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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Oct 05. 2022

왜 안 쉬었어요? 쉬는 법을 몰랐으니까요!

<잘 쉬는 법> 프롤로그

누워서 먹는 것. 나의 휴식은 이랬다. 그러니 매일 밤 먹었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한 하루의 유일한 보상이기도 했다. 좋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쉰다라는 뜻의 휴식(休息)보다는 쉬면서 음식을 먹는다라는 휴식(休食)의 의미에 마음을 뺏기는 사람이었기에. 게다가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흡족해졌다. 그건 그저 포만감이었을 뿐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고.

     

나는 ‘n잡러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전부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n잡러로 살았다. 생계를 위해 출근을 했고, 퇴근 후에는 자아실현을 위해 글을 썼다. 심지어 휴가를 권하는 주제로 말이다. 커리어에 별 도움 되지 않는 잡다한 프로젝트를 벌이며 여러 감투도 썼다. 그저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돌이켜보면 신나게 막 살던 시절이었다. 젊음을 갈아 쓰는 줄도 모르고서.

   


노는 듯이 일한다고 생각했다. 출근은 괴롭지만 퇴근 후에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지친 마음이 상쇄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아닌 워커스 하이(worker's high)에 중독되었달까. 달리는 사람들이 고통 뒤 느끼는 짜릿한 희열감에 빠지듯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만 했던 나는 일을 끝냈다는 보람과 성취감에 취해 살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또 있었다. ‘일하지 않는 나게으른 나로 오인한 것.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지나친 한가함은 죄악이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에서 허우적거렸다. 여기에 더해 나태지옥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한국인 유전자까지 타고났으니, 쉴 수 없었다. 일이 곧 나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나로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숨 쉬듯 들이마셨고, 에너지 드링크에 영양제를 더해가며 살았다. 이마저도 안 될 때는 수액으로 버텼다. 이 모든 게 소용없어졌을 때, 번아웃과 스트레스로 인한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는 멈출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난 나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어지지 않았다.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으니까.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막다른 길에 당도해야 차가 멈추듯 나 역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을 때, 요양해야만 하는 나의 처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3년 동안 일을 중단하고, 요양을 하며 깨달았다.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답게 산다는 착각에 빠져 대부분의 시간을 남을 위해 일했다. 이 때문에 요양 1년 차에는 분노와 후회의 감정에 잠식되었다. 마음이 삐뚤어져 부러 흥청망청 시간을 흘려보냈다. 왕왕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도 했다.

     

요양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드디어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를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희망보다 절망이 더 컸었는데 점점 희망의 크기가 커지고, 긍정의 불씨가 마음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아노 레슨을 받고,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매일을 기록한 덕분에. 이와 같이 생활 감각을 되찾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다. 이번엔 나의 속도에 맞추어.


요양 3년 차에는 ‘3년을 요양하게 될 줄은 몰랐다라는 사실을 너그럽게 인정하게 되었다. 원망하던 마음을 비웠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가수 양희은식 위로의 말에 담긴 속뜻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 넘치는 시간을 유영하며 잘 쉬는 법을 터득했다



1,000일 동안 삶을 어슬렁거리며 내린 결론. 휴식이란 내 일과 내 삶을 조화롭게 만드는  삶의 기술이라는 것.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잘 쉬어야만 한다. 휴식을 통해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하고, 내 삶의 작은 기쁨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휴가를 권하는 대신 휴식하는 법을 권해보려고 한다. 모두가 나답게 잘 쉬고, 즉각적으로 삶의 기쁨을 누리고, 무엇보다 건강했으면 좋겠기에.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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