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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Oct 07. 2022

임신의 타이밍

난임 일기(17) - 눈사람아 사람이 되어라!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는데, 임신에도 타이밍이 있을까? 

혹은 운빨이라는 것도 임신에 통용되는 이야기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난임으로 고민을 하던 연예인 부부들도 임신의 소식을 전해오고, 유명 연예인들이 임신 소식을 전할 때마다 나는 그러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 괴로워했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시샘을 해야 애기가 생긴다고. 그래서 나는 생애 처음 '시샘'이라는 감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밑층에 이사 들어온 사람을 회사에서 마주쳤다. 다른 과였다. 그 사람은 결혼 기념 선물을 돌리고 있었다. 서로 얼굴만 알고 데면데면 지내던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짐을 실을 차들이 잔뜩 주차 중이었다. 아래층으로 이사 온 신혼부부의 친정식구들이었다. 임신이 되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빼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마저도 참 부럽고 시샘이 나기를 너머 원통하기까지 했다. 


'나는 왜 안 되는 것인가'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이 삼 남매인 점을, 그리고 남편이 형제인 것을 들며 이상하다고 했다. 씨가 귀한 집은 아니었다. 나의 난임이 친정집 식구들의 연력까지 가는 건가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 


왜 착상조차 되지 않는 걸까. 

전국의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볼까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집 앞에 한의원을 찾아가서 임신이 잘되는 그런 침을 놔달라고 하니, 혈액순환이 잘되는 침을 놔주겠다고 하면서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삼신 할아버지'가 있는 어느 지방의 할아버지 한의사를 추천해줬다. 


살을 더 빼야 하는 걸까? 

어릴 적부터 몸집이 있던 친구는 '살'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살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 건 아니라, 임신이 유지되기 힘들거나, 혹은 임신 후에 찾아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임신성 당뇨, 임신중독증 등) 때문에 살을 빼라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친구도 임신을 잘해서 애가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 


그럼 간절하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

아이를 갖기를 망설인 나의 마음 때문일까. 딩크족을 원했던 남편의 마음 때문일까. 원망의 화살이 꽂혔다. 


해볼거리를 다 해봤다. 

삼신 상도 차려보고, 유명한 절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도를 했다. (심지어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한의원에서 한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마사지도 받았다. 아이의 기운을 불러준다는 그림들도 샀다. 외국 논문과 에세이를 번역해놓은 사람들의 글들을 따라 공부하고, 해외직구로 온갖 종류의 영양제와 약들을 먹기 시작했다. 식단관리도 했다. 단백질 위주의 두부와 블루베리를 갈아놓은 '한큐 주스'와 샐러드를 먹었다. 


난임으로 같은 병원을 다니는 단톡방에서 하나둘씩 졸업을 하고 어느덧 내가 스텝의 위치까지 왔다. (들어온 순서대로 스텝이 된다) 나는 그것도 서글펐다. 


포기해야 생긴다던데 


어떻게 해야 포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포기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성격상 무언가에 꽂히거나 투두 리스트가 생기면, 그것이 완료될 때까지 머리에서 계속 돌아간다. 분석을 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어 한다. 얼마나 더 임신에 대한 포기를 해야 아이가 찾아올까.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절망에 빠질 때 미신을 찾게 된다. 

계속해서 유명하다는 곳에서 타로를 보고 사주를 봤다. 

계속된 시험관은 몸을 더욱 망쳤고, 배는 멍으로 가득 찼다. 먼저 난임 방을 졸업해서 임산 부방으로 간 사람들은 입덧이 괴롭다고 했는데, 나는 그 괴로움마저 느껴보고 싶은데 되지 않아 더 괴로웠다. 그리고 온갖 약들로 뇌하수체 종양까지 갔을 때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는 지점에 도달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 말을 계속해서 입에서 뱉어낸 후에야 나는 포기를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과자를 스트레스성으로 폭식을 했다. 건강식을 때려치우고 마음대로 먹고 혈당이 치솟아 잠들고 만보 걷기도 포기하고 대충 살았다. 갖고 싶던 호랑이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기는 다 놓쳤다. 나의 이러한 마음을 읽은 사주 관상가는 나에게 '토끼띠' 자식이 남편에게 더 좋다고 남편에게 도움을 주는 자식일 것이라고. 호랑이띠 자식이 나왔으면 나와 계속 부딪쳤을 거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나는 다 포기하고 있었다. 


난임과 주치의가 내과로 나를 보낸 덕에 내과에서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지만, 수차례의 피검을 나는 생각보다 쉽게 통과했다. 그 덕에 다시 난임 과로 보내졌고, 마치 핑퐁을 하듯 나를 내모는 의사들이 야속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임신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러던 중 난임 과로 돌아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주치의가 그 주에 이식을 결정했다. 바로 5일 후 이식이었다. 

될 대로 돼라. 


나는 그동안 내가 먹은 과자와 인스턴트, 치킨, 족발들을 생각했다. 몇 번의 채취로 든든하게 수정란도 만들어놓은 터였다. 노는 김에 이식이나 해보지 뭐.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의사는 나에게 아무런 이식 준비도 시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이식 전에 받아서 먹었다던 아스피린을 비롯한 각종 주사와 약들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어차피라는 생각에 열심히 놀다가 이식의 날이 왔다. 


내가 이식한 배아 사진(내가 다니던 곳은 배아사진을 주지 않아서 담당의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_불펌금지 


기대 없이 의례적은 찾은 병원에서의 이식 날. 

나는 처음 '눈사람'을 만났다. 

의사는 수정란 질이 떨어진다면서 다시 채취를 권했었는데, 힘들게 살도 빼고 등산도 하고 먹을 것을 관리해서 만들어놓은 수정란과는 달리 질 떨어진다던 그 수정란은 부화를 하면서 '눈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몇 개월 만에 처음 희망을 봤다. 

아 노력하면 난자의 질이, 그리고 수정란의 질이 좋아지는구나. 노력하면 달라지는 것도 있구나. 

물론 눈사람이어도 착상에 실패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수도 없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식 후 침대에 누워서 한쪽에는 자궁수축 방지 주사를, 다른 한 팔에는 면역을 낮추는 콩주사를 맞으면서 양팔에 주사를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신이 났다. 발을 까딱까딱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인생의 타이밍. 

배아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눈사람아 사람이 되어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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