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4)- 호르몬의 노예
시험관 하면 대표적으로 '주사'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주사의 관문만 기다리는 것은 또 아니다. 물론 자가 주사를 맞을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사는 제일 생소하고 어렵고 힘든 관문임에는 분명하다. 내 살이지만 전문 간호사의 손이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찌르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그리고 바늘이 두꺼워지는 약의 종류에 따라 살을 튕겨져 나올 때는 아프기만 엄청 아프고 바늘은 찔리지 않아서 역효과를 가져온다.
한 달간의 호르몬 치료 = 한 달간의 호르몬 노예
나는 1차의 시험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채취에서 낙담한 후 1달간의 호르몬 약을 처방받았다.
내가 처방받은 약은 프로기노바 30알과 프로베라 정 5알이었다.
호르몬의 약은 매일 일정 시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약을 일정하게 먹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막상 주사기를 매일 찌르다가 약을 먹으니 한결 편해진 것 같지만, 그 후폭풍은 주사만큼이나 심했다. 아니 더 긴 시간을 진행해야 해서 더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음)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나온다고 뇌를 속여서 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프로기노바를 까먹었을 경우, 24시간 안에 빨리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복용을 중단할 경우 출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호르몬 약에는 큰 부작용이 따른다.
왜냐하면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호르몬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호르몬의 노예'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한 달 '호르몬 치료'는 곧 나에게 '호르몬 노예 1달'이 주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호르몬 강점기,
탄압과 폭정 당하는 몸뚱이
프로기노바는 갱년기 폐경기 여성에게도 치료제로 쓰이는 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명 '여성호르몬'을 몸에 때려 박는 것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나의 경우에는 난자를 과배란 하는 일명 과부하의 일을 시켰기 때문에 임신상태라고 몸을 속여서 한 달 난자를 쉬게 한 다음다음 과배란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나는 한껏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사람인데, 남편이 느낄 정도로 예민함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불면증도 원래 있었는데 더욱 두드러졌는데, 포르 기노 바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렇게 치솟는 호르몬과 함께, 주변에서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임신 소식, 아동학대 기사에 울고 화내며 감정적인 끝판왕을 보냈다.
나는 정말 끝도 없이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라고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가, "때가 되면 될 거야" 나를 다독였다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나는 우리 아이라면 참을 수 있나 자신이 없어 한 껏 걱정을 했다가 먹방이 나오면 나오는 족족 다 "먹고 싶다" 했다가, 한껏 예민해진 후각에 집에 온갖 냄새가 난다고 했다.
"하수구 냄새가 심하다"라고 했다가, 남편의 "겨드랑이 냄새가 난다" 거나 "발 냄새가 난다" 면서 남편을 잡거나. "그래도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 없지" 라면서 위로를 삼다가.
그렇게 인위적인 임신상태를 겪고 있지만, 이것은 내 몸과 나의 뇌를 속이는 호르몬의 짓일 뿐.
나의 자궁에는 아이가 없다.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나의 상태를 탓할 댈 대상이 없다. 나에게는 이 모든 증상을 누릴 핑계가 없다.
내 기분이 내 것이 아니고 나의 눈물도 나의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눈물도 많아지고 화와 짜증도 많아진다. 뇌에 작용하는 호르몬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몸이 나의 뇌의 통제를 벗어나는 영화들이 몇 있다.
외계인의 침공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최면일 때도 있다. 이러한 공상영화가 아닌 실제에서 내 몸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작용하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성의 독립선언!
호르몬의 지배 하에 감성이 뇌를 지배하여 나의 몸을 마음대로 휘두른 지 25일이 지나면 이제 프로기노바와 더불어 프로베라 정 5일이 추가되어 두 개의 호르몬 약을 먹게 된다.
프로베라 정은 흔히 생리불순으로 인한 생리를 터지게 하는 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인위적으로 자궁 내벽을 두껍게 하는 프로기노바의 역할을 무너뜨리고 이제 인공적인 생리 주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보통 프로베라 정을 먹고 나면 며칠 내에 생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내벽을 쌓게 하는 호르몬과 동시에 생리를 하게 하는 내벽을 무너뜨리는 호르몬을 투여하게 되면, 몸은 무한정 생리 전 증후군에 돌입한다.
그리고 모든 약의 투여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뇌 속에 지배하에 억눌려있던 이성의 '독립선언'으로 이성의 광복절이 도래한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섭섭하고 서운하고 울 것 같은 마음과 폭식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조금은 이성적인 사람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독립선언과 동시에 생리를 기다리게 된다.
이 과정을 보통 시험관에서는 '인공 주기'의 과정 중의 한 템포이다. 인공 주기는 자연주기와 달리 인공적으로 생리와 배란주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호르몬 치료의 무서운 점은, 과배란과 더불어 이 모든 작용들이 난소암과 유방암발병율을 현저하게 높인다는 점이다. 물론, 시험관을 하지 않아도 여성들이 자주 걸리는 '자궁내막증'에도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다루는 것은 그만큼 몸에 무리를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지배와 통치, 독립, 광복의 과정을 거치고 생리만을 기다리고 생리 2일-3일째에 새로운 시험관 2차에 들어가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나날들 속에서
오늘, 같은 팀 막내가 심상치 않은 몸상태로 조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