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하기는 좀 미안한데.. 와이프는 '유리멘탈' 같아"
남편이 나의 정신력을 두고 종종 팩폭을 하는데, 처음에는 조금 망설이면서 나에게 귓속말을 하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당당하게 말했다.
"응 나 유리멘탈이야"
그런데 1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유리멘탈에서 개복치로 하향 조정된 정신력으로 남편에게 측정되었는데, 이제는 조심스럽거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말한다.
"와이프는 개복치 같아"
뿌수수수수슝-
나의 정신력이 개복치처럼 데미지를 입고 정신력이 사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때는 바야흐로 나오지 못하고 카톡 감옥처럼 얽매여 있는 단체 채팅방인데, 같은 시험관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방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곳에서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서로를 위로해 주고 첫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누군가 임신을 해서 졸업할 때 같은 시간에 모여서 축하해주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처음 이 방을 소개해준 것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지방에서 시험관을 함께 시작한 친구는 먼저 임신이 되었고, 같은 병원에 다니면서 카톡방에서 만난 언니들에게 많은 정보를 얻고 배웠다고 나에게도 권한 바가 있다.
나는 처음에는 잘 내키지가 않아서,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시험관'이라는 특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곳이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매번 남편에게 쏟아낼 수도 없으므로) 채팅방에 자원해서 입성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매달 많게는 2-3명씩 졸업자(임신)들이 나왔다. 나이부터 사는 지역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회사를 다니는 사람, 그만 둔사람 정말 많이 달랐다.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아픔
이 방에서 제일 얻을 수 있는 큰 특징은 병원 내에서 일명 '손바꿈'을 할 때 제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도 이 방에서 얻은 정보로 손바꿈을 하였는데, 물론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지만, 생생 후기를 방에서 얻을 수 있었다. 손바꿈으로 다른 선생님으로 주치의를 바꾼 후 나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아픔을 드러내기가 더 쉬울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나 위로받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많은 부분을 위로받고 의지하게 되었다.
시험관을 진행하다가 자궁내막증이 생기거나 난소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어렸지만, 난저가 온경우도 있었고 너무 과한 주사 투여로 복수가 차서 고생하는 사례도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울며 멘탈이 나가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병원 직통번호를 알려주고, 혹은 병원에 있는 사람이 코드를 미리 찍어주고 하는 신기한 전우애가 형성되기도 했다.
걱정은 전염성이 강해서, 나는야 개복치 걱정인형!
누군가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걱정인형 모드가 발동된다. 누군가는 난자를 18개 이상 뽑았는데 냉동이 1개가 나왔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지난번 2차 채취에서 8개 만을 뽑았다. 숫자적인 확률상으로 나는 더 떨어질 것이다.
난자를 채취 후
1. 이 중에서 성숙 난자만을 가려낸다.(1차로 탈락자가 나온다)
2. 추슬러진 성숙 난자에 정자를 넣어 수정을 시킨다. (2차 탈락자가 나온다)
3. 살아남은 배아가 수정 분열한다 (3차 탈락자가 나온다. 수정 분열하다가 멈추는 경우도 있다)
4.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배아를 얼린다 (냉동을 하다가 4차 탈락자가 나온다)
5. 추후 이식 때 냉동배아를 해동하다가도 죽기도 한다( 5차 탈락자)
*보통채취된 난자는 과배란후 70%가 수정되고 수정된 배아중 70%가 정상배아로 발달한다고 한다. 이를 생식생리학에서는 7-7-7의 법칙으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엠여성의원 M쌤)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이미 내 몸을 떠나 병원 배양팀에게 맡겨진 일인데, 나는 걱정인형 모드가 발동되었다. '냉동' 이 아니라 '신선'으로 진행해 달라고 더 강력하게 말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서, 참치 못하고 1:1 문의를 남겼다.
금요일에 문의를 남겨 토요일 밤 10시가 넘어서 답변을 받았다. 그 시간까지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 어쩐지 죄송하고 존경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온 답변은, 나의 성숙 난자의 개수와 수정 난자 개수, 그리고 "내가 잘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선생님의 말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한마디로 모든 게 안정이 되었다.
시발 비용? 아니, 마음 안정 비용
시발 비용
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게 된 비용. 시발 비용은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단톡방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같이 화내고 같이 멘탈을 잡고 방법을 찾으면서 멘탈관리가 되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그리고 그 폐해는 때로는 다른 파급력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누군가 좋다고 한 아이템이 있으면 너도나도 사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 결국에는 공구 아닌 공구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남들에게는 시발 비용이 있다는데, 우리에게는 마음 안정 비용이 있다.
내가 그 방에 있어서 사게 된 아이템은 여러 가지이다. 각종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비롯해서, 집에 있던 습식 족욕기를 기부해 버리고 건식 족욕기를 샀다. 제일 사용도가 낮은 것은 지압 슬리퍼이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너무 아파서 이제는 설거지할 때만 신고 있게 된다.
수없는 영양제들 속에서 식전에 먹어야 할 것, 식후에 먹어야 할 것, 채취할 때 먹어야 할 것, 이식하고는 끊어야 할 것들의 정보가 난무한다. 의사의 대처가 부족했을 때 다른 병원을 찾아가서 어떻게 수치를 맞추는지 노하우를 공유한다.
착상하고 나면,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포도즙, 추어탕부터 시작해서 양모 팰트 diy까지..
그것을 해야만 임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사고 본다는 심정.
이런, 마음 안정 비용으로 들어가는 돈이 시발 비용보다 더 드는 것 같다.
남편은 말한다.
"그 방을 당장 나와!"
도움을 많이 받는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잘 받는 것 같다며 방을 나올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어쩐지 맛이 들려서 나올 생각은 없다. 멋지게 나도 난임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면서 열렬하게 축하를 받으면서 그 방을 나오고 싶다.
그렇지만, 오늘도 다른 이들의 사연에 일희일비하는 저의 개복치 정신력이 사망하셨습니다.
어쩐지 난임 오픈 채팅방은 개복치 게임을 계속하는 것 같은 개미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