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여행이 끝난다. 그래서 오늘은 쇼핑! 그리고 또 쇼핑! 오전에 열심히 쇼핑한 후,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며칠 전부터 지나다니면서 봤는데 항상 줄 서 있는 데가 있더라고. 궁금하지 않아? 거기 가 보자!”
“뭔데, 무슨 메뉴인지도 모르면서?”
“알 게 뭐야! 사람이 많으면 무조건 맛집이잖아.”
그렇게 들어선 식당(Casa Alfonso)은 입구부터 하몽이 쭉 걸려있었다. 뭔가 스페인 정통 분위기가 풀풀 나는 곳이었다. 기대에 부푼 우리는 12시에 딱 맞춰 도착해 대기 없이 들어갔다. 웨이터가 친절하게 입구 근처 자리로 안내했다. 쇼핑하느라 손이 지저분해 화장실에 다녀온 후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식당 안쪽은 시간여행을 한듯 영화 세트장처럼 고풍스럽고 멋졌다. 와~감탄하다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안쪽 테이블은 백인들이 앉아있고, 입구 쪽 테이블엔 동양인만 앉아 있는 거지? 설마,인종차별인가?
"아빠, 나도 화장실."
"안쪽에 있어. 화장실 갔다 오면서 안쪽 분위기 좀 봐."
"왜? 거기 뭐 있어?"
조금 후, 화장실을 다녀온 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돌아왔다.
"와, 아빠! 안쪽은 영화 세트장 같아, 너무 멋있다!"
"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가 이쪽에 앉아야 하는데? 동양인이라 차별하는 거 아니야? 분명 인종차별이야.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어쩌려고?”
“테이블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안 된다면 나가자.”
싸울 준비를 마친 나는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 테이블을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웨이터, 쿨하게 "오케이!" 하면서 척척 안쪽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는 게 아닌가. 어? 이거 뭐지? 나는 싸울 준비가 완벽했는데…, 이렇게 쉽게 자리 바꿔주면 준비한 내 대사는 다 어디로 가는 거야?
“아빠, 인종차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어쨌든 영화 세트장 같은 멋진 자리에서 하몽과 빠따따스 브라바스, 바삭바삭한 빵 위에 토마토를 얹은 판콘토마테를 맛있게 즐겼다. 특히 하몽! 와,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이게 하몽의 진짜 맛이구나! 그동안 왜 하몽, 하몽 하는지 몰랐는데 오늘 드디어 깨달았다. 여행 끝나기 직전에 담백하고, 고소한 하몽맛을 발견하다니 억울하지만, 어쨌든 럭키 비키!