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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Oct 06. 2022

휴식의 쓸모? 휴식은 생존 기술이다

의외로 잘 모른다. 쉬는 방법을. 나도 몰랐다.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으로 병을 얻었으니 무조건 잘 쉬어주면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휴식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그냥 쉬라고만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쉼 없이 일만 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마치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지. 마감도 없고, 취재도 없고, 미팅도 없는 삶이 이런 거였다고? 본능에 충실한 1차원적 쾌락에 빠져 지냈다.      


1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더 망가져있었다. 작년에 입던 옷이 맞질 않았고, 염증수치는 처음보다 더 높아져 "응급실에 실려와도 전 몰라요."라는 담당의사의 푸념을 들었다. 전에 없던 지방간도 생겼다. 알콜 한 방울 없이 탄수화물로만 이뤄낸 성과(!)라니. 충격이었다. 의욕도 없었다. 깊이 잠들지 못했고, 새벽에 깨면 ‘차라리 죽을까’라고 생각했다. 마음도 병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알았다. 아기수달도 수영을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을. 태어난 지 60일이 지나면 엄마 수달의 수영 특훈이 시작된단다. 아기수달이 물 공포를 극복하도록 또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만 물고기를 사냥하며 수달답게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기술을 끈질기게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도 배워야만 한다. 아기 수달이 생존 수영을 익혀 나가듯. 나답게 잘 쉬는 ‘생존 휴식법’을 습득해야만 한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비장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절박하게 익혀야 한다. 


돌이켜보라.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쉬는 시간을 잃어버리며 자랐다.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복습과 필기를 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시대이니 ‘대학생은 고등학생의 연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터.      


취업을 한다고 달라지나? 오히려 더 심해진다.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한 경쟁 구도로 실적과 성과를 내야하니까. 퇴근 후에는 나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을 한다. 쉴 수가 없다. 불안하니까. 내가 쉰다고 남들도 쉬는 게 아니니까.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부의 축적이 곧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니 일을 쉴 수 없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또 일의 결과는 돈으로 보상되지만 휴식은 그 반대이기에 쓸모없는 일로 치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식은 곧 낭비다.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우리가 바꿀 수 있나? 시간이 걸리겠지. 분명 그런 시대가 올 테지만 그게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스웨덴에서는 라곰 라이프를 지향한다. 라곰(Lagom)이란 스웨덴어로 ‘적당히’라는 의미. 롤라 오케르스트룀의 책 《라곰》에서는 최고가 아닌 최적의 삶을 이루는 것을 라곰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 정서적 여유를 중요하게 여기며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 스웨덴 사람들은 일할 땐 확실하게 일하고, 퇴근 후에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온전한 휴식 시간을 가지며 산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라곰을 지켜내기 때문에. 


좋아보였다. 라곰 라이프가. 좋은 건 따라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으니 내 삶에도 조금씩 적용해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나만 라곰 라이프를 실천하면 뭐하나. 밤 8시를 훌쩍 넘겨 수시로 업무 연락이 왔고, 회의는 주말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을. 한 스타트업의 TF팀에서 일했을 때는 회사에서 씻었고, 잠을 잤고, 일했다. 다들 ‘열정’이라는 실체 없는 기분에 속고 살던 시절이었다.      


라곰 라이프를 실천한답시고 퇴근 후에 연락을 받질 않았다. 돌아온 말은 “연락이 왜 제때 되질 않느냐”라는 핀잔 뿐. 우리나라에서의 ‘라곰’은 쉽지 않았다. 왜? 대다수가 ‘라곰’으로 살지 않으니까.      


우리에겐 K-휴식법 즉, 한국식 휴식법이 필요하다. 성실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끈기 있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휴식법. 부지런하여 무엇보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민족적 DNA에 맞는 휴식법. 생존 기술인만큼 금방 유행하고 사라지는 휴식법이 아니라 평생 단련해나갈 수 있는 실용적인 휴식법. 이름하여, <생활력 휴식법>과 <라이프 콘텐츠 휴식법>이다.     


<생활력 휴식법>은 나의 생활을 돌볼 수 있는 에너지 관리법을 말한다. <라이프 콘텐츠 휴식법>은 즉각적으로 '기쁨'이 충전되는 나만의 라이프 콘텐츠 관리법을 가리킨다. 이를 잘 활용하면, 더 이상 내가 쉽게 소진 되지 않는다. 전에 비해 회복 하는 시간도 빨라진다.      


휴식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휴식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존 기술이다. 일단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다음 장을 읽자. 이제부터 <생활력 휴식법>과 <라이프 콘텐츠 휴식법>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은 <생활력 휴식법>부터!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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