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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Aug 22. 2022

우리가 호텔에 가는 이유

난임 일기(15) - 호텔에 가야 하는 타이밍 

갑자기 월요일에 선생님이 나에게 던져준 숙제를 해내느라 바빴다. 그건 바로 5일 후 잡힌 이식. 연중행사처럼 이식이 잡히면 할 일들이 많아졌다. 우선 호텔을 예약하고, 호텔에 가기 위해 집 정리와 집에 있는 고양이를 챙겨야 했다. 그리고, 미리 회사 일정을 조율하고 일을 처리해두어야 한다. 이식에 도움이 된다는 것들을 급하게 찾아본다. 침을 맞을까? 순환 마사지를 해볼까? 나는 급하게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번 주에 이식을 합시다! 


이식 하루 전날 전화기에 뜬 발신번호를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병원 간호사실' 


이식 전에 간호사실에서 오는 전화는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만 오는 전화였기 때문이었다. 가끔, 이식을 하기 위해 냉동 배아를 녹이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일상적이게 불친절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말투의 간호사의 말이 이어졌다. 이식 시간이 7시로 당겨졌다. 담당의사가 나에 대한 루틴을 잡기로 했나 보다. 아니면 본인만의 루틴이거나. 


이식이 1시간 앞당겨지면서 나의 기상 시간도 앞당겨졌다. 7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6시에 집에서 출발을 해야 했다. 6시 출발하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5시에 기상해 병원을 가야 하다니. 


이식 날에는 로션이나 바디제품 향이 나는 것을 사용 금지하고 있었다. 미리 전날 밤에 샤워를 마쳐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갈 참이었다. 남편은 배아에 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향이 나면 안 되는지 의아해했다. 


향이 강한 제품을 사용할 시, 배아가 민감하게 반응해서 착상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만을 들었다. 이식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남편 얼굴에 들이대면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이식은 마취를 하지 않으므로 매니큐어나 패디큐어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채취 때는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매니큐어나 패디큐어를 지우고 오라고 한다. 


이번 이식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갑자기 잡힌 일정이기도 했고, 담당의사가 배아가 등급이 나쁘기 때문에 채취를 더 해서 등급이 좋은 것과 섞어서 이식을 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더 채취로 나는 4개의 배아를 얼려둔 상태였다. 


눈사람 그리고 정맥주사 


시험관을 하는 사람들에게 암호처럼 통하는 말 '눈사람'과 '감자'였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면 배아는 세포분열을 시작하는데, 포배기를 지나 껍데기를 벗기 시작하는 때가 눈사람, 완전히 껍데기를 다 벗은 배아가 되었을때 감자 배아라고 불렀다. 


배아 등급은 배아의 겉 모양 중에서도 핵과 바깥모양으로 등급을 나누게되는데, 흔히 눈사람과 감자가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눈사람배아와 감자 배아여도 착상은 신의 영역이라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배아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등급 때문인지 새로 문을 연 병원 이름이 '감자와 눈사람'인 병원도 있었다. 


이식을 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웠다. 채취를 할 때나 수술을 할 때 누웠던 수술대와는 느낌이 달랐다. 수술을 할 때 들어가는 수술실은 엄청 추웠다. 등골이 서늘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마취에 들어가기도 했다. 마취에서 깨면 느끼는 구토 증상도 수술실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식을 위해 들어가는 수술대에서는 이불을 덮어준다. 


포근하고 바스락 거리는 하얀 구스 이불이었다. 수술실 밖에서 바스락 거리는 하얀 구스 이불을 덮고서 누워서 대기를 하다가 간호사들의 손에 침대가 이끌려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식 작업이 끝나면 잘 이식이 되었는지 관을 검사하고 배아 이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등급이 낮다던 배아는 눈사람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배아 모양이었다. 등급이 낮다면서 걱정을 하던 담당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나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이식 잘되었어요" 

  

따스한 체온으로 데워진 구스솜 이불에서 손을 빼서 의사 선생님께 손을 잡아달라고 청했다. 손에 닿는 차가운 수술실의 공기를 가르고 마주 잡은 담당의사는 고생했다는 듯 내 손등을 두들겨주었다.  


"이제 잘하고 오면돼" 


담당의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눈사람을 처음 마주한 나는 이식이 진행된 후 회복실에서 양팔에 '자궁수축 억제제'와 '콩주사(면역억제제)'를 각각 맞으며 양팔이 침대 주사바늘에 묶여있었지만 어쩐지 발이 까딱까딱 신이 났다. 


띠링띠링-


나의 이식이 잘 끝났는지 시험관 동지들, 병원 단톡방에서 안부 연락이 날아오고 있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입실이 가능하지 않아 워치에 울리는 알람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수액은 2시간 이상 천천히 진행되었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잠을 자기에는 어쩐지 찜질방에서 본듯한 네모 반듯한 두부 베개는 목디스크를 자극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가 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식날 소변을 참고 오라고 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방광이 어느정도 차있어야 자궁으로 들어가는 길이 잘 보인다고 했다. 이식 후에는 적어도 20분 후에 화장실을 갈 수 있다. 하지만, 저번 이식때 화장실을 간 후 실패한 경험으로 나는 바득바득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를 참고 있었다. 


커튼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술방으로 대기하다가 들어갔다. 가끔은 나쁜 결과에 우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의 희망과 비극이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어지럽게 교차되고 있었다. 


양팔에 주사를 맞은 나는 피검사를 하기 위해 발등에 바늘을 꽂았다. 약이 들어간 팔에서는 피검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팔로 지혈을 하고 있었는데, 발등은 누르기가 어려워, 간호사가 깁스처럼 붕대를 감아주었다.  핏줄 수난 시대, 주삿바늘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식하는 날 호텔에 가야 하는 이유


모두가 관용어처럼 이식하는 날에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고 말했다. 왜 호텔에서 자야 한다고 할까. 

내가 다리를 다쳐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다리를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집에 가면 여자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죠. 눈에 보이니까. 사부작사부작 집안일을 하더라고. 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하다 보면 온갖 집안일을 결국 다 하죠. 그래서 입원을 하라는 거예요. 다리를 쓰지 말라고 해도 쓰게 되더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우리 집은 우리 남편이 다 치우고 청소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처럼 병실에 가만히 누워서 밥이 내 앞까지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입원을 결정하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이식이 결정되면 의식처럼 묵을 호텔을 검색한다. 그리고 가고 싶은 호텔을 리스트업 해서 남편에게 보낸다. 남편의 컨펌과 결제가 이루어지면 호캉스가 시작된다. (사실 반복되는 이식과정에 남편도 어느덧 호캉스가 약간 부담이 되기 시작한 듯했다.)


나는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깔끔쟁이 남편이 청소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의 걱정에서부터 프리해지기 위해서이다. 

나는 잡생각과 걱정이 많은 타입이다. 잡생각과 걱정을 떨치기 위해 나는 몸을 움직이는 타입인데, 갑자기 화분을 옮긴다던가, 집 인테리어를 바꿀 생각을 한다던가, 침대보까지 싹 벗겨내 갑자기 온갖 빨래를 돌 리거가, 서랍 정리나 화장품 샘플을 정리하는 등 몸을 움직여야 머리에서 걱정 회로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스로 호텔에 가둔다.  


그리고, 만일 임신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에 던져질 것이 분명하다. 그건 집이지만, 둘이 살 때의 집과는 많이 달라질 풍경이고, 내 집이지만 내 집이 편하지 않은 상황에 놓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여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일. 우리는 그렇게 매번 이번이 마지막 휴가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이식 날 호텔을 찾는다. 


반쯤 성공한 인생 


그렇게 이식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식 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이식에만 꽂혀있던 게 분명했다. 

그렇게, 결혼기념일에 찾은 비즈니스호텔은 생각보다 방이 작았다. 창으로 보이는 반쪽짜리 한강뷰도 나쁘지는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식이 결정된 후 급하게 서칭을 시작하였지만, 나는 나의 욕망과 현실의 간극 앞에서 고민을 했다. 그 고민 끝에 주말에도 싸게 10만 원대에 머물 수 있는 남편 회사 제휴 호텔을 골랐다. 


어차피 계속될 이식. 그리고 이식을 했기 때문에 탕에도 못 들어가니 수영장을 갈 수도 없었다. 그냥 진짜 호텔 침대에 누워서 밥 먹고 잠만 자고 온다.라고 생각하면서, 합리적인 가성비에 만족했다. 


이번에야 말로 '눕눕'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눕눕'이 답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눕눕'이 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사들은 누워만 있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상대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다만 무리하거나 하지는 않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지난날들의 이식 호캉스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신이 났었다. 한껏 멋을 내고 에프터눈 세트를 시켜서 호텔 로비 카페에서 사진을 찍었다. 남편이 호텔 헬스장에 운동을 간사이 참지 못하고 호텔 앞 편의점으로 뛰어가 아이스크림을 사 오기도 했다. 기분을 한껏 들뜨게 하여 기분 좋은 호르몬이 나오면 결과는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처참했다.


이번에는 호텔에 오자마자 누워서 다리를 베개 위에 올려두고 누워있었다. 반쪽으로 열리는 호텔 창문을 열자 서울의 도시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비즈니스호텔답게  조용한 편이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도시 소리를 백색소음처럼 들으면서 생전 자지 않던 낮잠을 잤다.  


띠리릭-


나의 짧은 낮잠을 깨운 건 남편이었다.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한다며 잔뜩 벼루고 있던 남편은 신발을 가져오지 않아 운동을 하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방으로 돌아와 창문 앞에 의자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섭섭해진 마음을 달래며, 반쪽짜리 한강뷰를 보며 '반쯤 성공한 인생'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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