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리더가 마지막까지 움켜쥐는 것
팀장님의 실체, 그 처참할 정도로 낮은 '전투력'을 확인한 순간, 내 안의 스위치가 켜졌다.
더 이상 이 현실 속에서 자신감 없이 쭈그리고 앉아 처분만 기다리기에는 이곳에서 흘러가는 내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이 사람의 역량에 맞춰 내 속도까지 늦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과감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기다리는 대신 제안했고,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공격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그리고 이 조직이 가야만 하는 방향을 팀장님께 명확히 제시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맞춰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마치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필요한 부분"이라며 모호하게 공감하던 팀장님도, 내가 이렇게까지 강한 확신을 가지고 밀고 들어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뒤로 팀장님과의 미팅은 쉴 새 없이 계속되었다. 그만큼 내가 벌여놓고 추진하는 일들이 많았고, 나는 그 일들에 엄청난 노력을 퍼붓고 있었다.
미팅은 항상 치열했다. 하지만 그 치열함의 성격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것은 커다란 전략적 방향이나 사업의 본질적인 중심을 두고 벌어지는 거시적인 논쟁이 아니었다. 아주 작고 세밀한, 운영 단계에서의 지엽적인 논쟁들뿐이었다.
그는 숲을 보지 못했기에 나무의 껍질 모양에 집착했다.
방향이 맞는지 틀린 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 문서의 양식이나 절차의 순서 같은 눈에 보이는 디테일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반가웠다. 만약 운영 단계에서의 논쟁이라면, 실무적인 디테일 싸움이라면 나는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그 영역은 내가 신입 시절부터 밤을 새워가며 수도 없이 구르고 부딪히며 몸으로 터득한 나만의 홈그라운드였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치는 내 몸에 단단히 축적되어 있었고, 그의 어떤 집요한 꼬투리 잡기 식 질문에도 나는 막힘없이 논리와 근거를 들어 대응할 수 있었다.
결국, 치열한 논쟁 끝에 팀장님은 내가 주도하는 실무 영역에서 더 이상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그 또한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리더로서 부하직원을 압도할 식견이나 경험이 없으니, 하는 말마다 논리적으로 반박당하는 상황이 얼마나 자존심 상했겠는가.
만약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믿고 맡겨주는 단계의 리딩을 했다면 우리 사이에 신뢰가 싹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의심했다. 본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였기에 '이게 과연 될까?'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불안감을 나에 대한 검증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뢰가 생길 리 만무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직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곳이다. 그런 불신 속에서도 '공생'은 이루어진다.
그는 무능했기에 역설적으로 유능한 내가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의 조직이 성과를 내고 그가 조직 내에서 힘을 키우려면, 실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나 역시 나에게 맡겨진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확신이 유독 강했다. 이 조직에서 나만이 유일하게 경험한 분야였기에, 내가 흔들리면 프로젝트 전체가 좌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보다도 더 큰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치고 나간 일들은 하나둘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조직 안에서 나의 실무적 입지는 점점 단단해져 갔다. 실력이 곧 권력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실무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을 내어준 팀장님이, 유독 나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는 단 하나의 성역(聖域)이 있었다. 그는 다른 모든 일은 나에게 미루면서도, 유독 그 영역의 결정에 있어서만큼은 나와 마주하기를 꺼려하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내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도대체 왜일까?
실무도 모르고, 방향성도 없는 그가 그토록 그 특정 업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의 행동 패턴을 복기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세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그것은 전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성격의 일이었다.
실무적인 난이도와 상관없이, 타 부서나 상위 리더십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정치적인' 업무였다.
둘째, 역량이 아닌 오직 '자리'와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쥘 수 있는 영역이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팀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결재 권한만 있으면 쥐고 흔들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자기가 '갑'의 위치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실무 능력으로는 나에게 '을'이 되어버린 그가, 유일하게 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허울뿐인 권력의 영역에서만큼은 절대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것마저 잃으면,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 시기를 지나며 나는 조직과 사람에 대해, 특히 '무능한 상사'의 생존 방식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일수록 디테일에 집착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 경향을 보인다.
이때 리더의 간섭을 뚫고 내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반박할 수 없는 실무적 전문성'이다. 상사가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만큼의 경험과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억울해할 시간에 실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리더가 실무자를 믿지 못해 끊임없이 검증하려 드는 관계에서는 절대 건강한 신뢰가 자랄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능한 리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능한 부하직원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다. 이 불편한 공생 관계를 인정하고, 감정적인 기대를 버려야 내가 덜 다친다.
마지막으로, 실무에서 밀려난 리더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것은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 가장 '정치적인' 일일 가능성이 높다.
역량이 필요 없는, 오직 직책으로만 누릴 수 있는 권한.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생존 수단임을 이해하면, 그들의 비합리적인 고집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택했던 관계에 있어서도 어느 순간 팀장이 꽉 움켜쥐고 있는 영역이 나에게 필요할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직 안에서 입지를 단단하게 쌓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