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에디터로 일하는 법 (2)
디자이너들이 다 이직을 하면서, 애니메이터에게 디자이너들의 업무가 추가되었다. 심지어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자였다. 매달 시간에 쫓기는 매거진의 특성상 손이 빠른 사람이 필요했는데, 익숙지 않는 웹디자인의 업무까지 떠안으면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 시작했다. '사장의 조카'라는 루머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보 같다며 같이 밥도 먹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 그 애니메이터와 함께 밥을 먹거나 위로를 해줬다.
그러는 사이에 동기들은 다 하나둘씩 이직을 하고 있었다. 다 이유들은 달랐다. '결혼을 한다' 혹은 '아기를 준비한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등 다양한 이유로 회사를 탈출할 때까지도 나는 남아있었다.
그러는 동안 편집장은 '섹시한 글쓰기'를 지나 '사장님께 아부를 좀 떨어라'라는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사장님과 접점은 없었으나 자리가 사장님실 근처인 관계로 '왜 나를 거기에 앉혔나' 자주 사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사장님 칭찬을 하라는 것이었다.
'사장님 오늘 머리가 예쁘시네요'
'사장님 오늘 옷이 잘 어울리시네요'
등등의 어설픈 아양이라도 흉내라도 내라는 채근에 나는 뻘쭘함을 뚫고 종종 사장실로 들어가
'오늘의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던 동기들은 다 퇴사를 하고, 웹디자이너 언니와 나만 남았다. 그 언니는 남편의 아버지와 같은 분의 찬스로 공공기관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아기'를 갖기 위해서 야근이 없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동기 중에는 나만 남게 되었다.
아무래도 월간지다 보니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어서 마감 때가 되면 야근은 많았지만, 야근비는 나오지 않았다. 마감을 쳐야 하는 특수상황에서는 그냥 택시비를 내고 갔다가 다시 1-2시간 만에 나와야 해서 회사에서 밤을 새웠다. 마스카라가 번지고 다크서클이 내려와도 잘 나가는 브랜드 커피를 빨면서 이것이야 말로 '에디터의 삶'이라고 믿었다.
20대 결혼도 안 한 나에게 '임신'을 위해 더 안정적인 곳으로 간다는 동기 언니의 말은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월급이 조금씩 모자라게 나오거나 내가 정규직이 아닌 외부업체 파견직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기까지(이건 퇴사할 때 알았다) 사람들이 아등바등 이 회사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다.
기울어져가는 배의 기운이 느껴졌다면, 얼른 탈출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이 언제 오는지 몰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입사한 사람 중 나만 남았을 때 나도 이직을 위해서 내가 해왔던 일들을 라인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내가 편집에 참여했던 책들을 견본으로 받아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서고 담당자에게 편집에 참여한 책을 한 권 가져갈 수 있냐 물었다. 흔쾌히 그녀는 편집자인데 안 받아갔었냐면서 내주었다.
회사에 일하면서 말보다는 메신저나 메일로 증거를 남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특히 다른 팀과 말을 해야 할 경우 메신저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사내 메신저가 아닌 네이트온을 쓰는 회사여서, 안 쓰고 내버려 둔 네이트온 아이디를 다시 생성하기도 했다.)
"**님 제가 편집했던 책 남는 거, 1권 받아볼 수 있을까요?"
출판사다 보니, 책들은 쌓여있었다. 판매로 나가는 부수 외에 편집자들이 갖고 있거나 검수를 위해 들어오는 책들이 몇 권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그 담당자로부터 온 쪽지는 나에게 보내는 쪽지가 아니었다.
"** 걔는 주는 거 없이 참 얄미워. 하는 짓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내 욕을 내가 회사에서 메신저로 받아볼 줄은 몰랐다. 황당하기도 하고, 얼굴이 울긋불긋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안 받을 수는 없으니, 책을 받으러 갔다. 그녀는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서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숨었다. 내가 지나가자마자 옆 사람과 속닥속닥거렸다. 뒤돌아 빤히 쳐다보았다.
"**님 책 잘 가져갈게요"
' 독한 년..'
내가 문을 열고 나갈 때쯤 등 뒤에서 나를 향해 꽂혔다. 그날 나는 타짜의 명대사를 말을 그대로 체감했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마지막 인사를 눈으로 레이저를 쏘듯 하고서는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센 척. 독하게 째려보고 화장실에 숨어있는 꼴이라니. 마음에 꽂힌 비수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회사에는 기쁨의 눈물 팝아트 그림이 걸려있었다. 모던한 사무실 분위기에 모던한 책상에 꽃 꽃하게 허리를 세우고 그렇게 자리에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았다.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선배,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해요?"
나보다 더 내일처럼 화를 내던 선배는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나와"
마지막 월간지 마감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