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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01. 2024

새해에 이력서를 쓰게 될까

장조림을 만들다가 생각한다.

이 장조림을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마트에서 고기를 사오는 데 30분,

끓는 물에 한 번 삶아 핏물을 빼고

양념 육수에 넣고 다시 삶아 잘게 찢어 맛을 입히는 데 1시간,

설거지 및 주변 정리에 15분, 해서 총 1시간 45분.


이렇게 장조림을 만드는데 얼마나 비용이 들까도 생각해 본다.


돼지고기 안심 500g 8천원

물, 전기 사용료 + 나의 노동력(16,835원-최저시급 9620원 적용-)

= 약 25,000원?


마트에서 본죽 시그니처 제주안심꽈리고추장조림 120g이 3,490원에 팔고 있으니

500g으로 환산하면 14,542원.(물론, 양념장과 꽈리고추 등의 무게가 포함되어 고기의 비율이 적긴 하겠지만)

마트 구입 시간 30분을 비용으로 환산하여 더해도 2만원이 되지 않는다.


만들어 먹는 것과 사먹는 것 중 무엇이 더 경제적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아이에게

곁에 있으며 삼시 세끼를 만들어 먹이는 게 좋은 것인가,

그 시간 동안 경제활동을 통해 장조림도 사 먹이고 또 다른 것도 사 먹일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이 좋은 것인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땐 부모 중 한 명이라도 곁에 있어 성장 과정을 섬세히 돌봐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커서 그리 실천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조금씩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늘어나고, 호기심도 다양해지고, 보고 듣는 것도 많아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자니,

이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고 집 문을 열어주는 엄마가 아니라

경험의, 배움의, 호기심의 문을 물심양면으로 열어줄 수 있는 엄마의 경제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등장한 것이다.


엄마 사람의 자아 실현_에 대한 이야기는 별개로 하자.


엄마로서 지금 시기의 아이에게 어떻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라떼세대로서 부모님이 논 팔고 소 팔아 대학을 보내주시진 않았지만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면서도 인형 눈알이나 종이 봉투를 붙이는 등의 부업을 멈추지 않았던 엄마를 보고 자랐기에

나는 얼마나 이 가정의 경제를 위해,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는가,

문득 생각케 되는 것이다.


출산이나 육아를 계기로 월급쟁이 생활을 멈춘 부모라면 아마 공감하리라.

그때 좀 더 버티고 좀 더 고군분투하여 그 자리를 지켰더라면

지금 좀 더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갖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것을

누리게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당근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의 등장을 수시로 찾아보는 것 보다

그 시간에 그것들을 정가로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이,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과거의 선택과 현재 나의 노력에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있어도

불쑥불쑥 끼어드는 만약에들.


초등학교 고학년 만 되어도 카드 쥐어주고 집에 없는 부모를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는 말을

"진짜야~", "농담 아냐"라는 덧붙임말들과 함께 접할 때,

2년 사이 970원 하던 열 줄짜리 김밥용햄이 1,740원으로 뛰어오르고

새해를 앞두고 아이 학원비가 11% 오른

지금 대한민국 세상에서 살아가는 빠듯한 외벌이 가정의 일원으로서,

나는, 엄마인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이 더해진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내 가정을 꾸린 40대 성인에게

돈은 참 많은 부분에서 무척 중요한 것이다.


며칠 전 구인사이트에서 찾아본 몇 곳의 일자리가 머릿속에 맴돈다.

오랜만에 이력서라는 것을 쓰게 될까.




그런데 역시

이번에도 아이가 스승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아이의 학교 친구를 두고 "그 친구 참 키가 크네"라고 했더니

"엄마, 남의 것이 원래 커 보이는 거야. 나랑 걔랑 키 똑같아."

푸하하하하하!!!


그렇게 아이와 한바탕 같이 웃고

늘 사던 귤을 제쳐두고

500g에 11,900원 짜리 딸기 한 팩을 큰 맘 먹고 산다.

간이 잘 밴 장조림을 찬으로 내어 뜨듯한 저녁을 지어 먹인 후

과일 대장 아이에게 후식으로 줘야지.


지금 엄마가 그 쯤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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