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a Jan 24. 2022

시험관 1차 채취, 모두 공난포네요

난임일기(2)-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나의 원수 나의 세포

누군가는 말한다. 시험관 1차에서의 성공은 '로또'와도 같다고.

그러나 누구나 희망할 것이다. 아침마다 배에 자가 주사로 주사기를 꼽는 고통을 끝내주시기를.

나 또한 그랬다. 이 고통이 1차의 성공이라는 기적으로 끝나기를.


하지만 나의 난포는 생각보다 늦게 자랐다.

조금이라도 건강한 식단을 먹기 위해 나는 하루에 1끼를 꼭 샐러드로 먹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밀가루와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못 마신 지 장작 6개월, 술을 못 마신지는 1년이 넘었다. 강제 금주령이 내려진 것이다.


여성호르몬에 좋다는 두유를 무첨가물로 하루에 2개씩 마셨다. 두유의 무첨가물 버전은 그냥 콩물이었다. 두유를 좋아하는 나지만, 어쩐지 콩비린내에 질려가는 것 같았다.


두유 2개.

토마토 착즙

포도 착즙

난자질을 개선시켜준다는 바이오 지니나 액

배를 따뜻하게 하는 쑥뜸

잠을 잘 오게 한다는 대추즙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쑥차(주문해놓고 못 먹었다)

임신 호르몬이 나온다는 10시 이전에 취침하기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일주일 2회 필라테스 + 계단 오르기


매일 몸에 좋은 것들을 먹으면서, 운동을 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 배에 꽂는 주사가 1개에서 2개로 늘어나고 밤에 맞는 주사 총 3개까지 오기까지. 주사기를 꼽고 꺼낼 때 피가 흐르거나 배에 온갖 멍이 들거나 해도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명당이라는 곳을 찾아 소원을 빌었다. 임신기원 그림들도 샀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바다 그림도 샀다.

집에 주렁주렁 무당집처럼 임신 기원의 흔적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것만 사면, 이것만 하면 임신이 될것 같았다.

임신이 되기도 전에 전자파를 차단해준다는 배워머도 아닌걸 알면서도 속는셈 구입했다.

그렇게 남들은 10일이면 끝난다는 주사를 20일 동안 맞으면서 겨우 채취 날짜가 잡혔다.

중간에 가슴이 갑자기 땡땡 해지는 느낌이 들어 피검사를 했는데, 프로락틴 수치가 높았다. 정상 범위가 20-40이고, 이식을 하려면 25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는데, 나는 63이 나왔다.


프로락틴을 떨어뜨려준다는 '커버 락틴'이라는 일명 젖 말리는 약을 먹고 나는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다. 밤새 지속되는 고열과 높아진 안압에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온갖 몸살에 누군가 내 몸을 자꾸 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열진통제는 프로락틴을 높인다는 말에 진통제도 못 먹고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결국 성분이 다른 해열진통제를 하나 먹고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꼬박 24시간을 아프고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2번 많게는 3번이나 휴가를 내면서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이번으로 바로 이식은 못해도 동결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이 호르몬 주사에 절여지지 않기를.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얼마나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양재천을 따라 걸으면서 오리의 수를 보고, 나는 얼마나 채취될까. 얼마만큼의 난자가 나올까. 상상해보았다. 처음 초음파를 봤을 때 난포가 10개 이상 보인다고 했다. 보통 다낭성은 20개까지도 자라기도 하는데, 너무 많이 자라도 바로 이식을 하지 못하니 적당히 자랐으면 했다.

채취 당일.

나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분명 내가 먼저 왔는데, 내 앞의 예약자가 먼저 시술에 들어갔다.


간호사가 새로 온 분인지 핏줄을 잡지 못했다. 나는 핏줄이 잘 비치는 피부가 얇은 타입이라 핏줄을 못 잡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내 팔을 붙잡고 30분을 씨름하던 간호사는 손등에 링거줄을 달았다. 손등에 잡은 링거줄도 핏줄이 터져서 손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간호사분이 죄송하다면서 손을 닦아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바늘이 움직여서 더 아팠다. 그리고 미처 다 닦지 못한 손을 보고 의사는 왜 이렇게 손이 피범벅이 되었냐고 했다.


그게 어쩌면, 복선이었을지도. 이때부터 잘못되어가고 있었던 걸까.


"숨 크게 들이쉬세요"


라는 말을 듣고 숨을 크게 2번 쉬고 나니 나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지난번부터 마취에 굉장히 빨리 깨고 있음을 알았다.


옆 자리에 누워있던 나보다 먼저 시술한 분은 냉동난자 1개가 나왔다면서 집에 가라고 했다.

나는 생각보다 마취가 일찍 깨서 더 누워있으라고 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빙글빙글 돌았다. 눈을 감은채 계속 기다렸다.


잠시 후 간호사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환자분 혹시 속 울렁거리는 거 있으세요?"


나는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아니요. 저는 몇 개 나왔어요?"


간호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간혹 자궁의 길이 휘어져서 채취가 오래 걸리거나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그게 나인가? 온갖 인터넷에 본 사례들을 떠올렸다.


"환자분 공난포가 나와가지고.."

"몇개나요?"

"10개 다 공난포라고 선생님이 뵙고 가자고 기다린다고 하셨어요"

"네? 다요?"

"네.."

"그럼 하나도 안 나왔어요? 한 개도요?"

"네.. 조금 더 누워계셔야 하는데.. 선생님이 오전 진료 셔가지고 지금 밑에서 기다리신다고. 옷 갈아 입고 내려가시면 되거든요? 속 울렁거리고 하는 거 있으시면 꼭 말씀하셔야 해요."


나는 내가 마취가 덜 풀린 것인가.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벽을 짚으면서 내려가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같이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갔다.


"환자분, 10개 채취했는데, 다 공난포였어요. 1개 난자가 있는 게 있었는데 모양이 찌그러지고 안 좋아서 폐기 처분했어요. 나머지는 다 물 이어 가지고. 저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네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했는지. 몇 년 만이라고 했는지. 어이가 벙벙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10개 다 공난포였다 고요? 하나도 안 나왔다고요?"


"나도 이런 경우가 잘 없어가지고.. 몸이 이미 공난포를 배출하는 거에 적응이 되어 버린 걸 수도 있어요. 다음번에 약을 바꿔보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채취할 때 다 공난포가 나오는 이런 경우가 있나요?"


"잘 없긴 한데.. 환자분이 특이 체질인 것 같아요"


"네? 특이체질이요?"


나는 그동안 알맹이도 없는 난포에다가 호르몬 주사를 놓고 있었던 건가. 뭐지?

그동안 나는 생리를 한 번도 거른 적도 미뤄진 적도 없는데.


한참 동안 방에는 정적이 흘렀다.

의사도, 간호사도, 남편도 말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병이 있으므로, 침묵을 깨고 방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병원 오픈 방에 모여있는 시험관 동기(?) 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먼저 시험관 시술로 임신을 한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모조리 공난포라고?

여자 고자가 된 기분이었다.


간혹 다낭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난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공난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20개를 채취하면 그중 반이 공난포이기도 했고, 반이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다 공난포가 나오는 경우는 전체의 10%가 되지 않았다.


나의 모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나의 2022년 1월이 통째로 사라졌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나의 원수 나의 세포 나의 난자 덕분에.


병원 대기석에 앉아 멍하니 유리창밖을 보니 소리도 없이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전 01화 시험관만 하면 다 임신 할 것 같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