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의 생애 첫 감정의 기억 (1) 열등감
생애 첫 기억과 기억 속 감정은 어떤 모습일까.
내 마음속 내면아이는 왜 크지 않고 6살에 머물러 있을까?
무의식에 각인된 기억과 감각들은 어떤 것일까…
우리 집은 엄마, 아빠, 할머니, 나, 오빠 다섯 식구였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까지 간호사 일을 하시다가
내가 4살이 되었을 때 유아전집 회사에서 20년 간 책 영업을 하셨다.
자녀 독서 교육을 받으러 가셨다가 이끌리어하게 되셨다.
말단 사원으로 들어갔다가 오래 회사를 다니며 승진도 하게 되어 센터장까지 하시다 그만두셨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리시고 멋지게 오피스룩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셨다.
그리곤 밤늦게 돌아오셔서 나와 오빠에게 밤에 책을 읽어주시다 주무시곤 또 다음날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가셨다.
아빠는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고정되었지만 엄마는 늘 밤늦게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직장일 하는 엄마를 앞이나 뒤에서나 나무라셨고 아빠도 엄마 회사 때문에 자주 싸우셨다.
밥 값, 옷 값으로 돈은 많이 쓰는데 집에 벌어오는 건 없다고.
엄마는 집에 돈은 안 갖고 왔지만 책을 사 오셨다.
나는 회사에 엄마를 빼앗긴 대신 받아온 책을 읽고 컸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주된 정서를 꼽자면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우리 남매의 주양육자셨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할머니는 우울하셨고 예민하셨고 짜증이 많아 늘 눈치를 봐야 했다.
이제는 돌아가신 지 20년이 된 할머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 방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 하시며 그렇게
40대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자신의 처지가 '폭폭하다(서럽고 답답하다는 방언)'며 우셨다.
할머니는 집안일과 손주 양육을 도우셨지만 정신적으로는 취약하셨다.
엄마와 정서적 교류는 거의 없었다. 아니 엄마, 아빠, 할머니 어느 누구와도.
나는 자기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에 서툴렀고 더군다나 부모님과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나마 2살 터울 오빠와 친구처럼 지냈다.
엄마가 회사에 가신 후 다닌 미술학원에서 생애 첫 좌절을 맛봤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닌 학원이었다.
오빠도 다녔던가…
초등학생 때 신문사 그림대회에서 상을 타온 걸 보면 오빠는 그림을 잘 그린 듯하다.
오빠의 학창 시절 노트를 보면 그림 낙서가 가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도 그림을 잘 그리셨다.
반면에 나는 그림을 정말 못 그렸다.
색깔 구분도 잘 못하겠고 (나중에 알았지만 난 적록색약이었다),
지금도 못 그리지만 당시엔 졸라맨 수준의 그림 실력을 가졌다.
하루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같은 반 어떤 아이가
"너 정말 그림 못 그리는구나"
라고 말했다.
안 좋은 평가를 들으니 안 그래도 싫었던 미술이
더 더 싫어졌다.
열등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렇게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잘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실력을 쌓기 위해 훈련하고 성장해야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 잘하기만 바라니, 새로운 분야를 시도해도 금방 흥미를 잃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이후로 여러 분야를 시도해 보고 '적성이 안 맞아' 그만두는 경험을 자주 했다.
피아노, 발레, 서예, 판소리, 기타 연주, 십자수, 뜨개질, 만들기 등등
다양한 활동을 거쳐갔다.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
대학시절 방황하며 과거를 돌아봤을 때
예체능에 재능이 없어 공부 밖에 할 게 없었던 내가 애처로웠다.
공부도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내가 들인 노력 대비 그나마 아웃풋이 나왔고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잘하는 무엇으로 존재감을 얻길 바랐다.
학창 시절을 그렇게 공부로만 보냈다.
그러다 대학교 와서 전공 공부에 막히자 공부에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살아왔던 인생을 반성하고 경로를 수정해야 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가치 있게 여기는 게 뭘까 오래 고민했다.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를 푸는 걸 즐겼지만
막상 대학에 가니 이공계 연구는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내가 찾은 답이 맞을까,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일까 확신이 없어 불안했다.
차라리 정답이 없는 글이 훨씬 나았다.
글쓰기에는 틀린 글이란 없고 저마다 가치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썼을 때 나는 그 시절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어 그려진 인생이란 그림은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만은 하나뿐인 정답이었고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읽고 공감해 주니 좋았다.
남이 아닌 나의 시선에 집중하니 나를 옥죄는 열등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제는 남들보다 잘하려는 데에 목숨 걸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나보다 조금 더 발전하는 내가 되었음 한다.
이제는 열등감이 나를 얼마나 스트레스와
게으른 완벽주의로 몰아넣고 힘들게 하는지 안다.
남들보다 못한다는 생각은 나를 스트레스로 몰아넣고
스스로를 과도하게 다그치거나
무기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남의 평가와 인정에 신경을 덜 쓰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찾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재미와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내 맘대로 글쓰기, 내 맘대로 그림 그리기를 즐겨한다.
미술은 내 DNA에 새겨진 분야가 아닐지 몰라도
지금은 그림 그리기, 색칠하기를 즐긴다.
재능이 없다고, 다른 사람 보기에 부끄럽다고
중단하지 않고 내가 행복해하는 활동을 즐긴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말고도 더 찾고 싶다.
운동, 홈트,
요리, 살림,
상담하기, 투자
나의 세계가 따스하고 다정하게 넓어지면 좋겠다.
그림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