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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Jan 27. 2022

마음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난임 일기 (3)- 마음 비우기 


임신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아마도 "마음을 비워라" 일 것이다. 마음을 조급하게 여길수록 더욱 아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삼신할머니는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나조차도 난임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내려놓아라' '릴랙스 해라'라고 어줍지 않은 위로를 건네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난임으로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는 오픈톡에서 모여있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걸 위해 우리가 병원에 다니고 배에 주사기를 꼽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냐' 고.


신의 영역. 


그것은 정말 답답하고 불가항력적이며 불규칙하고 제멋대로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이지만 신의 모습은 사람들의 모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더니. 아니다. 신이 더 사람보다 치졸하고 변덕스러우면서 제멋대로 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삼신에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해도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임신'에 있어서는 '착상' 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기적을 바라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마음 비우기의 시작


사실 나는 마음 비우기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아예 주사기 시간도 맞추지 않고 영양제도 먹지 않고 먹는 것도 대충 마음대로 먹으면서 될 대로 되라고 해야 한다는 걸까. 


그렇다면 결과는 실패겠지.?


나의 식습관은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고, 커피는 입에 달고 살면서도 아메리카노도 아닌 달다구리만 먹고, 아이스크림은 식후땡처럼 먹어야 하고, 과일은 꼭 집에 있어야 하고. 야식도 참지 않고 운동도 안 하면 


이게 막살겠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주 2회 다니고 하루에 최소 7 천보 이상은 걸으려고 하고 만보도 채워서 걷고, 단백질 위주의 건강식으로 먹으려고 노력하고, 하루에 1끼는 꼭 샐러드를 챙겨 먹고. 야식도 끊고 10시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한들 


아이가 생기는 건 또 아니다. 


난임으로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아이를 갖기 위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 일 수도 있다. 


계속되는 호르몬 주사와 시술의 실패를 겪다 보면 멘탈이 부서진다. 난임의 가장 힘든 구간은 '멘탈'이 나간다는 것이다. 


누군가 블로그에 써놓은 글을 봤다. 의사에게 


"이제 포기해야겠다. 이제는 내가 성공하겠어요? 싶어요"라고 하자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신기하게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울증이 오지 않게 마음을 잘 수련해야 한다. 임신을 위해 몸을 만든다 시간을 보낸다가 아닌 내 건강을 위해 내 나이 대중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세포가 나온다" 


라고 전했다는 말을 보고 나는 그 말을 다이어리 제일 앞면에 붙여놓았다. 


흑호애가 남편에게 아주 좋아


나는 굉장히 목표지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목표가 생기면 이루기 위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면이 있다. 그것이 가끔은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특히나 그 대상은 남편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정신없이 속도를 내거나 달리고 있을 때 나를 중재시키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남편은 내게 


"또 액셀 밟는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본다. 나의 브레이크는 남편이다. 


사실, 나는 흑호 띠 아이가 갖고 싶었다. 남편에게 흑호애가 생기면 좋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의 사주팔자에는 소띠해에도 임신운이 있고, 범띠해에도 임신운이 있다고 했다. 소띠에 낳으면 아들이고, 범띠에 낳으면 딸이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흑호 해가 시작되었고, 이제 흑호애를 낳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엉터리 쟁이 사주 보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나를 불붙게 한 것이다. 


고난과 시련이 계속되는 부부

사실, 우리 부부에게 고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결혼을 준비할 때 본격적으로 한번 위기가 왔었고, 신혼집에 들어간 지 1년이 되지 않아서 온 동네가 재개발돼서 집을 구해야 해서 쫓겨나는 두 번째 위기가 왔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집을 구하기 위한 위기도 한번 더 있었다. 우리에게는 많은 위기가 있었다. 결혼 6년 차인 것에 비하면 큰 위기가 참 많았고,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이다.


집을 구할 때 전세난이 시작되고, 재개발이 실행돼서 집을 3개월 후면 빼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말 그대로 진짜 길거리에 나 앉을 판이 되었다. 신혼에 이게 무슨 일인가.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도 못했다. 새로 바른 벽지가 다 마르기도 전이었다. (이사비도 이주비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그쯤 금액에 맞는 전세를 겨우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낮 점심시간에 살짝 가서 먼저 보았다. 부동산 업자에게 너무 마음에 드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유튜브로 배운(?) 나는 업자에게 다시 남편과 상의하겠다 한 후에 집을 나서며 시어머니께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화를 하고 신나 했던 기억이 있다. 


저녁에 남편과 다시 가보고 결정지으려고 퇴근 후 남편과 부동산을 찾았을 때는 이미 누군가 계약을 한 후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계약할 것 같았으면 티를 내거나 10만 원이라도 걸었으면 홀드 해줬을 텐데"


부동산 업자분은 뒤늦게 이런 말을 했다. 알고 보니 내가 보기 전에도 3팀이나 집을 보고 간 직후였다. 그리고 다른 신혼부부가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축 건물이어서 깨끗하고, 주차난인 주택가에서 1층 주차장이 있는 흔치 않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신축이다 보니 방범도 잘 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나의 집을 그 사람들에게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동산 업자는 다음번 전세가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이미 집을 빼야 하는 시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2달 내내 집을 보러 다닌 고생의 경험상 전세가 나오지가 않을 터였다. (이사가 많은 시기가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그 지역을 떠나라. 꼭 거기여야 하는 이유가 있니?"라고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지역에 집을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재정상황에 맞는 집은 또 재개발이나 재건축 예정 구역이었다.


"네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나는 이제 집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지역에서 청약을 넣고 싶어서 10년 이상 살아온 것이 조금 아까웠지만, 이제는 지역을 정말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회사가 이사를 가서 너무 힘들어진 남편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생각했다. 나는 애를 키우면 어차피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이니 (사람이 몇 없는 중소기업이다 보니 대신 일을 할 사람을 뽑기 애매했다) 차라리 그 편도 나을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집을 구하기 힘들 거라 포기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사실 점심시간마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인 부동산을 가서 음료수를 전하며 "전세매물 나오면 꼭 좀 연락해주세요"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부동산에 그렇게 얼굴을 들이미는 것도 꽤나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부동산에서 우리의 예산을 말했을 때 아예 그런 집은 요즘 없다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어느 구석의 지하에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집을 보여주며 그 가격은 이런 집 밖에 없다며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부동산을 최소 10군데는 돌았는데 대부분 그랬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나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비타 500을 사거나 커피를 사거나 해서 부동산을 찾아 오늘은 매물이 없냐고 물어보고 연락을 달라며 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동네를 둘러보면서 아깝게 놓친 그 집을 보면서 


"네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박진영의 노래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됨을 느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마음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근육도 필요하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기르는데 시간과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에도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게 부동산에 공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운이 좋게도 원래 들어가려던 집 가까이 한 블록도 지나지 않아 다른 집이 전세가 나왔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집을 계약하여서 이주 기간 마지막 날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도 신축을 놓친 것에 대해 앙심이 남아있었다. (그 사람들 잘못도 아닌데 ㅋㅋ) 


그때 부동산 업자분이 이야기해주셨다. 


"집에도 인연이 있고, 때가 있어요. 그 집은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그때 바깥분을 못봐서 몰랐는데, 이 집은 키가 커서 그 집에 갔으면 답답했을 거야. 지금 집이 끝 층이라 더 천장도 높고 딱이야. 그 집에 들어간 신혼부부는 둘 다 키가 고만고만해서 그 집이 딱이고"


그때는 부동산 분이 우리를 위로해주느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사 온 집은 구옥이라 이사 오고 안방에 비가 새고 난리였다. 그때 난리를 겪으면서 원망을 더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도 4년이 지나고 보니, 부동산 분 말이 맞았다. 생각해보니 그 집은 방이 2개밖에 없었고, 화장실도 좁았다. 또 저층이라 창문을 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부동산업자분이 보여주었던 더 넓은 집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집이 골목 끝집이라 구석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부동산분은 똑같은 가격이면 더 넓은 집이 낫다.라고 했지만, 마침 현관문도 고장이 나서 우리가 먼저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밤에 다니려면 너무 무서워서 이 집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틀리다고 생각했던 끝집이 다른 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 집이었다. 아무리 낮에 와보고 밤에 와봐도 이방인이 아니라 동네 주민으로 살아봐야 보이는 동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때는 틀리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리고 조바심이 나서 왕왕거렸던 것이.

결국에는 우리 집과 인연이 되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표지판에 그려진 사람도 손잡을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늦게 오는 것은
엄마 아빠가 만들어놓은 꽃길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오기 때문이다


집과의 인연도 그러한데.

사람과의 인연은 오죽할까.


나는 남편과도 결혼 못할 줄 알았다. 내 주변 모든 이가 결혼을 반대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친구들은 하도 우리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해서 나중에는 포기했다고 했다. 

그런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결혼할 인연이었나 보다.


우리의 아기도 네가 오기 위해. 이 수많은 과정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낸 마음 내려놓기의 방법.


지금은 조바심 나고 끝난 것 같고 안될 것 같은 기분이어도,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리고 나면, 

네가 오기 위해서였구나. 기분 좋게 안아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 부처님. 돌아가신 할머니, 외할머니. 다른 조상님들, 삼신 할머니까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 기도가 더 늘었다. 


오고 있을 아기에게 전하는 기도. 


아가야.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어서 오렴.


그렇게 내려놓기를 한다고 마음 내려놓기를 하는 순간에도.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드는 생각은

(이제 꽃구경 그만하고 엄마 아빠한테 와서 꽃구경해도 되잖아!!!)


남편은 나의 기도를 듣고 그건 '기도'가 아니라 '협박'이 아니냐고 한다. 


아가야, 미안해 나도 어쩔수 없나봐~ 


매일 같이 집을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비버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부시는 걸 반복하는 번뇌 속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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