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14)- 우리는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 방영된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던 나는 TV를 보고 화를 내고 말았다.
'양쯔강 돌고래'라는 부제를 가진 12화의 내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이다. 1999년 2월 농협중앙회 사내 부부 해고 사건을 가지고 만든 에피소드이다.
이 이야기에는 권고사직을 권유받은 뒤 사직 후 부당해고라고 느낀 2명의 직원이 소를 제기했다. 회사의 편이 되어서 변호를 맡게 된 우영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 중에서 권고사직 할 때 인사팀장이 "사내 부부 직원 중 1인이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남편 직원이 무급 휴직 대상자가 된다"라고 말하며 여성 직원의 퇴사를 권고했다는 점에서 해고된 직원 2명은 이를 문제 삼고 부당해고를 이유로 소송을 진행하였다.
변호사 우영우가 속한 '한바다' 로펌은 회사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영우는 2명 중 한 명이 난임시술 (시험관)을 하고 있음을 알아내었고, 이를 근거로 반문한다.
"사실은 퇴사하고 임신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까!"
우영우 변호사는 퇴사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시험관 시술 시 일주일에 최소 3번의 병원 방문, 그리고 채취 시 전신마취, 이식 시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이런 점들을 예시로 들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개인의 연차 사용은 물론이고, 전신마취를 하고 채취를 오전에 시술하고 센 진통제를 맞고 회사에 오후에 출근했다.
그런 나에게 만약 회사가 권고사직을 권했다면, 나 또한 엄청 부당해고라고 느꼈을 듯하다. 내가 센 진통제를 맞으면서까지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했던 이유는 책임감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회사에 다니고 싶었던 마음이기도 했다.
퇴사를 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임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의 시험관 일지는 더욱 빨리 진행될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아이를 갖기 위해 휴직이라는 제도를 택하기도 한다.
휴직이라는 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결국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일을 그만두고 바로 아이가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얼마 앞두지 않고, 혹은 복직 후 아이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정답은 없다.
나도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
그런데, 이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를 하나씩 품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도 체력적인 한계와 계속되는 연차 사용의 눈치 보임까지. 그리고 그 여파가 생기지 않기 위해 다시 밤새도록 일을 하는 과정까지.
시험관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특히나 공감하기 힘든 남자 상사에게 '시험관 시술'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 연차 사용의 이유는 적시하지 않게 되어있지만, 잦은 연차 사용의 이유는 보고를 해야 하므로 공개하지 않고는 시험관을 진행할 수 없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그러한 점을 이용했다.
나는 그것이 내 마음을 찔린 것처럼 아팠다.
그것은 내심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시험관 시술로 병원을 오가면서, 회사에 다니기 힘들다는 나의 지친 마음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법정 공방 싸움은 서로의 약점을 가지고 논쟁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험관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딜레마처럼 따라붙는 의문점이 있다.
"나는 정말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인가?"
나에게는 나의 커리어도 중요하다. 그리고 아이도 갖고 싶다. 왜냐고 정확한 근거를 대라고 한다면, 그건 '자아실현' 밖에 없다.
그런데, 회사원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도 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가?"
가끔은 일을 하다 보면 현타가 올 때도 있다.
물론, 시험관을 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재정적으로도 한계점에 계속 부딪히게 되면서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문은 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도,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에게도, 누구에게나 오는 점이다.
너에게 힘든점이 있으니, 사실은 퇴사 하고 싶었던건데 억지로 한 척 왜 뒤집어 씌우냐! 라고 주장할 수 없다.
장애가 있는 아이라도 갖고 싶은가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있으면 우영우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혹은 해결점을 찾을 때 다양한 고래가 뛰어오른다.
사실, 내가 아이를 갖는 것에 있어서 두려운 점 중의 하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날 경우 내가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었다. 진짜 장애가 있고 아픈 아이라도 나는 아이가 키우고 싶다면 갖고 싶은 걸까? 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 발달장애 가족이 있는 사람의 삶을 옆에서 듣고 있으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툭, 툭 흘러넘치는 힘듬이 있었다. 가족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회사 동료 중에 있었다. 친구 중에는 특수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나는 일터에서 짧지만 잠깐 동안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한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서도, 길에서도 유달리 경계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장애'가 있는 사람 같지 않을때가 많아보인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들이 드라마이기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씁쓸하다고 말하는 실제 장애가 있는 아이의 가족들이 말하는 이유에도 공감이 간다.
양쯔강 돌고래가 되고 싶나요?
결국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에서는 부당해고를 주장했던 직원들이 '패소' 한다. 재판은 우영우 변호사가 변호했던 회사가 승소했다.
나라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진다며 출산을 권고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마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출산 휴가 육아휴직의 혜택을 받게 되는 회사는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을 뽑았다가 다시 잘라야 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나 또한 똑같은 문제로 대표님께 똑같은 말을 들었다. 나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대신해야 하거나 동료들이 부담해야 하며, 누군가를 새로 뽑기에는 돌아왔을 경우 자르기도 애매하다는 것.
그 후, 공직에 있던 시절에는 관공서임에도 불구하고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출산휴가 '3개월'만을 쉬고 복귀 할 것을 요구받았다.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암암리에 펼쳐지는 풍경이다. 나는 결국 의원면직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멸종되어버린 '양쯔강 돌고래'처럼 마음 놓고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한 후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워킹맘들은 전설처럼 흔하지 않다. (없는 것은 아닌데 흔하지도 않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정도. 그것도 부서장의 뜻에 따라 가능 여부가 판가름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하고 싶으니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것 아니었냐!"라는 말에 화가 안날 수 없었다.
"변호사 우영우 씨, 우리가 시험관을 한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에요!"
시험관,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체력과 나의 가족이 짊어지고 가야 할 재정적 무게이지, 나의 커리어를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