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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07. 2024

새 다이어리는 필요 없습니다

1월의 어떤 하루)

과거 문화예술위원회 인턴 시절, 사근사근한 사수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선배가 2020년도부터 '하우스갤러리 2303'을 열고 운영 중이다. 자신이 사는 대한민국의 가정집 아파트 23층에 미술 전시회를 열어 관객들이 편하게 그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 육아를 위해 오랜시간 근무했던 직장을 나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코로나로 미술관 문이 꼭꼭 닫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이 난감한 상황들을 헤쳐갈 반짝이는 길을 스스로 내신 것이다. 예술이 생활로 들어오길, 바라던 소망의 실천이기도.


삶으로 들어간 예술 (stibee.com)


2년 전부터 아이와 나들이 삼아 매 전시를 찾았다. 육아 선배이자 예술분야에서 일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선배는 나의 처지와 고민을 말하지 않아도 헤어려주었고 전시 주제와 작품, 작가에 대한 선배의 설명을 들을 땐 개인 맞춤 도슨트와 함께하는 호사가 매순간 느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 역시 방학을 맞아 언제나처럼 1+1으로 아이와 함께 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눈썰매장에서 아이를 좀 더 놀게 한 후 뜨끈한 쌀국수 한그릇씩 먹고 집에 오니 밤 늦게까지 집안일에 종종거렸어도 몸이 그렇게 가볍고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더라.


아, 하루 2만보를 훌쩍 넘게 걸었는데, 24시간 아이와 동거동락 중인 종일근무 기간인데

왜 이리 오늘 기운이 샘솟는 것일까. 자려고 누워 잠시 생각해 보니 어렵지 않게 떠오른 그 이유들!


- 나는 오늘 밥 세끼 중에 한 끼를 내 손으로 차리지 않았다!

- 미술전시, 작가라는 신선한 자극이 어른과의 대화로 오고 갔다!


1월의 또 다른 하루)

아이가 방학에 돌입한 지 고작 5일째인데 나의 정신 상태가 널을 뛰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 밥을 차리고 치우고 간식을 주고 치우고 물엿처럼 의자와 바닥에 늘어져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온 하루를 함께하는 생활. 즉, 한 낮 중 개인시간이 전무해진 매일. 그렇게 나의 운동 시간도 사라진 하루들.


금요일 저녁 집에 온 주말부부 남편을 향해 '나는 운동하고 올 테니 두 남자는 냉동실의 갈비탕을 데워 먹도록' 주문하고 나와버렸다. 눈치빠른 남편의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냉큼 내달려 헬스장 러닝머신에 오르니 와,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내 멱살을 내가 잡고 애써 끌고왔던 오늘 하루가 순식간에 경쾌해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금새! 좋아!진다. 역시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에 평화가 깃든다. 집에 돌아가 아들을 한껏 안아주고 설거지를 마친 남편에게 기특하다 토닥여줬다.


- 운동이 좋다!

- 운동하면서 나의 시간이 생긴 것이 좋다!


누군가 2023년이 저물어 갈 즈음 내게 물었다.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요?"

아, 꼭 새해에 어떤 소망을 갖고 다짐을 해야 할까? 소망과 다짐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빡빡하고 밋밋한 패턴의 삶 속에서 몇 년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인데. 세계 평화도 와닿지 않고 로또 당첨은 남일만 같은데. 난감하고 막막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새해에, 아니 그저 내일부터, 앞으로 기운이 채워지는 삶을 위해 무얼 해야할지 깨달았다. 나를 좋게 하는 일을 하자! 그럼 그 다음의 일들이 절로 따를 것이니.


1. 새로운 자극을 가까이하자. 사람들과의 교류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뻔한 일상 패턴에서 매일 어른 사람과 어떠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게 여의치 않은 게 사실. 즐겨 활용하는 매체(신문, 팟캐스트 등)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자극을 접하려 노력하자.

2. 뇌를 내려놓고, 그냥 운동하자!

3. 삼시세끼 중 한 끼라도 내 손을 안 거치는게 특히 방학 중엔 참 힘든데,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리하여 나는 새 다이어리를 장만할 필요가 없다. 새 다이어리에 월과 날짜를 쓰고 페이지 마다 다짐과 목표를 적는 것이 내겐 이제 번잡스럽게 느껴진다. 나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소소하지만 분명한 것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지 않았나. 어제와 이어지는 오늘에 소소하지만 분명히 날 기쁘게 하는 실천들을 더하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해에 쓰던 수첩에 내일부터의 메모를 이어간다. 거창한 계획도 원대한 목표라 할 수도 없어 보이는, 그렇지만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일으켜 세워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지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실천들을 놓치지 않는 것! 그거면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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