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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May 03. 2022

이웃집 아이는 사랑스러워 보인다

난임 일기 (9) -시험관을 하는 나에게 아이란

난임 병원에서의 고충이라면 만만치 않은 대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난임 병원에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지만, 그 와중에는 둘째의 시험관 진행으로 첫째를 맡길 곳이 없어서 간혹 데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유모차에 누워서 자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는 난임 병원의 시선들은 다 제각각인데, 어쩐지 길에서 만난 아이보다 더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쩐지 눈물이 터져서 우는 사람들도 있는 난임 병원을 우렁차게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해 땀을 흘리고 있는 엄마를 보자니, 나 조차도 아이를 한 명도 갖지 못해 병원을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자, 갈망.  


길에서 간혹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부를 보자면, 혹은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 아빠를 보면, 이웃집 아이는 참 사랑스러워 보인다.


나의 친구들 중에는 두 번의 유산을 겪고 아이를 어렵게 가져서 출산한 친구도 있고, 비슷한 시기에 둘째를 출산한 친구도 있다. 나보다 늦게 시험관을 시작했지만 먼저 임신이 되어서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친구도 있고, 결혼과 출산을 일찍 하여 어느새 학부모가 된 친구도 있다.


그중에 친한 친구들이 최근에 둘째를 임신하거나 출산하였는데, 제일 최근에 출산한 친구들이 저마다 난임 병원에서 시험관을 진행한다는 나를 붙잡고 카톡에서 자식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을 때가 있다.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어


"이것들아 시험관 하는 나한테 애 자랑을 하고 싶냐!"


라고 소리를 칠까 하다가도.


너무 좋아서 참고 눌러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는 자식사랑이 그런 건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말을 삼키며, 친구들의 자식 자랑을 다 들어주었다.


"첫째가 둘째와 성격이 다르다"는 말에서 시작하여서

"둘째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라는 말에서 묻어 나오는 애정이,


그리고 어렵게 아이를 가져 출산한 친구가

"와이프가 코로나가 걸려서 혼자 독박 육아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하지만

"아들이랑은 달라. 우리 딸 보러 와"라고 하는 말에서 묻어나는 자식 사랑이,


나는 한없이 그 마음이 가지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웃집 아기들은 참 하나같이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떤 친구는 본인도 난임 병원 문턱을 밟았다가 돌아온 이후 임신 출산을 했음에도 나에게


"그때가 좋은 거야. 애 없을 때를 즐겨"


와 같은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한다.


난임부부로 병원에서 시험관을 진행한다는 것은 곱지 않은 시선뿐만이 아니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 때문에 인간관계조차 쉽지 않아 진다는 점이 참 외롭다.


아이가 없을 뿐인데 인간관계에서 고립된다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그것이야말로 참 억울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따지자면 인간은 얼마나 사회적 동물인가. 아니면, 평균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까.


친구들이 아이가 있다고 해서 내가 아이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같이 함께 그 아이를 키워간다는 동질감을 나도 느끼고 싶어서 친구들과 비슷하게 임신을 하고 함께 육아를 하고 같이 일하는 엄마 아빠로서 고민을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한 시기 질투로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만 로봇이 없어. 나만 장난감 없어. 나만 핸드폰 없어."와 같이 사소한 문제로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통 주제가 사라지고, 상실감에 익숙해지는 상태가 되면서 슬픔에 짓눌려서 그저 겉도는 인간관계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갖고 싶은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지. 그냥 포기하면서 살게 되는 성격이 만들어진다던지.


어린 시절 단순하게 시작했던 장난감 하나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성격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장난감 하나가. 어릴 때는 소속감이 중요한 때니까.


어릴 때는 그렇다고 쳐도 어른이 되어서는 그럴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결혼하면서 얼마 남지 않는 본래 친구와 멀어지는 쓸쓸함과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까지 나는 또 한 번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가 20대 때 봉사활동을 자주 같이 가던 친구 3명이 있었다.

나를 빼고 2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둘 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나는 1년 휴학 후 졸업을 하느라 졸업시기가 늦어졌고,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아이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녀들은 둘째를 20대가 끝나기 전에 출산했다. 그녀들이 하는 대화에서 나는 멀어졌다.


나는 취업이 바빴고, 그녀들은 육아가 고되었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타이밍도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재운 새벽에야 조금 시간이 났고, 나는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일찍 자야 하거나 낮에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시댁과 육아 문제, 남편과의 갈등을 이야기했고, 나는 취업전선의 이야기를 했다. 서로 공감하는 포인트가 점점 줄었고, 그렇게 나는 그녀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의 쓸쓸함이 어디 지금 한 번뿐이랴.

중학교 때 붙어 다니던 친구 중에 몇몇이 상공계열로 가고 몇몇이 인문계열로 가면서 서로 관심사도 달라지고 고3 때 일찍 취업해 사회인이 된 그녀들과 수험생이 된 나와의 거리감도 점점 보이지 않게 간극이 커지고 멀어졌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싫어지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학의 지역이 나누면서 나는 서울로 오고 지방으로 대학을 간 친구들과도 방학이 되어서야 만나다가 결국에는 1년에 1번 정도 그마저도 취업준비를 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또 한 번의 기로에서 나보다 늦게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친구가 먼저 시험관을 시작했고 우리는 매일같이 통화했다. 그 통화로 멘털을 다잡았다. 둘이서 서로가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밀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2번째의 시도에서 그녀는 임신에 성공했고, 벌써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녀가 임신에 성공하면서 우리는 매일매일 하던 통화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사이가 나빠지거나 딱히 싸움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관심사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나는 회사일로 바빠졌고, 아이를 갖기 위해 일을 그만둔 그녀는 임신과 출산에 집중했다. 우리는 또 한 번 관심사가 크로스 되던 지점에서 벗어나 다시 서로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나 혼자 남았다.

출산율이 최저라는데 왜 내 주변에 친구들은 다 애를 낳은 것일까.

애기가 없는 건 왜 나뿐이며, 나는 왜 홀로 이 세상에서 뒤처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길에서 만나던 아이들이 집에서 어떻게 돌변하는지 보면서 나의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취업하기 전에는 그저 회사 목걸이를 하고 점심시간에 나와 커피를 먹고 있는 회사원들이 멋있게 보였다면, 취업을 하고 보니 그건 정말 살아남기 위해 커피를 빨러 점심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햇빛을 못 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깨닫기까지와 같이.


나는 나 스스로 그런 전쟁 같은 육아를 감당해낼 수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오롯이 아이게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결심을 했고, 자발적 '딩크족'이던 남편을 설득해 비자발적 '언딩크족' = '가족'을 만들기로 하고 오늘도 난임 병원에 앉아있다. 무시무시한 대기를 기다리고, 10통씩 피를 뽑아 검사하고, 생리 중에도 질 초음파 검사를 하고.


진통제를 삼키면서, 난임 병원에서 내 발에 치이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남의 집 아기를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겠지.  

그리고 푸르러 보이는 이웃집 아이들처럼. 누군가의 환상이 되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되겠지. 언젠가는 되는 것이 '시험관'이라고 하니까.


난임 병원에서 태교에서나 들을 자장가 오르골 노래를 틀어주는 이유는, 지금의 고통을 견뎌낼 이유, 아이가 왔을 때를 상상하라는 의미인가라고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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