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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Jun 13. 2022

'엄마 되기'로부터 해방 일지

난임 일기(12) - 나를 추앙해줘 

TV 드라마 <해방 일지>가 끝나고 다들 저마다의 해방 일지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대학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루 중 내가 제일 많이 시간을 쓰고있는 것인가를 찾으면 된다."


요즘 내가 하루 중에서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은 '엄마 되기' 말하자면, 엄마가 되기 위한 시작점. 자녀를 만드는 것이었다.


배우는 건 그만하고 싶어


나의 하루는 배를 찌르는 주사와 질정으로 시작하여서, 하루 종일 대추차와 작약 차를 달여먹고, 하루에 몇 보를 걸으며 카페와 단톡방을 드나들면서 정보를 주워 모으는, 그 사이 간간히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쉼을 하고 있었다. 일어나 잠들 때까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나의 '엄마 되기'에 대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성공기. 성공신화처럼 말해지는 간담들을 토대로 누가 먹고 효과가 좋았다더라를 보면 무조건 주문했다. 카드값은 쌓였다. 얼굴 모르는 이들의 성공모를 비법을 끝없이 배웠다. 

어떤 이는 말한다.


"포기하면 오더라. 마음을 내려놓아"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마음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부터 해방도, 결국에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는 것인데. 마음으로부터의 해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짜 포기하면 해방될 수 있을까?  


사실 계속된 채취 일정으로 3번의 전신마취와 그중에 하게 된 각종 검사와 호르몬 주사들 그리고 건강검진을 마지막으로 나와 남편은 지쳤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얘기들도 시들해졌고, 마음은 한없이 지치고 "지친다"라는 말을 계속 번뇌 었다.


드라마 <해방 일지>를 보게 된 것도 초반의 그런 우울함이 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기도민이 겪을 수 있는 웃픈 일화들도 나에게는 일상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상도 나에게는 웃음이 아니라 다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안 되는 것인가?

혹은 진짜 아이를 포기하고 나는 '딩크족'이 될 수 있을까. 딩크족이 된다는 것은 해방되는 것일까?


고양이 집사가 되고 나면 길고양이들만 잔뜩 보이고, 아이를 포기하려 하면, 길만 걸어도 마주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하필, 아직도 소리를 지르면서 친구를 부르고 골목에서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논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가만히 집안에서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다. 나의 친구들은 온통 아이들 이야기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진짜 포기할 수 있을까?


용서하기의 기술  


무언가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 실패를 경험할 때는 더욱더 탓할 대상을 찾는다. 찾고 찾다가 결국에는 나는 나 자신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엄마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들이 곧잘 하던 버릇이다. 내가 그때 커피를 참지 못해서, 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에게 화를 내서. 아이가 아플 때 엄마들은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탓하며 원인을 찾는다.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 아무리 의사가 "신의 영역"이다라고 말해도 용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일들이 반복될수록,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나랑 맞지 않는 의사가. 혹은 협조하지 않는 남편이. 그리고 엄마가 되기에는 부족한 내 몸이.


돈을 빌려주고도 신용불량자의 길을 걸을까 봐, 고이 모아 두고 있었던 주택청약을 깨던 드라마 <해방 일지>의 주인공 염미정을 볼 때 나는 많이 답답했다. 부모님에게 들킬까 봐 집으로 날아오는 고지서를 숨기는 모습이, 그리고 고소를 하지 않고 돈을 받기를 포기한 모습이. 


그리고 고작 한다는 복수가 결혼식에 쫓아가는 모습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은행 ATM기 앞에서 마주친 빌린 돈은 안갚고 멀쩡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그 놈을 만나서도, 치한에 몰릴 위기에서 구해주는 모습을 보고 참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착하게 굴고 도움을 주어서 해결되는 경우는 현실에서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될 때 비로소 해방할 수 있던 염미정의 모습에서 나는 드라마니까 라는 불신의 눈초리를 멈출 수 없었다. 세상은 착한 놈들을 더 등치고 살고, 돈을 빌린 놈이 빌려준 놈보다 더 발 뻗고 사는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게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라"라고 한다. 임신이 되지 않는 이유가, 누구의 탓이 아닌 것에서 나를 대상으로 탓을 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세포는 '난자'라고 한다.

그 점 같은 세포 난자는 커서 '사람'이 되고 '아이'가 된다.


나는 실패를 거듭하는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나는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면 '엄마'라는 이름을 내 이름 옆에 영영 쓰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놓지 못했다.


다르게 살고 싶어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난임 일기.

남편은 나의 브런치가 '감정 과잉'이라고 한다.

사실이다. 나의 브런치 나의 난임 일기 이자 해방 일지이다. 


어쩔 때는 쉽게 멋모르고 하는 말들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로또라는 1차 성공이나 자임을 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호르몬제를 탓해보는 나의 예민함과 짜증스러움들이 '엄마 되기'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느껴질지언정,


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의 책임감과 목표지향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겪고 있는 모든 난임부부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감정이 과잉된 내 해방 일지 난임 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고 있는 직업적인 면에서 커리어적인 면에서 고민을 많이 해왔다. 다양해지는 콘텐츠의 변화와 마케팅의 변화들에 발맞춰 내가 어떤 것을 어떻게 습득해나가야 할까 생각한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내가 엄마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될까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내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맺게 되던,

엄마가 되어있던, 되지 않았던

최선을 다한 지금의 내가 한없이 아련하고 아름다웠으면 한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데" 


라는 대사에 공감한다. 내가 첫 번째 좌절한 취업 준비기에 내가 한 것은 그동안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의 하나는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만나기.'였다. 나는 수많은 실패와 싸움을 거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나는 남편과의 결혼을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추앙' 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나를 해방시켜줄 내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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