 걸 멈추지 않으며, 제 자신이 좋아할 만한 성취를 만들어내 보도록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다짐해 봅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제 낙천성이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난 계속 여기 있었어. 네가 안 보려고 했을 뿐이야~"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그만큼 이 세상이 즐겁고 좋다는 거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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