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의 생애 첫 감정의 기억 (2) 고독감
엄마가 회사에 나가신 후 미술학원 다음에 내가 다녔던 학원은 수영학원이었다.
6살 즈음에 유아체능단 같은 곳을 다녔는데
아마 여자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씻겨주셨나 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수영학원을 다닌 게 지금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수영장에서 하는 일은 심플하고 고됐다. 물 위에서 발차기 연습을 한 후
물속에서 킥판을 잡고 서킷을 돌았다.
발이 안 닿는 깊이에서 훈련했기 때문에 등에 헬퍼라는 물에 뜨는 허리판을 둘렀다.
상급반으로 올라가서는 킥판도 빼고 자유형으로 계속 쉴 새 없이 레인을 돌았다.
레인 끝에 다 다르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편히 내쉬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쉬지 말고 계속 돌라며 다그쳤다.
집에 돌아오면 엄청 배고프고 진이 빠졌다.
물론 수영의 장점이 있다.
날 때부터 약했던 폐가 수영 덕에 건강해졌다.
밥도 잘 먹게 되었다.
어릴 때에는 싫었지만 나중에는 수영을 좋아하게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평영까지 강습을 받았다.
지금도 수영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때는 여섯 살.
숫기 없는 내가 얘기 나눌 친구도 없이
수영장에서 서킷만 돌다 오는 고된 일을 좋아할 리 없다.
게다가 힘이 약해서 아무리 헤엄쳐도 물을 가르며 나가지도 못하고
선생님이 밀어주셔야 겨우 나가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수영학원 땡땡이를 쳤다.
아주 자주 쳤다.
방법은 간단했다.
수영학원 셔틀이 오는 시간에 나가서 셔틀을 안 탄다.
혹시 할머니가 발견하랴, 옆 단지 아파트의 놀이터로 피신한다.
그곳은 그 시간에 사람이 거의 안 다녔다.
혼자 그네를 이리저리 타고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면
관리사무소 근처 공용화장실 세면대에서 수영복에 물을 적셔 수영장에 간 척(?) 위장한다.
완전 범죄인 것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꽤 오랫동안 부모님을 속였던 듯하다.
선생님이 일일이 부모님한테 연락해 애가 오늘 안 왔니 알리는 구조는 아니었던 듯하다.
요 근래 엄마와 그때 일을 얘기했는데 엄마도 오랫동안 내가 수영장에 안 간 걸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그 어린 나이 때부터 부모님께 말을 안 하고 비밀을 만든다.
아이들에게 주기적으로 별일 없느냐며 말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이 어느새 혼자 비밀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 나 홀로 옆 단지 놀이터에서 뭘 했느냐.
나 혼자 서서 그네를 타며 혼잣말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엄마는 회사에 가시느라 낮에 집에 없었다.
밤에는 엄마 아빠 오빠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잤다.
엄마 옆에 누우면 서로를 오래도록 꽉 껴안고 있다가
숨이 막히면 포옹을 풀고 떨어져 잠을 자는 게 일종의 수면루틴이었다.
숨이 막혀 힘들었지만 포옹을 푸는 그 순간은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둘째 딸로서 맞벌이 하시는 엄마를 소유할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이미 출근을 하신 뒤였다.
아직 어리고 엄마가 필요한 때,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고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던 때,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아니 가족들과도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던 때,
나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며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놀이터에서는 혼잣말을 하고 놀았다.
나의 기분에 음을 붙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사람들과 있을 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조곤조곤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 마음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했던 것들을
그게 아니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말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아직 글씨를 못 쓰는 어린 나에게 놀이터에서의 시간은 일기장 같은 거였다.
앉아서 그네 타는 법은 누군가가 가르쳐줬겠지만
서서 타는 법은 혼자 익혔다.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느낌은
답답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서 그리고 또 서서
그네를 하염없이 탔다.
그러면 나는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오빠를 편애하시는 할머니의 구박도 견딜 만 해졌고
맨날 놀러 가는 친구 집에서 한 마디도 못 하고 올 때의 답답함도 해소됐다.
내가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을 이용해
내면아이 치유 코칭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나는 기억이
바로 놀이터에서 그네 타던 모습이었다.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기분일 때
애처롭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의 품이 그리웠지만
표현해봤자 달라진 게 없어 무기력해진 그 때
나를 향한 공격과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곳.
이제는 나의 내면아이를 안아줄 수 있다.
내가 스스로 돌봐줄 수 있다.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려주고
쓰다듬고 보듬을 수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갖고 싶은 것을 사주고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내가 배운 일이 돌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성인인 나에게도 정기적인 놀이터 그네 타기 시간이 필요하다.
홀로 있으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카페에 가서
책을 읽든 일기를 쓰든
글을 쓰든
뭔가를 한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다 오는 일을 좋아하고
나 혼자 첫째 아이가 할 만한 수준의 색칠놀이책을
아이의 크레파스를 빌려 색칠하기도 한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유아적인 수준이지만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 시절에 멈춰있는 나의 내면아이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는 방법이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홀로 쓸쓸했던 시간이
이제는 나를 다독이고
나와 함께 머물고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