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
지난 주말 친정을 남편과 다녀왔습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짧디 짧은 만남이지요. 언제나 그렇듯 집밥을 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저희가 오기 전부터 장을 가득 보고, 아침부터 푸짐하게도 차려주셨습니다.
" 엄마~ 내가 나가서 먹자 했잖아~ 맛있는 파스타집 있다고~ "
" 무슨 파스타야~ 집에 왔으면 집밥 먹어야지. 반찬도 한 그(가득)~ 했다. "
" 아휴~ 뭘 번거롭게 올 때마다 이렇게 해~ 외식 좀 하자~ 쫌 "
" 이 정도는 번거롭지도 않아~ 집밥 먹어, 집밥 ~ 나가서 커피만 마시면 되지~ "
싸우는 건 아니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조금 높아졌습니다. '투닥투닥' 집에만 오면 이럽니다. 남편은 어느샌가 익숙해져서 뒤에서 '생긋' 웃고만 있습니다. 좀 속상했습니다. 미리 전날부터 이야기를 다 했는데 말이죠. 올 때마다 주방에서의 보내는 시간이 더 긴 엄마가 안쓰러워 나가서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엄마의 고집인지 사랑인지... 저의 마음은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네요.
" 음냐음먀, 엄마~ 이거 엄청 맛있다! "
엄마의 음식들을 먹자마자 언제 투닥거렸나는 듯 아주 아주 맛있게 엄마의 사랑을 가득 먹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난 후 와인 한잔을 하면서 부모님께 정식으로 저희가 퇴사 후 베트남에 가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알고 있었고, 아빠는 엄마가 어느 정도 언질을 준 듯하였습니다. 저와 남편이 언제 이야기해야 할지 쭈뼛거리고 있을 때, 엄마가 먼저 물꼬를 트셨지요.
" 뭐 할 이야기 있다면서~"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른다는 걸 이번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쿨하게 잘 다녀오라고 격려만 할 줄 알았는데... 평소에 말씀이 많이 없는 아빠가 '가서 뭘 할 거니?', '구체적인 계획은 뭐니?', '다른 계획도 있니?', '투자는 뭐 하고 있니?' 자세히도 물어보셨습니다.
엄마가 말합니다.
" 부모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계획하고 가는 거니 둘이 가서 잘하겠지~ "
" 에에~무슨~ 바라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야~ "
" 그래도, 여유롭고 그런 생활을 했으면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겠지..."
" 아니야~ 여행 겸사겸사 지출은 줄이고 수입은 늘리고 장기적으로 보려고 가는 거지~ 이게 다 경험 쌓은 거고~ 그런 소리 하더라 덜 마~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짠~짠! "
조금은 억지텐션을 끌어올려봅니다.
" 짠~ 우리 사우와 딸의 미래를 위해~ "
" 짠~ 아빠 엄마 건강해야 해~ "
그렇게 조금은 올드하지만 클래식한 '위하여~'를 외치면서 저녁자리와 대화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씩씩하고 낙천적인 아빠와 엄마라 다 잊고 사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끔 자식들 생각 너무 안 하고 독립적으로 사는 거 같아 섭섭할 때도 있었는데, 미안함과 걱정을 안고 부모가 짐이 될까 그렇게 거리를 두려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날도 엄마가 해준 모닝샌드위치를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갈 시간입니다. 반찬이랑 과일이랑 빵이 더해져 짐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가기 전 달력에 저희의 스케줄을 한번 더 쓰고 부모님께 공유하였습니다.
" 이때 서울에 한번 와서 짐 좀 가져가야 하니까 시간 비워두고~ "
" 이때 가전제품 배송하는 게 좋을 거 같지? 아침에 출발하고 여기 오면 오후니까 시간 맞춰 집에 있어야 돼~"
" 오늘 정수기 필터 갈았으니까 4개월 뒤 갈아야 해~ 여기 표시했어~"
" 이건 아빠 생신, 이건 엄마 생신~ 서로서로 잘 챙기라고 ~ 하트 했어~"
뭔가 쓰고 보니 잔소리 같네요. 저도 뭔가 멀리 떠난다는 생각에 말이 좀 많아졌나 봅니다.
아빠가 저희를 역까지 태워다 주시려고 준비하고 슬슬 일어나면서 말합니다.
" 사라엄마, 뭐 해? 같이 안 가? "
엄마가 거실 장판 위에 꽁 하니 앉아서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 뭘~ 안가~ "
" 뭐야~ 엄마~ 같이 안 가? "
" 안가, 안가, 안가~ "
하면서 엄마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곧 떨어지려 합니다. 제 머릿속에는 ' 갑자기????'라는 단어가 스치고 이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참고 있었던 겁니다. 엄마는요. 그렇게... 제가 다가가자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방을 들어가면서 눈과 코와 입 모두 슬픔에 절여진 상태로 흐느꼈습니다.
" 으으헝... "
" 아이고~ 엄마~ "
엄마를 안아주려고 엄마한테 다가가려고 하자 자꾸만 밀어내면서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외투를 챙깁니다. 아빠도 남편도 놀란 채로 현관문에서 신발을 신고 저와 엄마를 지켜봅니다.
" 엄마~ 왜 울어어어어~"
남편이 말합니다.
" 그러는 자기는 왜 울어~ "
" 난 엄마가 우니까, 그렇지~ 크흥 "
흐느끼면서 외투를 챙겨 입고 엄마는 나왔습니다.
" 엄마~ 왜 울어~ 자주 올 건데 왜 그래~ "
안으려는 저를 계속 밀어냅니다.
" 으으으으흐응..."
엄마는 그렇게 참고 참은 슬픔을 쏟아냈고, 저는 어떻게든 밝게 인사하려고 쓸데없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 엄마~ 울지 마. 우리 죽으러 가는 거 아니야~ 뚝~ 더 자주 와서 오래 있다 가고 그럴 거라니까~"
" 으흐흐흐흐으으으응 "
기차 시간이 다가와 차를 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엄마는 차에 타지 않은 채로 차 창문 밖에서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 같았습니다. 온 얼굴로 서러움과 슬픔을 표현하는 '아이' 말입니다.
" 으이그~ 애 같아~ 엄마~엄마, 간다~ 곧 또 봐~ 그만 울고~ 연락할게~"
저희 가족 시그니처인 씩씩한 척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또 그 장면이 떠올라 눈물을 펑펑 콧물을 쭉쭉 쏟아내는 저입니다.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조용히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 장모님이랑 자기 보면 꼭 우리 외할머니랑 엄마 보는 거 같아."
" 그래? 아, 맞아. 할머님 눈물 많으시지~ "
" 응응, 할머니는 소녀 같고 눈물이 많아. 그러는 할머니 보면 엄마도 눈물은 고이는 데 흘리지 않으려고 애써. 더 씩씩하게 단호하게 대할 때가 있어 "
" 맞아, 그랬던 거 같다. "
" 그래서 신기해, 내가 우리 외가댁이랑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자기네랑 결혼한 게 "
" 그래서 익숙하구나. 엄마랑 나랑 이러는 게? "
" 어어~ 익숙해. 어머님 아버님 투닥거리는 것도 우리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같아. "
" 크크, 그런 거 같네. 신기하다. 진짜. 우리 엄마, 그럼 더더더 나이가 들어서도 그럴까? 계속 안 익숙해질까. 이렇게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이런 거 말이야."
" 응, 지금까지 데이터로 봐서는 평생 그러실걸. "
" 아이고~ 내 생각도 그래. 정말 소녀 같아. 그렇지? "
더 자주 오래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엄마는 왜 이리 눈물을 흘린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게 좋다는 엄마' 글에서 썼던 건 '더 멀어지기 싫어서'라고 추측했었는데, 그날의 엄마의 울음에는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모로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거에 대한 미안함이 참 크다는 걸 말이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큽니다. 좀 더 악착같이 살고, 방황하지 않고 살았으면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게 여유롭게 사시게 해드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저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눈물을 그치고 이제는 결과를 이루어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순간순간의 점들이 모여 선을 그리며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지난 주말의 그 순간들, 아빠의 수많은 질문들과 엄마의 눈물이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하나의 점이 되어 저에게 힘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 그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
p.s 다들 노로바이러스 조심하시어요!! 일요일부터 어제까지 고생하다 이제 정신을 차렸습니다~ ㅠㅠ
내일모레 시부모님이 올라오셔서 좀 빠른 커밍아웃을 할 거 같습니다. 긴장이 많이 되네요. 곧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