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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광 Jun 26. 2017

"주휴수당은 없어요"

'점장님 하시는 거 보고 나중에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화상으로 이미 말씀드려서 잘 아시겠지만...”


점장님이 말씀을 머뭇거리는 동안 저는 어젯밤 전화상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떠올렸습니다.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알바몬 공고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야간 아르바이트에 지원합니다, 오전 9시에 뵙겠습니다, 정도만 생각났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점장님은 전화로 무슨 말씀을 더 하셨던 것일까요. 저는 ‘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아랑곳 않고 점장님은 말씀을 이었습니다.


“시급은 6,470원이에요. 야간수당은 따로 없고 주휴수당도 못 챙겨드려요. 이 점은 이해 부탁드려요. 다른 궁금한 내용 있으세요?”


라고 편의점 점장님께서는 물음표로 말씀을 마쳤습니다. 저는 들은 적 없지만 점장님은 줄곧 마음에 두신 이야기인가 봅니다. 저는 더 할 말도, 더 궁금한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네, 잘 알겠어요”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니요, 다른 궁금한 건 없고, 제가 POS기 사용이 처음에는 미숙할 텐데 좀 이해해주세요”라고 동문서답할 뿐이었습니다. 점장님은 비로소 안심한 듯 미소 지으시며 “처음엔 다 그렇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동문서답을 하면서도 제가 속으로는 ‘주휴수당이 언제부터 챙겨주고 말고 하는 거였나’라고 구시렁거렸던 건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주휴수당 안 주시면 임금체불이에요. 알고 계세요?”라고 눈치 없이 물을 리는 만무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도 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는커녕 헛걸음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죠. 애초에 그런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0이었겠지만요.


사실, 점장님이나 저나 서로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 거예요. 적당히 모른 척할 때는 적당히 속아주는 게 인지상정. 점포 하나당 아르바이트생을 최소 4명 고용하는 게 기본인 편의점 점장님이 주휴수당의 개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을 리 없고, 최저시급만으로는 여전히 급여가 목마른 아르바이트 구직자가 주휴수당의 존재를 모를 리 없겠죠. 점장님은 적당히 주휴수당 이야기를 얼버무렸고, 아르바이트 구직자인 저는 적당히 순진무구한 표정을 흉내 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은 아쉬운 사람이 참는 법입니다. 저는 최저시급이라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니까요. 주휴수당까지 넘보는 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도리가 아닐 테니까요. 점장님이 식비까지 지원해주시는 덕분에 끼니를 ‘폐기’로 때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복 받은 일이니까요. 비록 주휴수당은 못 받아도 최저시급 꼬박꼬박 받으면서 식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게 어딘가요. 이 정도로도 만족할 줄 모르면, 그건 욕심이겠죠... 라고 생각할 따름이지요.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

ㅡ도덕경 44장 중


그 자리에서 저는 뜬금없이 도덕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44장 말미에 적힌 마지막 12자를 저는 견강부회했습니다. 최저시급에 만족하자, 주휴수당에 욕심 부리지 말자, 라고요. 욕심이 아닌 것도 욕심으로 치부해야 하는 상황이 저는 웃펐습니다. 도덕경의 심오한 말뜻을 담아내기에 최저시급이라는 그릇은 너무도 얕았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또 뵙겠습니다.”


저는 점장님에게 인사하고 돌아섰습니다. 방금 당기고 들어온 편의점 유리문을 이번엔 밀어서 열었습니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선명하게 울릴 때, 제 속마음에선 이런 말이 들려 왔습니다.


‘주휴수당은 점장님 하시는 거 보고, 제가 나중에 결정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빌었습니다. 부디 점장님이 악덕한 분이시기를, 그 덕분에 제가 편한 마음으로 주휴수당을 ‘청구’할 수 있기를. 하지만 저는 이미 결말을 예감했습니다. 점장님은 좋은 분이시고, 저는 결국 주휴수당을 받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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