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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l 15. 2024

플라멩코의 고장 세비야.

 우리는 흔히 스페인을 '정열의 나라'라 부른다. 그중 정열이라는 단어가 제일 어울리는 도시는 결단코 세비야가 아닐까? 플라멩코의 고장 세비야, 내가 스페인 여행 중 손꼽으며 세비야를 기대했던 이유였다. 중학교 시절, 인천의 돌체 소극장에 누나와 함께 갔다. 연극을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연극은 여름 성경 학교와 성탄절 연극이 전부였다. 아마추어 교회 성극이 아닌 정통 연극을 감상한 나는 그날부터 연극배우의 꿈을 조용히 키우기 시작했다. 돌체는 팬터마임 전문 극장이었다. 팬터마임의 1세대라 부르는 최정, 유진규, 최규호, 박상숙은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에서 활동했다. 인천 돌체 소극장은 최규호와 그의 부인 박상숙과 함께 운영한 극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팬터마임을 배웠다. 내가 배운 팬터마임은 플라멩코와 같은 대사가 없는 인간의 몸짓이었다. 이 몸짓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심경을 위한 것이라고 선생님은 이야기했다. 세비야의 골목길, 공원, 야외무대, 어디서든지 플라멩코춤과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리의 상점에는 플라멩코 의상이 판매되었다. 세비야 사람들의 걸음걸이 역시 홍학이 춤을 추듯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그들과 박자를 맞춰 춤을 추듯 걷고 있었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도시였다.      


 세비야의 골목은 차장 너머로 손을 뻗으면 벽이 닿을 만큼 좁고, 복잡했다. 일방통행의 골목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살바도르 성당 근처였다. 성당 광장에서 내려 1분쯤 걸으니 숙소가 나왔다.

“야, 여기도 밤에 장난 아니겠다.”

“마드리드의 밤보다는 세비야의 밤이 조용할 거야. 여기는 시골이잖아.”

세비야는 마드리드보다 건물들의 키가 작았으며, 고풍스러운 벽돌집과 좁은 도로들이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곳이 세비야의 구도시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짐을 풀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아시아 마트 영업 종료 전에 장을 봐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컵밥이 동났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에 갔으면 스페인 음식을 먹어야지’ 했던 나의 말은 스페인에서 하루가 지나자마자 허풍이 되었다. 마트를 찾아가는 도중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선창과 후창이 공전하는 소리, 분명 시위대의 소리였다. 잠시후 선두에 선 경찰과 백여 명의 시민들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 중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파병 반대 행진이었다.

“아빠, 스페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려나 보네.”

“스페인도 나토 회원국이잖아. 나토가 파병하려고 했지. 아직 결론은 안 났을걸.”

“아빠가 가는 곳은 항상 집회가 있네.”

“의사 표현일 뿐이야. 가만히 있으면 동의하는 줄 알거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우리나라는 너무 과격해서 탈이지.”
 “집회를 무조건 막으려고만 하니까 과격해지는 거야. 여기는 선두에서 경찰이 길도 터주고, 좋네. 집회도 문화거든. 문화는 만들어 가는 거야.”

“아빠도 들어가서 행진해.”
 “그럴까?”
 “대신 한식은 없어. 식당 문 닫을 시간이야.”

“지금 나에게는 쌀밥이 중요하지. 아쉽지만 힘차게 손뼉 쳐주고 가자.”

스페인 여행 중에 거리 집회 시위를 세비야와 그라나다에서 두 번 봤다. 우리와 달리 그들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행진했다. 영국에서 본 집회는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하듯이 했다. 홍콩에서 본 집회는 우산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집회를 했다. 우리나라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집회와 행진을 한다. 홍콩이나 우리나라는 결코 얼굴이 보여서는 안 된다. 씁쓸하지만 각국의 집회의 차이는 정치 수준의 차이였다.      


  아시아 마트는 중국과 일본 음식이 많고, 한국 음식은 불닭볶음면, 신라면 같은 라면 종류가 많았다.

“된장이 있네. 두부, 쌀도 있고, 된장국 끓여서 밥 먹으면 속이 뻥 뚫릴 것 같다.”

“된장국은 무슨 그냥 컵라면이나 사.”

“6개월 요리학원 다닌 남자야. 믿고 맡겨 봐.”

 나의 요리 솜씨를 절대 믿지 못하는 딸과 실랑이 끝에 즉석 일본 된장국을 샀다. 생각보다 일본 된장국이 괜찮았다.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라면수프처럼 뜨거운 물만 넣으면 두부와 채소가 동동 떠다녔다. 아침에 한 컵 마시면 속이 따뜻해지며, 한국인의 힘이 솟았다. 처음 가려던 한식당은 영업이 종료되었다. 또다시 걸어야만 했다. 두 번째 한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몇몇 한국 사람들이 소주와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맥주에 제육볶음과 얼큰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제육볶음에 쌈 채소가 있었다. 푸른 채소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순두부는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제육볶음은 고추장과 채소가 있어서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순두부는 절대 얼큰 순두부찌개가 아니었다.

“아마, 외국인 상대로 음식을 해서 그런 것 같아.”

“나를 봐봐,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니? 그냥 봐도 한국 사람이잖아. 그러면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해 줘야지. 이게 뭐니?”

 그때 홀을 돌던 주인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셨나 봐요? 순두부찌개는 거의 드시지 않았네요.”

“제육도, 순두부도 많이 달아요.”
 “다시 해드릴게요.”

“밥을 다 먹었어요. 괜찮아요. 계산서 주세요.”

주인은 순두부찌개 값을 제외한 계산서를 들고 와 연신 죄송하다고 인사를 했다.

“오늘 보면 다시는 못 볼 여행객인데 그냥 다 받으세요.”

“아니에요. 주문받을 때 맵기 정도를 꼭 물어보라고 했는데, 우리 직원이 실수했어요. 죄송합니다.”

“이러면 제가 더 죄송해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 마음 안 상했으면 좋겠네요. 다음에 오시면, 그때는 정말 맛있게 해 드릴게요.”

“사장님 덕분에 세비야의 첫날밤이 더욱 아름다워졌습니다. 다음에 세비야를 다시 올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꼭 다시 올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세비야의 첫날밤은 한국인의 정을 물씬 느낀 밤이었다. 세비야에서 한국식당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거리의 플라멩코
플라멩코 의상점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아시아 마트
푸른 채소가 있는 제육
Restaurante coreano Han’s (사장님이 친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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