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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Nov 07. 2024

자신을 그릴 때 사람은 가장 솔직해진다. - 피카소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카소 역시 이 도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게르니카를 보고 난 후, 나는 피카소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풀네임처럼 길게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이베리아 반도 문화의 특징으로 결혼 시 자식은 양쪽 부모의 성을 합치게 되는데, 조상들의 성을 다 붙이고 정리를 하지 않다 보니 이름이 길어지게 되었다. 이 긴 이름을 부모만의 성으로 짧게 줄이면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가 되며, Ruiz가 본래의 성씨이다. 피카소는 그의 어머니의 성씨였다. 본래 '파블로 루이스'로 불리는 것이 맞으나 그가 19살 때 피카소를 선택하면서 파블로 피카소로 알려졌다. 비난과 찬사가 항상 같이하는 예술가 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질투에 가까운 비난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니면 여성 편력(이름이 밝혀진 것은 7명이나 수많은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일까? 마지막 여인은 72세 피카소와 19세 실베트 데이빗였다.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만하다. (나무위키)     


 그날 오후, 우리는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10여 일 동안 함께 보내며 서로 지쳤을 것이다. 딸은 쇼핑을 한다고 했고,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피카소의 젊은 시절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 몬카타에 위치해 있었다. 고딕 양식의 14세기 건물 3채가 개조되어 미술관이 된 이곳은, 가는 길이 정말 재미있었다. 좁은 골목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아 미술관을 찾을 수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서 직원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12유로입니다."라고 인사한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화살표를 따라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말보다 그림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그가 처음 한 말도, 엄마가 아닌 연필이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믿기지 않았지만, 그의 어린 시절 작품들을 보니 정말 일찍부터 예술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1살에 그린 토르소 소묘나 15세에 그린 기도하는 어머니 영성채 유화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은 그의 젊은 시절 작품들, 특히 청색시대와 장미시대의 작품들이 많았다. 청색시대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우울하고 고독했던 십대 후반의 그림들이었다. 반면, 장미시대는 그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며 밝고 따뜻한 색감을 사용한 작품들이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조각 작품,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매체에서 그의 예술적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피카소가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었다. 그런 사진들을 보며,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피카소가 그려놓은 작품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피카소는 많은 것을 그렸다. 피카소는 단순히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 성향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예술가로,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나르시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예술가였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도 썼고, 심지어 1951년 한국 전쟁을 모티브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도 그렸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은 피카소의 예술 세계가 단순히 개인의 감정과 욕망을 넘어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반응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꼭 한 가지를 권하고 싶다. 피카소의 자화상 시리즈를 찾아보기를. 그의 자화상은 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또 그가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의 흐름이 바뀌고, 감정의 흐름이 바뀌는 것임을 그의 그림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린 자화상은 훨씬 더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자화상은 점점 더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피카소는 더욱 자유로워졌고, 자신을 더욱 유머러스하고 실험적으로 표현했다. 피카소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가 말했듯이, "자신을 그릴 때 사람은 가장 솔직해진다." 그의 자화상들은 단지 묘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http://www.theart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73



미술관 들어가는 길
매표소 앞
15세때 그린 어머니 영성채
한국에서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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