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청소는 귀찮지만 빨래는 좋아해서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아기와 아기세탁기.

by LaLa
나는 기차를 좋아하고 기차소리도 좋아했지만,
기차 쇠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갑자기 우리 집에서 날 줄은 몰랐다.
물주전자가 물 끓는 소리를 내뱉듯이
우리 집 세탁기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한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봄으로 넘어가는 비가 온 쌀쌀한 겨울의 끝 밤이었다. 세탁기가 얼까 봐 하단의 물을 빼주다가 얼어서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물이 세는 것을 겨울에 물벼락을 맞으며 고쳐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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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으로 꼬망스 아기 세탁기에 이불을 꾸역꾸역 넣었을까. 새로 산 이불이 다 빨아질 때쯤, 세탁기에서 기차 쇠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나더니, 세탁기가 기차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를 경험했다. 세탁기가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사이렌처럼 온 집안을 울렸고, 세탁기를 달랠방법은 없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계속된 코로나 여파로 다음 주까지 방문할 수 있는 기사분이 없었다. 그렇게 주말을 버티고 만난 기사분이 방문을 했을 때 세탁기는 아주 조용했다. 괘씸한 녀석. 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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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분 손에 세탁기는 다 분해되었다. 기사분이 방문하지 않는 며칠 동안 나는 이미 인터넷으로 검색을 완료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세탁기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베어링' 이 고장 난 것 같다며,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해, 기사분이 부품을 주문해서 찾아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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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오픈한 세탁기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기사분이 빨래를 돌려보는 순간까지 멀쩡하게 얌전히 빨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가증스러운 세탁기에게 배신감을 느낄 줄은) 내가 증거 화면을 들이밀었다. 녹화한 동영상이었다. 하지만, 기사분은 이렇게 동영상으로 들어서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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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정말 분해해본 기사분은 아무 곳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럴 수가. 기계가 사람을 가린다. 기사분에게 음료수를 대접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세탁기가 세탁을 완료하기 3분 전 탈수 모드에서 갑자기 기차 쇠바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야!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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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분은 그때서야 베어링이 아니라 베어링을 잡아주는 것이 고장 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부품이 단종되어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게 아닌가. 주문을 할 수 없냐고 했더니 10년이 된 모델이라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체 품목이 없냐고 했더니, 대체 품목도 있지 않다고 말하고는 출장 기사분은 쿨하게 출장비를 받지 않고 돌아갔다.


허망하게 20살로 보이는 앳된 기사분에게 콜라를 대접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제 계속 울부짖는 세탁기와 나만 집안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러고 보니, 이 아기 세탁기는 내가 혼자 자취할 때 큰 맘먹고 데려온, 아주 거금의 세탁기였다. 조금씩 나오는 빨래를 금방 할 수 있고, 더불어 삶음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주 기특한 아이였다. 6평의 진짜 작은 원룸에 살 때에도 화장실에 설치하지 못해 현관문에 설치해서 끼고 살면서 결혼해서 2명의 빨래를 책임지고 10년간 열심히 돌려온 세탁기였다.


다들 혼기*에 그러했듯 나 또한 꼬망스 아기 세탁기를 사면서, "금방 결혼도 하고 결혼하면 아기도 금방 낳을 테니까.' 라며 스스로에게 합리화했던 생각이 났다. 언제나 그러했듯, 현실은 이상이나 계획과 다르다. 결혼을 금방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혼을 한다고 바로 애기가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세상에 당연 한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될 쯤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기(婚期): 사주에서 결혼하는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안쓰러움과 별개로, 종종 감정이 널뛰기하고 이성과 감성이 따로 분리되어, 나는 20살의 기사가 안쓰럽고, 출장을 왔으니 뭐라도 금방 고쳐 출장비를 받아가는 게 좋았을 텐데. 없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머리로 이해하며 기사분을 보내 놓고, 나의 감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탁기는 울다가 그쳤다가 울다가를 반복했지만, 우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30대인 내가 20살 출장기사를 믿지 못하고, 다시 한번 고객센터에 부품이 생산되지 않냐고 왜 대체품을 알아보고 사용하지 않냐고. 이제 세탁기는 고장만 나면 다 새로 사야 하냐고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글을 확인하고 답변을 주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탁기가 울어대는 소리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핑계 삼아 세탁기를 보러 가지 않았다.


일주일 가량이 지난 후, 30대로 느껴지는 직원이 전화가 와서,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 없다고 했다. 대체품도 없다고 전했다. "죄송하다"라고 전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사무직의 전화를 받으면서 "새로 사는 것"을 권하는 직원의 답변에 알겠다고 했다.


답은 없었다.

수긍을 하고 난 후에도

그런데 어쩐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수 없이 알아봤지만, 수리비용에 비하면, 새로 사는 것이 낫고 그렇다고 수리비용을 들여서 수리할 수 있는 부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쩐지 이 세상에서 이 세탁기를 구입한 게 나뿐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른 세탁기로 바꾼 건가?! 아니면, 내가 넣은 그 이불 때문에 그 이불만 아니었어도? 하는 자책감에도 빠졌다.


나는 슬픔의 5단계에서 2단계를 지나고 있었다

"슬픔의 5단계"

1단계 부정
2단계 분노
3단계 타협
4단계 우울
5단계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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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라는 것도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한다는, 그것. "결혼하면 임신이 된다"라는 법칙이 얼마나 쉬이 깨진다는 것을 결혼해서야 안다. 수없이 임신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20대에게는 혹은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아기라는 존재가 쉽게 찾아오던가.


"아기"라는 존재가 아무리 시험관을 하고 의학의 발전이 있어도,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삼신할머니'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부품이 다 있다고 해서 기계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남편과 수많은 논의를 매일 했다.

생각날 때마다 카톡을 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나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세탁기를 보러 갔다. 열어보고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가격을 비교했다.

그리고 결제를 하지 않은 채 집에 돌아오면 집에 있는 꼬망스는 울고 있다

그렇게 나는 슬픔의 4단계로 진입했다.


세탁기가 뭐라고 이렇게 슬픔의 5단계를 전전하고 있는지.

그냥 버리고 새로 사면 되는 건 아닌지. 나 스스로에게 지겨워질 때도 있다.

내가 남편을 만난 지도 딱 10년이었다.


나는 "결국 금방 애기가 생길 테니까 어차피 쓸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에게는 "금방 생길 아기가 없음"과 동시에 수없이 "쌓이는 빨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리고 10년이나 일한 세탁기에게 은퇴를 명명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세탁기의 능력이 다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자궁의 능력을 다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나의 출산력과 아기 세탁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모든 것들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머리로는 다 아는데, 마음이 이해되지 않아서.


아직도 우리 집에 꼬망스 아기 세탁기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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