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보다 창문에 비친 구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나의 세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에 대해서는 과학시간에만 배웠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의학도나 의학관계자 혹은 진짜 미생물학과관련 직종이 아닌이상, 생각해볼 기회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또 한부류, 난임부부들은 세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세포가 바로 배아가 되고 세포 분열이 일어나 아이가 된다. 그 아이는 사람이 된다.
이 신기한 우주만물의 탄생같은 비밀을 우리는 갖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 이 엄청난 기적같은 일들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임신이 된줄 모르고 술을 마시거나 감기약을 먹거나, 찜질방에 가거나 해도 태어날 아이는 태어난다. 그건 아마도 이 모든 것을 견디는 '슈퍼배아'가 있기때문이 아닐까.
좋은 배아. 슈퍼배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은 난자, 질 좋은 정자가 필요하다.
내가 먹은 것들이 곧 내가 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먹은 것들이 곧 내 아이가 된다는 말과도 같다.
어느새 꽃망울을 피우기 위해 분주하게 자라나고 있는 봄 좋은 난자를 얻기위해 뭘 해야하나요?
좋은 난자를 얻기 위한 수 많은 방법 중에 대표적인 한가지는 바로 "만보 걷기" 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유산소 운동보다 걷기가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은 걷기 운동을 통해 골반을 움직여 골반강내부에 위치한 자궁의 순환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하여 자궁으로 혈류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오래 앉아있거나 고정자세로 있어서 혈액이 정체 되는 일이 많은데, 순환에 힘을 기울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걷기라고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제법 가까운 거리의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코로나로 인해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 하고 있던 지라 하루에 만보가 다 채워지지 않았다. (남편의 경우에는 거의 집과 회사가 서울 끝에서 경기로 오는 길이기때문에 회사만 다녀와도 하루에 만보를 채울 수 있었다.)
날이 추워지는 겨울에 시험관 성공율이 떨어지는것에도 영향이 있는걸까.
추위가 매섭던 겨울에는 걷기가 더 쉽지 않았다. 이제, 날도 점점 풀리고 있고 나는 다시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만보기의 만보.
만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줄이야.
처음 만보를 채우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상 하루의 걸음수가 대략 평균 3천보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집안일을 한다고 돌아다녀도 천걸음이상을 돌아다니기는 힘들었다. (집이 좁아서 일까?) 집안일은 엄청 힘든데, 걸음수는 많이 올라가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쉽지 않은것처럼 금방 또 나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그렇게, 만보를 채우지 못하는 날에는 어쩐지 자괴감이 들고, 걷기가 싫어질때도 있었다. 특히나 날씨가 추운날에는 나가서 걷는게 쉽지 않아 집에서 스텝퍼라는 운동기구를 밟으면서 운동을 했는데, 지상에서 걷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쳤다.
오픈 단톡방에서의 만보 인증이 이어질때마다 나는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나만 게으른것 같아 더욱 조바심을 내며 걷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만보는 생각보다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특히 만보를 처음 채울때는 다리가 많이 아팠다. 종아리가 잘 굳었었는데, 나는 걸을때 허벅지의 힘이 아니라 종아리에 힘을 더 많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도 딱 만보를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의 체력은 그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여행을 가거나 쇼핑 등 목적이 있을때는 힘든줄 모르고 자주 걸었었는데, 목적없이 만보를 걷기란 목적지향주의인 나에겐 참 힘든일이었다.
임신을 향한 길은 멀지만 가깝게 보이는 산같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 지지가 않는다. 걷다보면 멀리 보이는 산은 어쩐지 금방 닿을듯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도 닿지도 않는다. 그 산을 넘어야만 '등산'이 되는건데, 어쩐지 그 길은 멀고도 멀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걸음이 느린 아기에게 우리가 만걸음 다가간다고 생각하자
그의 이 말은 나에게 큰 용기가 되어주었다. 언제나 왜 오지 않냐고 이제 올때라면서 제촉하고 약간은 원망이 섞인 기도를 밤마다 했었다.
"다들 왔는데 너는 왜 오지 않고 있냐며. 이제 올때가 되었다. "
그런데, 우리가 마중을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우리 남편이 얼마나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단순하게도 그렇게 걷기 힘들던 만보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포장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던 풍경들도 얼마나 다정한지.
"아가야 너에게 다가가는 이 길이 참 예쁘구나"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야지. 이런것도 없으면 못해!
목적지향주의인 나에게 목적없는 걸음이란, 특히 골이 멀어보이는 마라톤같은 끈기가 필요한 일에는 아주 쥐약이던 나에게 그의 말은 아주 좋은 '목적'과 '목표'가 되었다.
중간에 간혹, 열심히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탈선도 하긴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너를 마중하러 만보 걸어가고 있단다.
우리가 만보를 걸을때마다 우리 아기에게 만걸음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자.
나는 그의 말에 위로와 힘을 받으며 오늘도 열심히 걷는다.
우리 곧 만나는 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