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융융이 May 25. 2019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작은 새 한 마리

Vancouver Chosun 190524


“아들, 어서 홈 리딩 숙제해! 뭐하니?”
“엄마, 어서 빨리 와보세요! 여기요!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요.”
“아들, 엄마 너무 바빠. 지금 저녁 하잖니? 할 말 있으면 그냥 와서 말해. 그리고 너 빨리 홈 리딩 숙제하라니까, 선생님께서 숙제해오라고 아젠다에 써주셨잖아.”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3학년 아이와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들어와서 책 한자라도 보라는 나와 정원에 나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들. 점점 목소리를 키우며 멀리서 대화를 했다. 도무지 들어올 기색이 없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정원으로 향하는 문으로 달려가 급기야 언성을 높여 이름을 불렀다. 들어와서 당장 책을 읽으라는 엄마의 단호한 말투에 아이는 갑작스레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손안에 반짝이는 스마트폰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나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짓을 하느라 말을 못 들었다는 생각에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일었다. 아이에게서 매몰차게 핸드폰을 뺏어 들고는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벌을 주었다. 그래도 영 기분이 풀리지 않아 내내 냉랭한 분위기로 하룻밤을 났다.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도시락을 싸며 아침을 준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학교 갈 준비를 하기를 종용했다. 어제 그렇게 혼이 났으니, 오늘은 제대로 말을 들어 빨리빨리 제 몫을 다 하리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곤 도통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아이에게 실망감과 함께 마음에 불이 이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왜 다른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아이에게 다가가는데, 또다시 아이의 손에서 나의 스마트폰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가 나의 눈을 피해서 다른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벌써 어린 녀석이 반항하는 게 아닌가? 복잡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했다. 아마도 서릿발처럼 매서운 나의 눈빛에 지레 겁을 먹은 듯했다. 더는 너와 대화를 하지 않겠노라, 너는 일주일간 친구들과 노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또다시 벌을 주며,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등교시켰다. 학교로 가는 내내 죄를 지은 듯 아이는 말이 없었고, 둘째 아이도 침묵 속에 숨어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정리하며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 왜 이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 여러 의문과 불만을 섞어 뱉어내는 무기력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저조한 기분으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 수다로라도 기분을 풀리라. 그런 마음으로 지난주에 친구와 했던 브런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브런치는 근사했다. 아기자기 담긴 식사와 밝은 햇살과 부드러운 음악이 어우러져 아침까지 우울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잠시나마 잊히는 듯했다. 예쁜 음식을 보며, SNS에 올리지는 않더라도 사진으로 기록이라도 해둘까 싶어 카메라에 구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사진을 담았다. 그리고 어떻게 찍혔는지 갤러리를 열어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과 반성이 함께 튀어나왔다.


스마트폰에는 저녁 시간, 오늘 아침 시간에 찍힌, 내가 알지 못하는 예쁜 사진들이 담겨있었다. 어제저녁엔 이름 모를 보라색 꽃 한 송이가 여러 각도로 찍혀있었고, 오늘 아침엔 작은 새 한 마리가 유리창 너머 집 앞의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아마 아이는 저녁 내내 나에게 이 꽃을 보여주러 그리 불렀으리라. ‘엄마, 엄마, 보여 드릴 게 있어요. 너무 중요한 것이에요.’ 그건 아마도 이 어여쁜 꽃이었으리라. 아침나절 내내 부르는 소리에 답을 하지 못한 것은 새가 날아갈세라 조심스레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듯 싶다. 언제 달아날지 모르는 새를 렌즈에 이리저리 담고 있느라 숨을 죽이고, 말을 삼켰을지 모르겠다.

이리 생각하니, 아이에게 쏟아냈던 분노가 나에게 와르르 무너지듯 넘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이를 닦달하고, 나쁜 말들을 내뱉고, 상처를 줬더라. 이름 모를 꽃에, 작은 새 한 마리에 감탄하고 애정 하는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당장 책 한자, 내가 정한 일정이 더 중한 양, 강요하고 괴롭히기만 했나 보다. 정말 미안하고 미안했다. 역시 여전히 나 또한 미성숙하고 부족하기만 한 엄마였나 보다. 아이에게 한없이 모자라기만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맛나 보이던 음식이 더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더라. 친구 앞에서 모래알을 씹든 입속으로 음심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을 함께 삼켜 넣어야 했다.

하교 후 아이를 만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꽃 사진은 뭐야? 아주 예쁘더라.”
아이는 신이 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예쁜 꽃을 보았어요. 너무 예뻐서 엄마한테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엄마가 바쁜 거 같아서 사진 찍어서 보여 드리려고 했어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았다. 울지 않으리라. 울기엔 나 스스로 잘한 것이 없더라.
“고마워, 아들. 엄마 눈에도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인다. 이 새도 너무 예뻐. 사진도 진짜 잘 찍는구나.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하다고 하는 아이 앞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작은 새 한 마리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나는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존재더라. 그 따뜻함에 조금은 기대어 나도 작은 위안을 얻어보리라. ‘나도 아이를, 아이의 그런 시선으로, 이제부터라도, 그런 마음을 담아’.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를 다시 한 번 꼭 안아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