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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7시간전

살바도르 성당에서 기도를.

 죽음의 공포가 삶을 파괴하고, 파괴된 삶이 종교로 태어난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의미다. 나는 차라리 문학의 힘을 믿는다. 문학은 우리의 삶에 깊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 나는 문학을 통해 발견하고, 고민하고, 사람들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는다. 종교는 신이라는 상대가 있지만, 문학은 오로지 나만 존재한다. 그리고 문학을 믿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나는 착하게 살 자신이 없다.      


 살바도르 성당은 내 속에 죽어있던 신앙심을 건드렸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간 성당 입구는 순간 어두워지며 눈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성가인 듯 고전적 음악이 잔잔하게 들렸으며, 멀리서 왕관을 씌운 듯한 돔 모양의 천장에서 빛이 내려와 제단을 밝게 비쳤다. 그곳이 성당에서 가장 밝은 곳이며, 적응된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곳이었다. 나는 빛이 떨어지는 제단 앞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밝은 빛이 내려앉은 제단에는 천사들과 예수님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옆의 제단을 바라봤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보인다. 반대편 제단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예수님이 있었다. 천장 벽화에는 비둘기가 날고 있었으며, 모든 제단의 조각은 예수님의 아픔까지 느껴질 정도로 정교했다.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가까운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쉬었다. 지금의 나도 이러는데, 그 당시 시민들이 성당에 들어서면 엄청난 경외감이 들었을 것이다. 숭배, 감탄, 때로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웅장한 제단 앞에 앉아있는 나는 그저 죄 많은 죄인일뿐 이었다.      

“아빠, 기도 했어?”

“아니, 그런데 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나도 오랜만에 기도 했어. 아빠도 기도 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이라고 할까? 은은하고 따뜻한 포근함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에서는 웅장함이 그러나 약간의 박물관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면, 살바도르 성당은 예수님 품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 안의 오렌지 정원 역시 포근했다. 오렌지 나무가 정원수라니, 이때는 몰랐다. 세비야의 가로수도 오렌지 나무였다. 나무에서 떨어진 오렌지가 발에 치이며 굴러다녔다.      


“간식타임입니다. 추로스 맛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가게를 찾는 듯, 여러 골목을 기웃거리던 딸은 이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 저기 한국 사람들 보이지? 아마 저기가 추로스 가게일 거야.”

역시 추로스 가게였다. 한국 사람들이 가게 앞에 삼삼오오 서서, 추로스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실내로 들어갔다. 빈자리가 보여 그곳에 일단 앉았다.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식탁을 치우지도 않고, 아는 척도 않는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고역이었다. 딸은 접시를 정리하고 물티슈를 꺼내 식탁을 닦았다. 종업원이 빈 접시를 가지러 왔을 때, 우리는 빠르게 주문하려 했다. 하지만 종업원은 기다리라며 빈 접시만 들고 갔다. 그리고 십 분이 흘렀다. 주문을 받은 후 그는 내가 내민 카드를 바라보며 웃었다. 카드리더기를 가지고 오겠다며 그는 자리를 비웠다. 또 십 분을 기다렸다. 만약 우리만 기다리게 했다면 나는 인종차별이라며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홀을 혼자서 다니며, 주문받고, 계산하고, 음식을 배달하는 그였다. 아무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한없이 기다리는 손님들도 이해가 안 되고, 혼자서 홀을 담당하게 만든 사장도 이해가 안 된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음에도 그는 여유가 넘쳤다. 손님과 농담하고, 손을 씻고, 주방장 하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추로스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프랑스에서 온 가족이 구글 렌즈로 메뉴를 검색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내 모습이었다. 딸은 프랑스인을 바라보며 불어로 이야기한다. '이 집은 추로스가 맛있다'는 말일 것이다. 누구를 닮았는지..., 대단한 딸이다.

기름이 묻어나는 추로스는 보기보다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찍어 먹는 초콜릿이 느끼함을 가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달달한 초콜릿과 추로스는 찰떡이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한 모금. 기운이 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을 본 추로스에 만족하며,  가방을 둘러매고, 우리는 세비야 대성당으로 간다.  


기도하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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